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의 혁명으로’ 살길을 찾고, 사이, ‘간(間)의 혁명으로’ 인간관계를 회복하자!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 간(間)의 중요성, 서로 통(通)해야만 하는 사이가 참으로 귀중한 법입니다. 무엇으로 그 사이를 채우며, 어떻게 그 사이 사이를 이어갈 까요? 우리 가족 간(間), 예수 가족공동체 사이를 가장 귀중한 꼭 필요한 것, 진리로 채워야 좋지 아니한가요.
‘쉐마 이스라엘! 들으라, 아브라함의 언약가족공동체, 예수가족이여!, 너희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Way), 방법(way)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진리의 방법인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늘 아버지에게로 갈 수 없고 영원의 생명을 얻을 수 없느니라(요14:6).’
대한민국에 반만년 간, 살아온 한국 사람들에게 500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합니다. 판문점 남북경계선상, ‘그럼 지금 넘어 갈까요?’ 남북 간의 관계도 ‘통일신라’ 때보다도 더 절호의 기회가 왔으니. ..4000여 년 전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성취되는 하나님 나라 통일의 역사에도, 가장 중요한 결실하는 추수 때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 주님~!’ 깨어 준비하게 하소서! 이렇게 ‘우리가족 초청예배’로 함께한 우리 가족들, ‘그날도 오늘처럼’ 예배 안에서 발견되게 하소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의 가족 롯을 구원하였듯, 예수표 약속인 우리를 생각하사 사랑하는 가족들을 구출하여 주소서! 언약성취로서의 ‘영적 출애굽’의 역사 속에서 인간들 사이, 간(間)의 역사를 주관하여 오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게 하소서!
3500여 년간, 안식일을 지켜온 유대인들을 보며 ‘야~ 대단하다’ 칭송합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철저하게 일주일에 한번, ‘거룩한 날’로 구별하여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켜오다니~’ 경탄스럽다고 놀라워하지만, 실제로는 ‘안식일을 지키라’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참으로 경탄스러운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약속의 말씀이 그의 사람들을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의 말씀대로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그가 또한 그들을 지킬 것이라.’ 아멘!
실로 위대한 주의 말씀, ‘안식일을 지키라’하신 말씀이 유대인들을 지킨 것이라 합니다. 주의 거룩한 날의 말씀과 예배가 우리를 지키며, 우리가족, 우리의 아이들을 지킬 것입니다. 진정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주의 날인 ‘주일’, 일주일에 한번 주님께 드리는 ‘예배의 거룩한 습관’을 참된 삶의 최우선적 가치로 습득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참으로 행복한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예배, 거룩한 만남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통한 ‘신(神)과 인간(人間)’사이의 관계회복과 함께, ‘인간(人間)과 인간(人間)’사이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당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인가요?
당신에게 남아있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인가요?
복의 통로 아브라함, 언약의 후손 ‘예수의 복된 가족’과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세요. 눈깔사탕을 입에 물려주며 ‘쑥쑥 커라. 어이구 이쁜 놈~ 흥해라 흥~’ 사람이 내는 격려와 위로의 소리에 신비스런 힘이 있는 법입니다.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사람의 목소리, 거룩한 음성 속에 기계가 줄 수 없는 ‘신비로운 능력과 거대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사람 속에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거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 속에서 마지막 추수 때, 주의 뜻을 이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계 속에는...인공지능 속에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계실 수 없습니다.
