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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여행 길 끝에서 우리 함께 웃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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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면 저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시37:4) 2011년, 영적, 물리적, 영육간의 복터질 소망인이여!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은 ‘무(無)로부터의 창조’의 원천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은 ‘제 2의 창조적 기능’을 갖습니다. 말씀이 가라하시면 가시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멈추십시오. 살아계셔서 운동력(運動力)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끊임없이 활동(活動)하는 자는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편안히 안주하는 자는 반드시 뒤통수를 맞게 되어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자는 마치 한달란트 맡은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니, 그리되지 않도록 무언가 해봐야 할 것입니다.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반복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눈에 보여지는 결과에 상관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어낼 수 없는 법입니다.
현인으로 간주되는 ‘공자(孔子)’는 ‘인간관계’만을 가르쳤습니다. 성인의 범주에 속한 ‘노자(老子)’는 ‘자연’으로부터 하늘의 섭리를 끌어냈습니다. 반면 ‘예수’는 하늘로부터 가져온 진리를 설파했기에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가진 위대한 스승입니다. 이 위대한 스승인 예수의 하늘의 가르침으로 깨우침을 받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복된 자들은 본래 하늘에 속한 사람들로서 태생적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낳은 사람’의 인생과 ‘땅에서 낳은 사람’의 인생과는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 하늘이 본향인 인생은 이 땅에 잠깐 여행 길을 가다, 때가 되면 다시 하늘로 돌아갑니다. 반면, 후자의 사람, 땅에서 낳은 인생은 하늘에 오르기를 애쓰다 덧없이 스러져 티끌같이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인생은 여행길과 같은 것입니다. ‘귀천(歸天)’이라는 ‘천상병’의 시 처럼 이 세상에서의 인생은 나그네와 같은 여행길이라서, 소풍길을 가는 것과 같은 것이며, 이 길의 끝에서 하늘로 돌아가는 환희의 극치를 누리게 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이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주님을 따라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와서 잠깐, ‘인생이라는 여행 길’을 가는 잠깐 동안 제각기 꼭 필요로 하는 일을 기쁘게 자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 법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인류발전사에서 꼭 필요한 문명의 이기 인 ‘전기’를 발명할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0000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전등 불이 밝혀질 때, 그는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워 기절할 뻔했다고 술회하면서 전기 발명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 또 실패.., 이번엔 왜 안되는 것일까? 하면서 ‘안되는 쪽’을 찾다 보니 10000번의 실패속에서 성공하게 되어 드디어 전구 불을 밝힐 수 있게 ‘되는 것’이구나!”
안되는 것을 찾다보면, 계속해서 ‘왜 안된 것일까?’를 찾아가다 보면, 어느덧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의례껏 ‘되는 것’을 찾다보면 성공의 답을 찾지 못하는 법입니다. 실패속에 성공의 답이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 ‘failure is stpping stone to success.’ ‘안되는 것’은 ‘되는 것의 의미(意味)’입니다. ‘안되는 것’속에 ‘되는 것’의 참된 방법이 함축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안되는 것’을 회피하지도 말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도 말고, 끊임없이 ‘왜 안되는 가?’의 이유를 찾다보면 불현듯 섬광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안되는 것의 축척없이 단번에 로또 당첨과 같은 성공을 하게되면, 잘못될 때 대처방안을 모르게 되므로 ‘균형이 무너져’ 금새 망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게 할 수 있을까?’를 찾기보다 역발상적으로 ‘왜 안되는 가?’쪽으로 ‘안되는 쪽’을 찾아가야 합니다. ‘안되는 것’은 ‘되는 것’의 통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안된 것, 잘못한 쪽을 살펴야 ‘되는 것’으로 통할 수 있습니다. 10000번의 실패 끝에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을 통해 이런 역설적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본래 ‘안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되는 것’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언처럼 본문을 기록한 인생말년의 베드로! 34년여전 주님을 따라 나그네로, 여행길을 살아 간 베드로는 수 많은 실수와 실패로, 안되는 것이 많았던 인생을 산 제자입니다. ‘고기잡는 어부’가 아닌 ‘사람을 잡는 어부’로서의 새인생을 시작한 이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 천국의 열쇠를 받자마자 ‘십자가의 일’을 가로막아 사탄이라고 까지 책망 받았던 것, 말고의 귀를 잘라 주님을 걱정시켰던 것등.....무엇보다도 죽음이 두려워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것....그런 뼈저린 실패속에서 울부짖는 통곡과 가슴치는 흔들림을 통하여 베드로는 반석으로 거듭낳게 되고 큰 사도로서의 참된 길을 찾아 위대한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안되는 것’속에서 ‘되는 것’이 싹트고 거룩하게 결실된 영광된 승리의 인생여행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본향 하늘로 돌아간다는 그 ‘영광스런 즐거움’에 들뜬 베드로는 기쁨이 충만하여 찬송합니다. 이 세상의 여행길, 잠깐 근심하기도 하나 그토록 그리던 하늘로 돌아간다는 감격과 감동, 희망에 찬 인생여행을 즐거워 합니다(벧전1:1-15).
크리스챤의 인생이란 잠깐의 여행과도 같은 그런 것, ‘껄, 껄, 껄’하며 아쉽게 조금 더 참을 ‘껄’, 조금 더 베풀 ‘껄’, 조금 더 즐겁게 살 ‘껄’ 하는 후회의 인생을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조금 더 즐겁게, 여유롭게, 너무 그렇게 옥조이거나 허덕거리지 말고, 사소한 일에 속상해 하거나, 한가지 것에 집착하지 말고 더 크게, 멀리, 높이 인생전체를 보고 달관해야 하는 크리스챤은 인생의 전체를 통으로 보는 사고체계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에 온 소망인들은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 소망인들은 하늘에서 이 땅에 와서 각자 제 길을 찾아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소명의 삶을 살아가다 유쾌하게 하늘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난 사람처럼 제 길을 못찾아 방황하다 가시에 찔리고, 오물통에 빠지며 헤메다가 티끌처럼 허무에 속해 스러져 버리고 마는 불쌍한 인생이 아닙니다. 때가 되어 소풍과도 같은 설레이는 인생여행을 끝내는 날, 우리는 함께 하늘로 돌아갈 것입니다. 혹자는 에녹처럼 혹자는 죽음을 경험한 후, 혹자는 나무의 수한과 같은 해를 살며 멋지게 디자인 한 꿈을 이룬 후, 기뻐하며 하늘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제 잠깐동안의 인생여행 중, 꼭 필요한 일을 행할 때, 안되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 되는 것을 이룹시다. ‘안되는 것’ 속에 ‘되는 것’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실패 속에 성공이, 부정 속에 긍정이, 십자가 속에 영광이, 잘 안되는 것 속에 잘되는 것이 숨어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깨달으십시오. 우리, 잘 안되는 것을 살펴서 되는 길로 나아갑시다. 게으르거나 좌절해 있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기쁨으로 나아가 역발상적인 10000번의 불굴의 도전 끝에 진리의 불을 밝혀 이 어둔 세상에 비춥시다. 영광스런 즐거움이 가득찬 나그네 인생 여행 길, 이 세상 소풍마치는 날, 우리 함께 하늘로 돌아갑시다. 인생여행 끝에서 우리 함께 웃읍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