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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행복플러스의 새지평이 열리다. 2011-07-31

감사^^* 2011. 8. 30. 16:20

덕분에, 행복플러스의 새지평이 열리다.
누가복음 19:1~10    2011-07-31
 
내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될 수 없고, 무언가의 ‘덕분에’ 되어지는 것입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만남을 고귀하게 여겨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처럼’ : ‘like water’ 살아가는 인생이 참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물은 컵에 담기면 컵의 모양이 되고, 사발에 담기면 사발의 모양으로 바뀌고, 주전자에 담기면 주전자의 모양으로 변화되어서 모습을 달리하는 형태로 주변에 잘 적응하듯, 변화에 잘 적응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닷물’처럼 모든 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흙탕물도 구정물도 오폐수도 다 용납하여 소금기로 정화시킨 후, 순수한 기체로 모습을 바꾸어 본향인 하늘로 돌아갑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참으로 행복한 새사람은 ‘물처럼’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용납하고 용서할 수 없는 자도 용서하는 자입니다. 갈등과 아픔과 흔들림의 어렵고 힘든 과정 가운데 ‘용서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용서하는 자의 아픔과 용서받는 자의 아픔이 어우러져야 ‘용서가 완성’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라는 기도문의 의미도 이와 일맥상통하다 할 것입니다. 루이스 스미스가 언급한 용서의 일곱 단계와 같이 ‘서서히 용서’, ‘이해함으로써 용서’, ‘혼란가운데 용서’, ‘분노하며 용서’, ‘조금씩 용서’, ‘자유롭게 용서’, ‘근본적인 감정으로 용서’함으로써 용서의 완성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용서의 세계는 인간의 계산이나 사람의 생각을 초월해 있는 하나님의 신비에 속합니다.
 