사람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관계살림’을 통하여 인간을 살릴 수 있는 법입니다. 행복한 가족 여행을 통하여 사랑하는 이웃, 가족 간, 인간관계의 회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믿고 따라 행할 때, 그때그때마다 때를 따라 하시는 말씀을 통한 ‘진리의 방법’대로 생명살림의 새 길이 열릴 것입니다. 때를 따라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모세의 때’, 구약, ‘율법의 행함의 방법’에서 ‘예수의 때가 차매’, ‘은혜의 믿음의 방법’으로부터 ‘성령의 순종의 방법’으로의 진리의 방법대로 나아가 영광의 뜻을 이룹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위대한 진리(眞理)안에서, 주의 영광의 뜻을 드러내기 위하여 모든 피조물들이 잘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진리’가 ‘돈, 권세, 인공지능’.. 등 인위적인 그 어떤 것보다 크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주님과 그의 진리의 말씀을 더욱 더 믿고 의존함으로써 ‘진리를 진리로’ ‘진짜를 진짜로’ 그리고 ‘거짓을 거짓으로’, ‘가짜는 가짜로’ 드러나게 됩니다. 언약된 참 좋은 나무는 필연코 참 좋은 열매를 결실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 4000년 역사’가 그 ‘마지막의 마지막’을 이루며, 드디어 ‘진리의 방법대로’ 언약을 성취할 것입니다. 약속의 성령이 오셔서 그리스도의 영광된 열매를 결실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사건 전, 창세기11장의 ‘바벨탑 사건’으로 인간들은 여러 가지 언어 때문에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되는 ‘의사 불통(不通)’으로 인하여 세상 끝까지 흩어지게 됩니다. 마지막의 때는 온 세상에 흩어졌던 사람들을 시온성과 같은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통하여 소통함의 방법으로 불러 모으게 됩니다. ‘에클레시아’, 생명의 길 되시는 ‘예수의 진리의 방법’대로 약속된 ‘성령의 특별한 언어사건’을 통하여 모으는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바벨탑’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늘 높이 쌓아올리던 탑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통하여 ‘인간과 인간의 단절’로 인한 ‘인간관계의 불통’의 역사를 뜻합니다. 의사소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바벨’, 즉 혼잡하고 혼란스럽게 정체성이 혼돈됨의 파국을 맞이합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려는 하늘 닿는 시도를 하지 못하게 되며, 인간을 온 세상으로 흩어지게 하십니다. 반면에 마지막 때는 주님께로 불러 모으는 역사로서 오순절 성령의 사건처럼 누구나 ‘알아듣게 하는’ 특별한 언어사건입니다. 이 언어사건을 통한 소통과 대화의 역사로 인간관계를 회복시킴으로써 천국의 에덴 낙원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마지막 ‘인자의 임함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 합니다. 노아의 때처럼 정보의 홍수가 온 세상을 뒤덮을 것입니다. 마치 ‘4차 산업혁명’으로 ‘빅 데이터(big data)’ 정보의 홍수가 만연한 것처럼...,이때야말로 참으로 ‘구원의 생명선’, 참된 방주인 ‘예수의 몸된 교회’가 꼭 필요한 때입니다. 아브라함, 롯의 때처럼 마지막의 때에도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지려하는 ‘호모 데우스’의 타락이 절정을 치닫고 있습니다. 죄악의 극한 타락, sodomy(소돔성의 동성애) 동성 간의 성적타락, 인간과 인간사이의 극한 단절, 피조 된 모든 것들, 인간장기 등을 복제하는 3D 프린트, 인공지능으로 우리 인간들을 ‘기계화’하며, 극한 혼란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오늘날,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시도가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인 ‘인간 창조의 역사’에 도전하여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 등 사람과 방불한 존재를 만들어 삶의 현장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인간이 무엇이며’..‘인생은 무엇인지’..에 대한 극심한 ‘혼란의 카오스’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체성을 상실’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디에나 신이 있다’는 ‘유비쿼터스’의 시대...더 이상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필요치 않는 신앙 없는 종국의 마지막 때의 전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주의 영광의 의도를 알아듣게 하는 ‘특별한 언어사건’인 성령의 역사가 활동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간 상호 소통되며, 인간관계가 회복됩니다. 이 같은 복된 통로를 통하여 거룩한 예수 가족 공동체인 ‘시온성과 같은 교회’, 예수의 몸 된 성전으로 모으는 언약의 역사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천사를 보내어, ‘알곡은 모아 천국으로 들이고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울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를 소통(疏通), 형통(亨通), 복통(福通)케 하는 언약의 복된 통로의 역사인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 같은 ‘만유회복의 역사’, ‘주의 영광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일꾼 된 사람이 꼭 필요할 것’이며, 진리의 말씀 안에서 참된 관계 살림으로 참된 생명살림의 ‘행복 플러스’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예수 안에서 진리의 방법대로 주의 영광의 뜻을 이룹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된 뜻을 위하여 잘 사용하면 다 좋은 것입니다. ‘나쁘게 사용하면 나쁜 것’이 되고, 악용하지 않고 ‘선하게 사용하면 좋은 것’이 됩니다. 이것들은 가치중립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선용(善用)이냐 악용(惡用)이냐?’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따라, 선악(善惡)이 결정됩니다. ‘돈, 재능, 인공지능...’ 