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는 신앙
야고보서-2장17-18절_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
오늘날 시대는 물질 만능주의. 지식만능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
사람들의 심령이 강팍 해지고 갈수록 인본주의 사상에 휩쓸려 가는
시대이며 편한 것을 추구하고 자신이 게으름과 탐욕과 정욕에 휘말려
가고 있다는 것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급격히 변해가는 시대입니다.
야고보서 2장은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자와 같다고 비유하면서
입으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드린 것과 가나안 기생
라합이 민족을 배신하면서도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을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숨겨주고 나중에 가족이 구원을 받은
믿음의 행위를(수2:11)예로 들면서 행동하는
신앙을 강조합니다.
오래된 율법 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고
외식하는 성질이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안식과 음식 정결법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할례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행동이 따르지 않는것입니다. 특히 유대인 율법사들은 말은
옳았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입만 가진 신자였습니다.
눅 11:46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는 말씀은 손가락
까딱도 안한다는 말씀입니다.
남의 자식은 신학교 가라고 권유하고 자기 자식은
안 보내는 웃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래된 신자 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가식에 젖어서
행동은 없고 아는 것은 많고 교만이 가득하고 교회
비판은 잘하는 그런 사람은 이미 외식하는 신자임을
빨리 알아차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말만 가지고 이웃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괴롭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촌의 절대 빈곤이 3억이 넘는다 하고 한국사회에도
걸식 아동과 끼니를 굶는 가족이 있습니다.
교인은 축복 받았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음식 먹고 음식
찌꺼기 함부로 버리는 행위는 죄악이라고 봅니다 .
기독교 신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먼저는 하나님이요 다음은 사람입니다.
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그것은
구체적으로 나 드림의 기쁨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다른 종교와 같이 구하고 바라는
식으로 신앙의 시작을 내 형편에서 이유를 찾고
요구사항을 생각하는 식입니다.
홀로 잘되고 홀로 도를 닦는 철학적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행동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셔서
축복을 받게 된 신앙보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줄
아는 자가 잘 믿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즉 구원받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을 씻던 마리아를 비난하던
가룟. 유다를 기억하신지요?
우리는 주께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 무엇이라도 드렸나요?
믿음이란 단어는 피스티스 로 신뢰한다는 말과 함께
충성한다는 말로 같이 번역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과 동일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뢰하고 하나님의 혜택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내 인생을 드린다는 개념이 성경의 믿음이라는 본질적인 뜻입니다.
충성하는 신앙은 나를 드리는 신앙입니다.
충성하는 신앙은 곧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작은 것을 원하시며 당신에게 바라는 마음은
최선의 삶을 살아 가려하는 모습을 원하시며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세상을 위해 금식기도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위한 기도를 얼마나 하시고 계십니까 ?
받는 신앙이 아니라 드리는 신앙이 되어야 하고 이것은
충성의 행동을 보이는 신앙입니다.
행위를 본받아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믿음으로 충성스럽게
헌신하는 자기의 소유와 정신을 희생하여 주님께 드리는
신앙 행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글/ 행복전도사 /서
_ 시와 그림- 나의 핀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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