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는 ‘두 종류의 빛’이 있습니다. 즉 ‘사물’을 보아 알게 하는 빛과 ‘사물의 의미(意味)’를 알게 하는 빛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물이나 글을 보고 읽게 할 수 있는 ‘물리적인 빛’이 있는 가하면, 사물이나 글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참빛’이 있는 것입니다(요1:10). 이와 같은 ‘참빛’, ‘그리스도의 빛’이자 ‘성령의 빛’이 비추어 질 때, 천둥과 벼락의 의미도, 고난의 의미도, 기도의 의미도, 인생의 의미도, 대한민국 경기도에 불고 있는 개혁의 의미도, 과천에 소용돌이치는 변화의 의미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의 의미’를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성경을 한권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고, 그 성경의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이 교회에 올 수 있는 것조차도 정말 감사한 일인데, 성경속 진리의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주의 성령의 빛이 충만한 이 예배시간에 참석하여 진리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자들이야 말로 참으로 자유로운 행복자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진정 자유롭게 된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지니게 된 자들이야 말로 무한한 은혜를 입은 자들이요,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이러한 ‘진리의 자녀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여!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얻고, 찾고, 열리게 되는 응답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됨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한 것은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응답되는 법입니다. 구약의 계시록인 본문은 세이레를 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특별 기도를 한 다니엘의 간절함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21일 만에 응답됨으로써 주의 사자가 나타나 장래사를 깨달아 알게 하시는 장면입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로 부터 보내진 주의 영이 와서 바벨론 포로가 된 이스라엘의 죄악 된 상황에 낙담해 있는 다니엘을 어루만지며 신비한 새힘을 공급합니다. 생명의 위협속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를 쉬지 않음으로 목적과 방향이 분명한 삶을 나타내 보였던 ‘사자굴속에서의 다니엘’과 ‘풀무불속에서의 다니엘의 세친구들’을 지켜 보호하셨던 바로 그 ‘인자 같은 이’가 말씀하시되, ‘큰 은총을 입은 사람이여 두려워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하시며 장차 되어질 일을 전하여 알려주고 깨닫게 하십니다.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금, 은, 동, 놋, 철과 흙으로 만들어진 큰 신상이 ‘뜨인 돌’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생생한 광경을 보여주시며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전개될 인류역사의 청사진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즉 앗수르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바벨론은 바사인 페르시아에게, 페르시아는 헬라 즉 그리스에게, 그리스는 로마에게 멸망당할 것이며 영원한 제국처럼 여겨져 이 세상을 세상 끝까지 다스릴 것 같던 로마도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멸망당하게 될 터입니다(단10:10-21). 세상 끝에는 로마나 미국이나 중국, 일본, 한국도 아닌, 구원의 후사를 섬기고 영생의 역사의 성취를 도우시는 영들, 가브리엘, 미가엘 등과 함께 건설될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된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의 복음을 깨달음으로 먼저 그리스도의 나라와 의를 추구 하는 인생이 승리의 깨달음인 ‘승지(勝知)’로 인한 승리의 인생이 될 것입니다. 목숨을 걸 수 있는 ‘십자가의 삶’의 방향이 분명함으로 주제를 잃지 않는 ‘승지(勝知)의 사람’이 최후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승지(勝知)를 지닌 ‘하나님 사람’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는 것이로되, ‘기도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기도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회교국의 영적 지도자 ‘파리드’가 만난 ‘아크바르’ 왕처럼 ‘성공’과 ‘부’와 ‘장수’를 달라고 기도하는 ‘걸인의 기도’를 하며 주제 없이 방향 없이 떠도는 거지와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내일을 걱정하며 입신양명과 부귀영화, 무병장수를 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가르쳐 주시며 기도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심으로써 ‘올바른 기도법’을 계몽하셨습니다. 반드시 응답됨을 전제로 한 참된 기도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올바른 삶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참된 기도를 통하여 무엇보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올바른 의의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일까 분별하고 점검하여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행하게 하옵소서!’ : 지금 나는 예수님과 이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 종의 말씀대로 행동하고 있는가?, 주의 공동체의 유익된 일꾼이 되어 화해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생명살림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가?
