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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플러스! 십자가의 사랑으로 희망의 역설을 극복하라.2014-04-13

감사^^* 2014. 6. 26. 16:09

행복 플러스! 십자가의 사랑으로 희망의 역설을 극복하라.
빌립보서 3:7~21    2014-04-13
    
인류역사상 초유의 위대한 십자가 사건, 고상한 아름다운 찬미!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도다. 그가 우리의 죄악과 질고를 지고, 대신 도살장의 양처럼 고난을 당하였도다.’(사53:5)  
 
행복 플러스! 종려주일, 왕의 왕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군중들의 의도’와 ‘주님의 의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주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목적도 방법도 확연히 다른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 가운데, 부활의 권능과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야 하느니라!’ 주님을 뒤따라, 어찌하든지 십자가의 고난을 극복하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고자 합니다. 진리의 사랑 안에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는 ‘마이너스(-)’가 아니고 ‘플러스(+)’입니다. 십자가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이 합하여 결국, 좋은 결과를 이룹니다.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려놓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처럼 끝까지 기쁨으로 지고 가야 마땅합니다.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극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기뻐하라!
 
사하라 사막 횡단시, 극한 고난과 가공할 위험을 만나게 됩니다. 먼저, 일상, ‘섭씨 51도의 사막의 온도’가 괴롭힙니다. 36.5도인 인체에 4도만 상승되면 피가 들끓게 되는 법....생명의 위험이 되는 51도의 살인적 온도..., 하지만 이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막의 모래바람 때문에 형성된 ‘빨래판처럼 된 바닥 길’ 입니다. 데코보코처럼 울퉁불퉁한 찻길을 30여분만 달려가다 보면...통..퉁..통..퉁... 골이 흔들려 ‘멍~’해져서 아무것도 생각지 못하고,‘Where I am..?’‘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모르는’위험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위험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프슈프슈’입니다. 빨래판 같이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여인의 얼굴에 바르는 분처럼 고운 모래가 펼쳐지는 사막의 고운 모래사장 지역이, 바로 프슈프슈입니다. 이 프슈프슈에 한번 빠지면 꼼짝 달싹 못하고, 그 고운 모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프슈프슈에 빠진 자동차가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급히 가속페달을 밟으면..고운 모래 때문에 헛바퀴가 돌며, 자꾸 자꾸 모래 늪속으로 빠져 들어가 점점 깊숙이 패여 가기 때문입니다. 아~프슈프슈... 헤어나올 수 없는 죽음의 경계, 사막의 모래 늪, 프슈프슈...
 
그 당황스런 죽음의 모래 늪에서 빠져 나오려 급히 서둘면 서둘수록, ....더욱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패닉 상태, 공황 같은 상태에서.. 절체절명의 위험을 급박하게 느끼며 두렵고 답답한 순간, 무어라도 해보려고 바깥으로 나와 자동차를 밀라 치면, 3분도 안돼서 51도의 살인적 더위에 피가 끓게 되어 혼절하여 불행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아니면 바퀴가 헛돌면서 흩뿌려지는 모래들이 코나 눈에 들어가 그만 꼼짝없이 순식간에 끝장나고 맙니다.... 그 죽음의 경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프슈프슈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동차 타이어에 바람을 빼는 것’ 입니다. The simple is the best! 언제든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것에 길이 있고 답이 있는 법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1/3정도 타이어 바퀴의 바람을 빼면....‘푸우~’.., 바퀴가 탱크바퀴처럼 네모났게 되면서, 바퀴속의 드럼이 누그러진 바퀴를 밟고 ‘철퍼덕 철퍼덕’ 그 프슈프슈를 빠져나오게 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프슈프슈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도 신앙의 길을 가는 동안 이런 프슈프슈에 빠집니다. 욥도 이런 프슈프슈에 빠졌습니다. 하루아침에 재물을 다 잃고, 목숨 같은 자식들까지 전부를 잃고,..사랑하는 아내도 떠나버리고...몸도 병들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기왓장으로 득득..견딜 수 없어 피가 나도록 긁고...그만 프슈프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프슈프슈에 빠진 욥은 바람을 뺐습니다. 내가 예전에 이랬는데...하지 않고 목에 힘을 빼고 과거도 내려놓고 겸허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정갈하게 기도하며,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의 체면도..자신의 직위도..자신의 명예도 재물도..자신의 기득권도..자기의 아집도, 욕심도, 자기의 목숨까지도 다 내려놓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던 내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처음의 나, 이 세상에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갈 것이라..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지고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벌거벗은 처음 사람 아담처럼, 갓 난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도록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바람을 빼고 목에 힘을 빼고, 붙잡고 있던 것을 다 내려놓고,.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고, 자아를 비워야...프슈프슈에서 빠져나와 살아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겸허하게 바람을 빼고 몸을 낮추어서 정갈한 기도를 하고, 손에 폭력이 없으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참으로 감사함으로 그 프슈프슈에서 살아나온 욥처럼 우리도 그 죽음의 경계인 프슈프슈에서 살아나와 이렇게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람을 빼야 하죠~. 움켜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죠. 명예, 체면, 기득권, 직위, 재물, 자식, 목숨...도 내게 있는 것을 다 내려놓아야죠. 자기를 부인하고 부정해야 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붙잡지 말아야 하고, 자기를 포기해버려야 합니다. 자아를 비워야 하죠. 낮춰야 합니다. 겸허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라는 저주의 죽음의 늪, 프슈프슈에서 죽음을 극복하시고 살아 나오신 주님을 뒤따라야 합니다.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메시야! 극한 고난속,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생명까지도 다 내려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위한 사랑과 헌신속에서 십자가의 사명은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시고 완수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함께 계신 우리는.. 프슈프슈에서 살아 나왔고..프슈프슈에서 살아 나오고 있고...프슈프슈에서 살아나올...언약의 사람들입니다. 냉혹한 현실 속 모든 극한 고난을 극복하고, 십자가 사랑으로 진실을 직시하며, 사탄의 거짓 술수를 물리치고 영광의 승리자들이 될 것을 믿습니다. 
 
