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비타민 (20)
행복과 고난은 쌍둥이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는 고난과 아픔만이 반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는 신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깊은 산속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신을 찾아 나섰습니다.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이 살고 있다는 산 아래에 도착한
그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이 살고 있는 산이 맞나요?"
"아뇨, 그 신은 고난과 아픔을 주는 신이라고 하던데요."
얼마를 더 걸어가 다른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 사람은
또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예,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과 아픔을 나누어 주는 신도 함께 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먼 길을 묻고 물어 마침내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두막집 앞에서 신비감이 느껴지는 한 노인이 앉아서
무언가를 산 아래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던지고 있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노인은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것 말인가, 이건 행복이라는 것이네."
그 사람은 다가가 크기가 각기 다른 동그란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말과는 달리 그 동그란 것에는 각각 고난,
아픔, 시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행복이 아니라 고난, 아픔, 시련이지 않습니까?"
노인은 웃으면서 `고난' 이라고 적힌 것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의 껍데기를 몇 껍질 벗겨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행복' 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떤가? 겉표지에는 `고난' 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이것의 이름은 `행복' 이라는 것이네. 행복은 양파 같은 것일세.
우리는 인간에게 그냥 통째로 행복을 주는 경우는 없네.
그것은 언제나 겉보기에는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혀
있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지."
행복을 주는 신으로 보이는 그 노인은 말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요즘 심히 걱정되는 일이 있네. 인간들은 내가
던지는 행복을 겉모습만 보고 고난, 아픔, 시련이라고 믿어
이걸 벗겨보지도 않고 그냥 내던져 버린다는 것이네.
신은 왜 내게 행복은 주지 않고 이런 것만 주냐고 불평만
해대는 것일세.참 한심한 일 아닌가? 보석도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는 것이네. 행복도 마찬가지지."
행복을 찾아 나선 그 사람은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난, 아픔, 시련이라고 적혀 있는 이것들의
크기가 다 다른 것입니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아,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나?
고난, 아픔, 시련의 크기가 보다 큰 것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벗겨 내는 수고만 한다면 더 큰 행복을 가지게 되는 것일세."
행복을 찾아 나선 사람은 이제 `행복' 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그가 산을 내려가려고 하자 노인은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한마디하였습니다.
"잊지 말게. 고난, 아픔, 시련과 행복은 알고 보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행복'의 겉에 `고난', `아픔', `시련' 으로 적어서 주는
이유는 `행복' 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임을…."
당신에게 지금 `고난'이 찾아왔습니까?
당신에게 지금 `아픔' 이 찾아 왔습니까?
우리는 이것들을 불청객이라 여기고 꺼립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이것들이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당신에게 찾아온 이유는 당신이 과연 `행복'
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행복은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우리에게 고난이나 아픔 또는
시련으로 변장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언젠가 삶이 우리를 모질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려고
할 때 당신은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것은 고난이다.', `이것은 울분이다.' 가 아니라
`이것을 훌륭하게 견디어 내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라는 것이다."
행복과 고난은 쌍둥이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는 고난과 아픔만이 반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는 신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깊은 산속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신을 찾아 나섰습니다.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이 살고 있다는 산 아래에 도착한
그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이 살고 있는 산이 맞나요?"
"아뇨, 그 신은 고난과 아픔을 주는 신이라고 하던데요."
얼마를 더 걸어가 다른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 사람은
또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예,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과 아픔을 나누어 주는 신도 함께 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먼 길을 묻고 물어 마침내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두막집 앞에서 신비감이 느껴지는 한 노인이 앉아서
무언가를 산 아래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신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던지고 있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노인은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것 말인가, 이건 행복이라는 것이네."
그 사람은 다가가 크기가 각기 다른 동그란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말과는 달리 그 동그란 것에는 각각 고난,
아픔, 시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행복이 아니라 고난, 아픔, 시련이지 않습니까?"
노인은 웃으면서 `고난' 이라고 적힌 것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의 껍데기를 몇 껍질 벗겨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행복' 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떤가? 겉표지에는 `고난' 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이것의 이름은 `행복' 이라는 것이네. 행복은 양파 같은 것일세.
우리는 인간에게 그냥 통째로 행복을 주는 경우는 없네.
그것은 언제나 겉보기에는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혀
있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지."
행복을 주는 신으로 보이는 그 노인은 말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요즘 심히 걱정되는 일이 있네. 인간들은 내가
던지는 행복을 겉모습만 보고 고난, 아픔, 시련이라고 믿어
이걸 벗겨보지도 않고 그냥 내던져 버린다는 것이네.
신은 왜 내게 행복은 주지 않고 이런 것만 주냐고 불평만
해대는 것일세.참 한심한 일 아닌가? 보석도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는 것이네. 행복도 마찬가지지."
행복을 찾아 나선 그 사람은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난, 아픔, 시련이라고 적혀 있는 이것들의
크기가 다 다른 것입니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아,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나?
고난, 아픔, 시련의 크기가 보다 큰 것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벗겨 내는 수고만 한다면 더 큰 행복을 가지게 되는 것일세."
행복을 찾아 나선 사람은 이제 `행복' 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그가 산을 내려가려고 하자 노인은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한마디하였습니다.
"잊지 말게. 고난, 아픔, 시련과 행복은 알고 보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행복'의 겉에 `고난', `아픔', `시련' 으로 적어서 주는
이유는 `행복' 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임을…."
당신에게 지금 `고난'이 찾아왔습니까?
당신에게 지금 `아픔' 이 찾아 왔습니까?
우리는 이것들을 불청객이라 여기고 꺼립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이것들이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당신에게 찾아온 이유는 당신이 과연 `행복'
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행복은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우리에게 고난이나 아픔 또는
시련으로 변장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언젠가 삶이 우리를 모질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려고
할 때 당신은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것은 고난이다.', `이것은 울분이다.' 가 아니라
`이것을 훌륭하게 견디어 내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라는 것이다."
'▤ 독서란 ▤ > 행복비타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의 날개(22) (0) | 2010.02.12 |
---|---|
감사하는 마음(21) (0) | 2009.12.17 |
시간 도둑 (19) (0) | 2009.12.15 |
사람 있다는 것의 따스함(18) (0) | 2009.12.15 |
세상의 모든 인연(17) (0) | 2009.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