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을 보고 약속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사46:10). 처음이 있었으니, 반드시 끝이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last scene)에 초점(focus)을 맞추고, 오늘 용단하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지명된 천년의 사람, ‘징기스칸’은 ‘마지막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오늘 용단했던 불세출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적장의 아이를 배고 돌아온 아내를 받아들였습니다. 과거를 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세 번이나 빼앗을 뻔 했던 원수, 화살의 명수 ‘베짜’를 생포했을 때, 용서해주어 생명을 살려주었습니다. 또한 몽골의 대적국인 금나라와 연합을 함으로 중원의 대국을 천하통일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매순간 용단함으로써 자신을 이기고, 적들을 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플러스(+) 입니다. 십자가의 역사는 모든 것이 합하여 좋은 결과를 만듭니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법, 마지막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오늘 용단하는 우리 소망인은 끝이 좋을 것입니다. 오늘의 현재적 변화를 경험하는 자마다 우리의 궁극적 희망인 ‘마지막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소리가 날 때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불가불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며,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15:51-54)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알게 하시는 은혜’ 덕분입니다.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해 하나님 아들의 정체를 깨닫지 못하면, 유대인들처럼 고귀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은혜로 소중한 가치를 끝까지 소중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소중한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에서’처럼 팥죽 한그릇, 먹고 사는 일로 인해 고귀한 가치를 팔아먹는 불행한 자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예수 같이 고귀한 가치를 위해 십자가의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예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십시오. 언제나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작은 예수로서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가지고 유혹하는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리라’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가 비유를 통하여 창세전부터 감춰진 천국의 비밀을 드러내셨습니다. 천국보화의 비유를 통해 ‘물질’로가 아닌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보화가 감춰진 밭을 사되, ‘명의이전(名義移轉) 절차(節次)’로서 드려지는 헌물인 ‘물질’은 필요불가결(必要不可缺)한 ‘필요비(必要費)’라는 진리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진주 상인의 비유를 통해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십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great value)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13:45-46)
진주 장사 비유는 ‘가치관’에 관한 명제를 지닌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다니던 ‘진주 장사’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진주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귀한 것이라서 분실이나 도둑맞지 않도록, 아무나 보지 못하게 꽁꽁 숨겨놓았던 보물 상자를 열어, 그 진주가 공개되는 순간, 때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그 진주를 보게 된 진주장사는 한 눈에 그 진가를 알아보았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메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진주를 발견하게 된 그 상인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거다. 내가 찾고 또 찿아 헤메였던 바로 그 진주다.’ 그 상인은 다시 그 소중한 진주를 상자에 다시 넣어 보자기에 싸서 보관하려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것을 사겠으니 팔라고 간청합니다. 그 사람은 상인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 진주의 주인이 아니니 주인에게 가서 거래를 성사시켜 보라’며 그 상인을 주인에게로 인도합니다. 거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인이 묻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 얼마나 됩니까?’ 그 진주장사는 그동안 모은 진주들을 주섬주섬 내놓고, 현금과 및 부동산등...을 열거하면서 이런 자기의 전재산을 다 줄테니 이 진주를 자신에게 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상인이 내놓은 것들을 살펴본 주인은 이것들로는 도저히 내 진주를 살 수 없겠다고 잘라 말하며 그러나 너무나 간절히 그 진주를 사고 싶어하는 상인에게 그 극히 값진 진주를 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을 제안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달라!, 사랑이 가득 담긴 당신의 마음을 주면 이 진주를 당신에게 주겠노라.’ 그 극히 값진 가치를 지닌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하며 그 상인은 기꺼히 동의하고 사랑이 가득담긴 마음을 주고 기쁘고 감사하게 그 진주를 삽니다.
마음의 신비...! 마음을 얻으면 다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마음은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것이며 전부인 것입니다. 마음을 주면 다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그 주인에게 주었다면 그 순간 당신은 그의 소유가 된 것이며, 당신께 속한 모든 것들 또한 모두 다 그 주인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그 후에는 무엇이든 다 그 주인의 이름으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무엇을 주던 내가 주는 것처럼 하면 안되고, 주인의 이름으로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주인께서 주시는 것이니 주인의 이름으로 주어져야 함이 마땅합니다. 주님을 만난 부자청년에게 ‘너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 하셨던 부자 청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는 바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후의 삶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주인되어 사는 것이니, 그 어떤 것을 나누어 주고자 할 때에도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인이 주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진주장사 비유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전부를 걸만한, 당신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걸 수 있는 그런 ‘위대한 가치(great value)’가 있습니까?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꾸지 않을 그 절대가치는 무엇입니까?
왜 진주장사는 그토록 그 극히 값진 진주를 사고 싶어 했을 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분명코 그 진주 장사의 눈에는 그 진주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도 같은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이 그 진주장사는 자신이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찾고 또 찾으러 다녔습니다. 부귀나 영화나 권세나 재물이나 명예나 이런 가치, 저런 가치를 찾기도 했으나 그러나 그것으로는 그를 참으로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갈망하여 찾던 최고의 절대 가치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이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나 그의 진리의 말씀등은 찿고 또 찾아야 하는 옮겨 다니는 대상이 아닙니다. 절대적 가치를 지닌 신앙의 온전한 대상을 찾으면 그 때부터는 더 이상 다른 것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또 한가지 명백하게 밝혀야 할 진리는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연구해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일 수 없다 할 것입니다.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성령의 조명이 없이 그저 학문적 접근을 통한 성경지식의 해박함만으로는 주님을 찾을 수도 발견할 수 도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 나타내 보이시는 만큼만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이지와 지능과 의지를 가지고는 결코 주님을 깨달아 알 수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 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극히 값진 진주의 최고의 가치는 인간 스스로 발견할 수 없도록 본래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고 알게 하셔야 비로서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알게 하시는 깨달음의 은혜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 깨달음의 은혜로만 참된 가치를 참된 가치로 알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투자해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극히 값진 보화와 같은 위대한 가치(great value)와 같은 ‘영적인 것’에 대한 것에 관한 가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자기가 결정하게 되어 있는 특별한 가치체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치는 자기가 결정합니다. 사랑, 감사, 기쁨, 행복... 등과 영적인 것에 관하여 가치는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없고 자기가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는 특별한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 가장 위대한 가치(great value)는 이 세상의 모든 가치, 사단적이고 정욕적인 천하만국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절대가치로되 그 판단과 결정은 자기 스스로가 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참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모여있던 남녀노소가,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기를 꿈꾸며 민족 복음화성회의 현장에서의 부르짖는 함성소리가 메아리쳐 들립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오늘 우리의 코에 호흡이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삶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심판때에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위대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자기 스스로 결정한 최고의 가치! 예수 그리스도, 그의 진리의 말씀, 그의 교회, 그의 영적, 물리적 목표! 우리의 모든 것보다 더욱 소중한 위대한 가치! 예수 그리스도!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가치! 예수 그리스도! 은혜의 깨달음으로 우리의 사랑과 기쁨과 감사의 마음과 영혼을 바칠 영원한 가치! 예수 그리스도!
과천 소망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단에게가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인생의 가치관으로 ‘끝(Ω, end, last)’까지 참된 가치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 소망인은 우리가 선택하여 결정한 이 참된 가치를 기쁘게 자랑하며 감사함으로 전도합니다. 그 누구를 탓하지도 그 어떤 것도 원망하지 않고 후회없는 멋지고 고귀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은혜의 깨달음으로 가치는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