그것 자체로 ‘나쁘다, 좋다’ 판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관계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잘 사용하는 지의 ‘사용방법의 참됨과 그릇됨’의 여부에 달려있다 할 것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듯,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일반은총을 잘 사용해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며, 진리의 뜻을 이루면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이든 지식이든 인공지능이든...‘어떻게 사용하는 가’가 관건입니다. 이미 막을 수 없는 시대의 조류라면,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을 까’, 그 ‘사용방법’이 참으로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이미 주어진 것을 잘 아용하십시오. 참되게 사용할 수 있는 ‘진리의 방법’대로, ‘사용방법을 잘 터득’하는 것이 ‘행복형통의 열쇠’임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사탄의 역사인 ‘불통, 단절, 불화’ 전략대로 현혹되거나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사용방법’인 ‘진리의 방법’따라 인간들 사이, 인간관계의 단절을 극복하고 추진해야 됩니다. 인간 간에 서로 소통(疏通)하여 형통(亨通)하고 복통(福通)하도록, 신과 인간의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살림’과 ‘관계회복’을 이루는 참된 행복의 생명열매를 결실해야 합니다. 가치중립적인 ‘돈, 권세, 인공지능...’등을 ‘관계회복을 위하여’, ‘어떻게 사용할지’, 잘 사용하는 것이 꼭 필요한 시대입니다.
구약 언약의 조상,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신약 진리의 방법 되신 생명의 구주되신 ‘예수님’사이의 일맥상통의 이야기를 명심하십시오. ‘아브라함’과 ‘부자청년’의 실례를 가슴에 새기시고 절대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영생을 얻기를 소망하는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등 율법을 다 지키었다 하니, 이제 가서 너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가진 것이 많았던 그 부자청년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 슬픈 기색으로 주님을 떠나버렸습니다(막10).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를 잘 못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전하신 성경 말씀의 참된 의도를 잘 못 해석했기 때문에 주님을 떠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생명의 구주를 만났으나 그만 주의 참된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참된 뜻을 왜곡하여 지금도 꺼지지 않는 고통의 불, ‘스올의 음부’에 있을 불행을 자처하고 말았습니다. 그 청년이 ‘말씀하시는 교회’를 만났다면, ‘우리가족 초청잔치’에 초대되어 진리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그런 영원한 불행에서 구출되어 영원한 참 행복을 누리게 되었을 터인데..주님의 말씀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바로 깨닫고 주 하나님 안, 진리의 사랑 안에 있게 하심을 온 마음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진리의 성령의 말씀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감사하며 기쁘게 따라 가리라는 결단의 산제사를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을 만난 후, 자신의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 자신의 것이었던 재물을 나누어 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의 의도를 잘 못 알아듣고, 그렇게 행할 수 없을 것 같아 생명의 방법 된 진리의 주님을 떠나 멸망하게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주의 청지기, 내 것은 다 주의 것이니,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하고 주의 종으로 주의 뒤를 따라 살아가면 천국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 이예요....하면서 자신에게 있었던 재물, 등... 그 ’사용 방법을 바꾸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본토 친척집을 떠나라.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5).’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그 부자청년도 ‘사용방법’을 달리하고, ‘삶의 방법’을 바꾸어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살면 소통, 형통, 복통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잘 파악해야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참된 의도는 주어진 모든 것들, 사용방법을 달리해서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 사용방법을 바꾸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무소유의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법을 달리하며, ‘이기적(利己的)’이 아닌 ‘이타적(利他的)’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어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길way과 방법way,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무엇이든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천국의 12문, 한 길이나 12갈래, 12방법이 있을 수 있는 법, 동방에서 왕들이 오는 길, 일곱 갈래의 길을 걸어온 다하시니, 일곱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가족(家族), 진리의 방법대로 인간관계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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