그리고 ‘물처럼’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물’은 한번 화가 나면 무섭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쓰나미’가 그렇고 특히 금번 중부지방의 ‘물폭탄’이 실감나는 좋은 예증입니다. 금싸라기 땅이라 불리우는 강남의 고급아파트가 물에 잠기고, 고급차들이 물에 둥둥 떠다니는 수해상황을 보면서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좋게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과의 관계가 좋아야 참으로 다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린 생명수가 진리의 대하(大河)가 되어 흐르는 가운데 대의(大義)를 이루며 목적하는 바를 필연코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물처럼’ 살아가는 참 신앙인으로 참된 행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불과 3년여 전인 2008년도에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모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고백한 국민할매 김태원은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날을 술회하는 가운데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그는 그 때, 사람들에게 받은 깊은 상처로 인해 두문불출하며 사람들과의 일체의 접촉을 끊고 술과 담배로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간접살인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죽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참을 수 없는 그 배신감을 분노로 밖을 향해 표출할 길도 없었고, 그래서 술과 담배로 서서히 나 자신을 죽여가고 있었습니다. 삶의 의욕도 없었고, 삶의 이유도 목표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지내고 있었을 때 남자의 자격의 경규 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비로소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거워졌고, 사람의 삶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고, 행복한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명을 두 번이나 구해준, 너무나 고마운 형 이경규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형 고마워! 형과의 만남은 내게 너무나 소중해! 음악이라는 삶 밖에 몰랐던, 그리고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로 죽어가고 있던 내게 재밌고 행복한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어. 나 이제부터 형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함께 살아 갈 거야!....경규형, 사랑한다는 말에 내 순수를 걸겠어. 정말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부활의 김태원은 이경규 와의 만남으로 인해 사람의 삶이 이렇게도 재미있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인생의 새지평이 열리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을 만난 우리네 인생은 어떠합니까? 주님을 만난 난쟁이 ‘삭개오’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나요?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 고립되어 죽어가던 죄인 난쟁이 삭개오의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어 참으로 새인생의 지평이 열려지지 않았습니까? 인생의 참된 목표가 생겼고, 소망에 관한 이유에 분명히 답할 수 있는 새사람으로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아시는 그 이름, 삭개오처럼 부름 받은(calling) 우리, 참으로 행복한 새 인생의 지평이 열리게 된 소망인은 주님 ‘덕분에’ 참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도움을 얻고 행복이 플러스 되는 법입니다. Jesus Plus(+)!, 행복 플러스(+)!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에 우리의 순수와 인생을 겁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이 모든 은총, 주님 덕분입니다. 주님 덕분에 도움을 받아 결과가 좋을 것(+)이고, 모든 것이 합(+)하여 다 잘 될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런 핑계 저런 구실로든, 주님을 떠나는 자, 주님의 교회를 등지는 자는 참으로 불행한 인생이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업 타운(up town) 마을 뒷동산에 아담하게 위치한 한 시골교회에 부임한 목사님이 ‘불신자들을 위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부임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아내와 아들 외에는 신자가 찾아오지 않아, 벌써 넉 달째 세 명이 예배를 드리다 기도 중에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었습니다. 불신자들을 초청하는 잔치니, 우선 인근의 유명한 밴드를 초청해 분위기를 돋우고, 거나하게 술상을 차려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의도한 대로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거나하게 취해 기분이 좋아진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밴드에 맞추어 노래를 하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그 목사님이 슬그머니 말쑥한 차림의 중년신사에게 다가가 한숨을 내쉬며 하소연을 합니다. ‘아니 이 마을에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이곳에 신자가 있다는 증거인데, 내가 네 달 째 이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했는데도, 이 마을 사람 중에 단 한사람도 예배에 참석을 하지 않으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허허~’ 목사님의 말을 듣고 머쓱해 하며 그 신사가 말합니다. ‘실은 내가 이 교회를 지을 때 건축위원이었던 장로요.’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런데 교회를 건축했던 장로님께서 왜 교회를 나오시지 않는 건가요?’ ‘아, 그거 참~, 그 장목사 때문이오. 그 때, 참 어렵게 교회를 건축했는데, 그 때 장목사가 얼마나 마음을 상하게 하던지~ 내 그 장목사 때문에 교회에 발길을 끊었소~’ 그 목사님이 이번에는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귀티나는 부인에게 다가가 그 중년신사에게 했던 그대로 슬며시 말을 건네자 그 부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실은 그 교회의 권사였어요. 그런데 그 김전도사라는 얼치기 때문에~ 참나, 도대체 꼴 보기가 싫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됐다오. 왜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던지, 마주하기조차 싫어서 그만~’. 이어서 눈에 띄는 건장한 청년에게 역시 같은 말을 건네자 그 또한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나요? 나는 이 교회 청년부장 이었는데요. 여름 수련회 같을 때 사고가 생겼죠. 그 사고가 생긴 후로 교회를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 때 이 장로님이란 분이 얼마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시는지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요. 이 장로님 때문에 교회를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언사 행동,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 장로님 때문에 아주 실망해서~ ’ 똑같은 질문에 거기 잔치에 참석했던 대 다수의 사람이 다 ‘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교회를 안다니게 된, 불신자가 된 이유를 실토했습니다. 이윽고 날이 어둑해져서 그 불신자를 위한 집회를 끝내야 할 즈음 그 목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를 했습니다. ‘오늘 이 모임에 참석해주신 주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모임을 주선한 장본인으로서 마치면서 한마디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대화를 통하여 모든 분들에게서 똑같은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내가 예수님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이 단 한분도 없다는 공통점 입니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 이유가 예수님 때문이라는 분은 한분도 안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예수님 때문일 수 없고, 동시에 교회에 나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예수님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신앙의 대상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것, 무엇 때문이든 시험에 걸려 주님을 등지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 덕분에 우리가 천복을 받고 도움을 얻어 여기까지 왔으며, 지금 이렇게 우리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 주님 덕분입니다. ‘덕분에, 덕분에, 덕분에’ 이렇게 행복 플러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삭개오도 주님 덕분에 ‘행복 플러스’의 새지평을 열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 아니 주님이 보고 싶어 밤새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뽕나무로 올라가 나무위에 올라타 다가오는 주님을 볼 수 있게 된 삭개오, 그 삭개오를 마주 보시며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시겠다 하시며 수군거리는 주변의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손인 이 집에 오늘 구원이 임했다고 축복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우리도 주님 덕분에 ‘행복 플러스’의 새지평이 열려져 새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우리의 순수와 인생을 겁니다.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지금은 ‘거인의 무등을 탄 난장이의 시대’입니다. 거인은 산의 정상을 볼 수 있지만 그 거인의 무등을 탄 난장이는 산의 너머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인에게 하나님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과 함께 새로운 활동영역과 스테이터스(status)가 만들어 졌습니다. ‘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가 다가오는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보며 오시는 주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필요한 도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성령이든, 환경이든, 시스템이든, 조직이든, 기구든, 도구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Jesus plus(+)! 행복 플러스(+)! 사랑한다는 말에 우리 소망인의 순수와 인생을 꿈과 미래를 겁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합니다. 덕분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 덕분입니다. 덕분에, 행복 플러스의 새지평이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