전설의 호랑이 사냥꾼, ‘짐 코벳’이 135명을 잡아먹은 식인호랑이를 사냥한 후 소개한 비법과 교훈을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 1. 루머에 현혹되지 말라: 뿔 달린 집채만 한 호랑이, 날개달린 산만한 호랑이라는 전단지속, 거짓 호랑이 소문 때문에 수많은 사냥꾼이 기겁을 해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터무니없는 소문에 사실이 아닌 거짓 루머에 속아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지형지물을 잘 숙지하라: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형의 지물과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3. 맞바람을 맞고 나아가라. 4. 주변 동물들의 동태를 잘 살피라. 5. 살금살금 다가가서 ‘꽝~!’ 한방에 끝내라. 
 
십자가의 사랑 속 진실을 직시하고 희망의 역설을 극복하며, 기필코 성취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 이른바, ‘희망의 역설’을 극복해야 주님과 같이 최후 영광의 승리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냉혹한 현실속,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며 극복, 추진함으로써 최후의 영광의 승리를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1965-1973, 8년 동안 스톡데일 장군이 악명 높은 베트남 하노이 ‘힐튼 포로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이기고 살아남은 후, 간증합니다. ‘포로생활 중 가장 어렵고 위험했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낙관주의’였습니다. 낙관주의....?.......? 낙관주의...잘 될 것이라는 낙관주의가 가장 큰 위험이라니...? 낙관적으로 그저 막연하고 단순하게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속에서 오늘 치러내야 할 힘겨운 현실을 회피하고, 그저 바라기만 하다가, 한번 두 번 세 번...좌절을 경험한 후, 상심을 회복치 못하고 속절없이 죽어가 버리는 낙관주의야 말로 치명적인 위험요소입니다. 옳습니다.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막연한 ...낙관주의, 처절한 현실속 진실을 외면한 낙관주의가 가장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우린 이번 부활절 까지는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까지는....’ ‘이번 크리스마스 까지는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감옥에서 나가지 못하자 그만 낙심하고 상심하여..시름시름... 불행한 결국을 맞이하고 맙니다.     

‘우린 이번 부활절까지는 나갈 수 없을 겁니다. 그에 대비하세요!’ 이렇게 희망의 역설을 극복하며, ‘십자가의 과정후의 부활의 영광’처럼 기필코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최후승리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 속에서 스톡데일 패러독스: 희망의 역설을 극복해야 합니다. 결단코 실패할 리 없다는 믿음, 결국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는 믿음,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속의 가장 냉혹한 진실들을 직시하는 규율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 번 감옥에 가고, 다섯 번 죽을 만큼 맞고, 주리고 잠 못 자고, 파선하며, 전도의 사명을 다하며, 날마다 죽는 가운데.......희망의 역설을 극복하고 최후 승리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어찌하든지 현실을 외면치 않고 진실을 직시하며, 십자가 고난을 극복하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고자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이 아니라....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2-21).’ 희망의 역설을 극복하고 추진하여 나아가 최후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지내며, 십자가 사랑 속에서 행복 플러스 생명살림 잔치를 준비하며, 극한 고난 가운데 기뻐합니다. 행복 플러스(+)! 십자가 사랑으로 희망의 역설을 극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