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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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스물일곱 번째 할 일 / 일기와 자서전 쓰기

감사^^* 2010. 2. 20. 11:12
스물일곱 번째 할 일 / 일기와 자서전 쓰기


그날 저녁따라 시간이 무척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고,
손에 든 책도 너무 지루해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내도 지겨운 듯 한창 하던 뜨게질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서재 앞으로 걸어가 아래 칸에 꽂한 허름한
노트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5년 전 오늘, 우리가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내는 손에 든 노트를 넘기며 살풋 미소를 머금었다.
"휴가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랬던가? 난 기억이 없는데…."
"그날은 날씨가 참 좋았어요."
아내는 흔들의자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날의
정경을 회상했다.
그도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5년 전, 그들 부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항구의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해안에 정박한 고기잡이배가 파도를 다라 출렁거렸고,
갈매기가 하늘을 선회하더니 갑자기 수면을 향해
내려앉았다.
파란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아내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둘째 날은 배를 타고 섬 주변을 구경했네요. 기억나세요?"
아내의 일기는 아름다웠던 휴가의 하루하루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려주었다.
이들 부부는 3, 4개월에 한 번씩 일기를 꺼내 보면서
잊었던 지난날을 추억하곤 했다.
아내는 다른 노트를 꺼내들었다.
42년의 결혼 생활이 거기에 모두 담겨 있었다.
"27년 전에...첫째 애가 영어 점수를 형편없이 받아왔어요.
도무지 숙제도 안 하고 노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죠."
세월은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맏아들은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석사 학위도 받았다.
제대로 잘 자라줄지 부부가 날마다 걱정했던 바로 그
골칫거리 개구장이 아들이 말이다.
한동안 종이를 한장한장 넘기는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이제 열한 살 된 딸의 생일 파티에 여섯 명의 꼬마
손님이 찾아왔다.
모두 여자애들이다."
아내가 나지막한 소리로 천천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꼬마 숙녀들은 뭐가 저리도 즐거운 것일까?
웃고 소리지르다가도 소곤대는 것이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일까?"
지금 딸은 결혼 후 친정 근처에 살며 세 자녀를
기르고 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딸도 늘 즐겁고 호기심이 많았던,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던 열한 살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지….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물가물해지기 마련입니다.
일기나 자서전을 쓰면서 추억을 기록하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가장 아름다운 노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