이처럼 기도를 통하여 올바른 크리스천으로서 주제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가다 보면 필요한 모든 것은 덤으로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 즉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결단의 참된 기도를 하면 구하지 않은 성공과 부와 장수까지도 덤으로 더하여 주신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신앙이 없는 이들도 또한 무당들도 성공, 부, 장수를 구합니다. 이런 것은 보상이 아닌 은총과 은혜의 선물로서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니, 하나님 자녀의 기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응어리를 배출하는 출구’가 기도일 수 없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기도를 계몽해 기도에 관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음으로써,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답게 ‘걸인의 기도’가 아닌 ‘왕의기도’를 함으로써 현실의 삶의 자리에서 작은 그리스도로 ‘십자가의 주제’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신앙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맹목적인 신앙을 하지 않는, ‘주제를 잃지 않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 있는 한 시골교회에는 여느 교회와는 달리 본당 안에 ‘십자가’가 두 개 걸려있습니다. 설교단 뒤에 전통적인 십자가와 설교단 반대편 기둥에 또 하나의 십자가. 단상의 설교자들이나 볼 수 있음직한 그 십자가의 유래는 17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웨덴의 국왕 ‘찰스 12세’가 수행원들과 함께 예정에 없이 주일날 예배 중이였던 이 교회에 들려 뒷좌석에 앉아 목사님의 강연을 듣기 시작한데서 유래를 찾게 됩니다. 강단에서 설교 중이던 목사는 예기치 않게 들이닥친 왕과 수행원들을 보자 그만 당황하게 됩니다. 황급한 나머지 여러 날 준비해왔던 ‘설교의 메시지’를 멈추고 국왕의 방문에 대해 걸 맞는 ‘립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뛰어난 정치력, 지도력, 업적 등을 장황하게……. 이윽고 예배를 마친 뒤 국왕과 수행원들은 정중한 예의를 갖추고 가던 길을 서둘러 갑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국왕으로부터 그 시골교회의 목사에게 소포가 배달되었습니다. 기대감으로 흥분된 목사와 함께한 권속들은 소포를 풀어 보았습니다. 바로 설교단 맞은 편 기둥위에 지금 걸려있는 그 십자가와 함께 국왕이 친필로 쓴 다음과 같은 친서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 십자가를 설교단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 맞은편 기둥에 매달아 놓으십시오. 그리고 설교단에 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제를 잃지 않도록 그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십시오. 제게 대한 찬사는 감사했습니다.’
‘주제’를 잃지 않도록 ‘십자가를 잘 보이는 곳에.’ 이 말의 의미는 ‘십자가를 보며 잃지 말아야 하는 주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작가의 주제란 드라마일 것이고, 사업가의 주제란 제품이며, 애인과의 주제는 사랑일터. 그렇다면 신앙인들 모두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주제란 혹시 불시에 예배에 참석한 국왕으로 인해 당황한 나머지 멈추게 된 설교의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그날 참석한 국왕에게도, 꼭 필요한 궁극적인 최고의 가치인 ‘진리’인 것이며, 그 내용을 전하여 알게 하는 설교는 ‘복음’입니다. 성경에 기록 되어있는 바울사도의 이 한 마디의 말씀으로도 설명이 충분합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그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 하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복음, 그것을 증거 하는 일,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모든 크리스천들의 ‘주제’ 일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다니엘이 사자굴속에 던져지면서도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던 바로 그 주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바로 그 ‘주제’가 실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1959년 중국의 침략을 피해 인도로 넘어온 80이 넘은 티베트의 도인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아무 장비도 없이 이토록 험준한 히말라야를 맨몸으로 어떻게 넘어 올수 있었단 말입니까?”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도인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서 왔습니다.”
사람들 중에 둘러 쌓여있든지, 홀로 외롭게 버려져있든지, ‘주제를 잃지 않는다면’ 넘지 못할 산이 없고, 건너지 못할 강이 없는 것입니다. 한걸음 떼어 놓을 때마다 손에 염주 한 알씩을 굴리고 입으로 경전을 되뇌며 혹한과 굶주림을 버텨낸 도인처럼, 크리스천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마음에 되새김질을 하며, 한 걸음 한걸음씩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어느덧 꿈에 그리던 ‘영광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참된 기도를 하면서 예수 십자가의 ‘주제를 잃지 말고’ 한걸음씩 한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결코 주제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우리는 왕의 자녀들로서 왕 같은 참된 삶을 살며, 왕같은 참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업그레이드해서 성숙된 기도를 해야 할 우리는 21세기 하나님 역사의 주역이며 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진리를 깨달아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아는 것이 힘이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였고, 왕 같은 참된 크리스천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세이레 동안 기한을 정해놓고,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간구(懇求)’하며 ‘십자가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 속에서 ‘주제를 잃지 말고’ 한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왕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세상 끝에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차례대로 물리치는 뜨인 ‘돌(rock)’, ‘예수’와 동반자로서, 하나님과 이웃과 이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지, 하나님의 종의 말씀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미소를 만들어 드리며 주의 공동체를 위해 유익한 일꾼으로 화해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긍정과 부정’을 분명히 하여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을 결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니엘처럼 옳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도록 주제를 잃지 맙시다. ‘미소 메이커’로서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목적 있는 삶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갑시다. 주제를 잃지 말고, 한걸음씩 나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