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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람아! 주께 맡기라. 2011-06-12

감사^^* 2011. 6. 17. 21:37

성령의 사람아! 주께 맡기라.
사도행전 16:6~15    2011-06-12
 
 
주의 은총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무제한의 은총’속에서 ‘기도’에도 제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구하면 얻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의 한계를 그어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된다고 단정지어서는 아니 됩니다. 내 생각이 미치는 지점까지가 나의 업무능력이 되는 것이니, 생각을 키우되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높고, 넓고, 깊은 새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계 너머 상식 밖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은혜의 새 세상에서 마음껏 은사를 활용하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하늘이 주신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도 있고,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주님의 무제한의 은총 속에서 ‘보상의 원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한 없는 은총 속에서 각자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의 얼굴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겉모습은 사람이나 ‘짐승 같은 사람’으로 살다가 영벌에 처해지는 불행한 인생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자신이 해야 할 올바른 일을 우직하게 고민하는 ‘사람다운 사람!’, 스승의 미소, 아내의 미소, 친구의 미소, 천사의 미소를 만들어 내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러시아 전래 민담에서 ‘미하일’ 천사가 화가 난 신(神)의 명을 따라 이 땅에 벌거벗은 사람의 몸으로 내려와서 교회 담벼락에 붙어있다가 가난뱅이 구두 수선공 세몬과 그의 아내를 만나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따뜻한 인간애로 인해 겉모습의 사람이 아닌 ‘사람’을 본 까닭에 지은 그런 ‘미소’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된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 소망인은 겉모습만 사람인 짐승이 아니라, 이 땅의 참사람이 되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자, 희망이며 생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의 미소를 만들어 드리는 온누리의 ‘미소 메이커(微笑 Maker)’입니다. 이곳 치열한 현실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 소망인 으로부터 미소지음의 거룩한 운동인 ‘미소 메이커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스승 ‘세고에’로부터 ‘바둑의 명인이 되기 이전에,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았던 조훈현 9단에 관한 못다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고에 스승은 바둑의 묘수에는 정통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사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말년에 자살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되라 가르친 그도 참으로 ‘사람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함으로 ‘사람 되는 과정’을 이수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 진정한 명인도 진정한 스승도 될 수 있는 법입니다.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방법’, ‘참사람 됨의 방법’을 친히 삶으로 보여주신 보혜사 ‘그리스도’야 말로 얼마나 위대한 스승입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기 전에, 뜻하신 말씀에 거역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사람 되는 과정’을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더 없이 좋은 환경인 에덴동산에서도 아담이 ‘사람이 되는 과정’을 이수하지 못하여 사람답게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산전, 수전, 공중전을 겪고, 육박전까지 해야 하는 오늘의 험악한 현실의 상황에서 ‘사람이 되는 과정’은 그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을 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의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께 온전히 맡긴 자들은 참사람이 됩니다. 무제한의 은총속에서 약속의 성령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는 주와 함께 성산의 정상에서 승리의 새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룩한 산의 정상에서 믿음의 승리를 확인했던 그 의미심장한 과정을 주목해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약속의 씨앗인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하신 음성을 따라 인생의 새 주인이 되신 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아들을 데리고 호렙산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주의 뜻에 순응하여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삼일 길을 갑니다. 도망치고 싶고 거역하며 피를 토하며 항변하고도 싶은, 백세에 약속을 이룰 아들을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 그 아들로 인해 약속을 이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이율배반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 갑니다. 27살 건장한 청년인 아들 이삭도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번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자신의 슬픈 운명을 눈치 채고 아버지의 등을 쳐다봅니다. 연로한 아버지의 손길을 뿌리치고 ‘도대체 하나님의 역사에 이런 말도 안되는 경우가 어디있느냐’고 쏘아붙이며 얼마든지 도망칠 수도 있었습니다. 이삭 역시 아버지 아브라함이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섬겼기 때문에 뜻으로 알고 순응하며 주께 전부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순순히 자신을 번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삼일간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갈등의 과정, 그러나 복된 삼일 길을 가는 동안 아브라함과 이삭, 둘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같은 약속된 축복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았었다면 함께 동행할 수도, 사람됨의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여 사람다운 삶을 살 수도 없었을 터이고, 호렙의 정상에서 뜻하신 목적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른 마음이 하나가 되어 동행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성령행전인 사도행전, 본문의 바울도 자신의 마음으로는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꼭 아시아로 가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는 다르게 주의 성령은 그 길을 막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낯선 새 길을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울이 변화되어 새사람된 바울은 크신 주의 뜻에 맡기고 묵묵하게 순종의 길을 떠납니다. 아시아로 가고 싶었던 바울이 성령께 순종하여 마게도니아의 빌립보로 감으로써 그곳에서 유럽교회의 마중물의 역할을 한 평생의 동역자 루디아를 비롯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함께 복음의 빛을 발하며 성시화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만약 아시아가 아닌 마게도니아로 가라는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이방의 빛으로서 이방 선교의 큰 뜻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동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대의와 나라를 이루게 되었고 ‘참 사람됨’의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행16:6-15). ‘참 사람됨’의 회복의 역사를 위해 ‘성령’이 오셨습니다. 이미 오신 ‘약속의 성령’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는 ‘사람 되는 과정’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사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과정을 뒤따라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에 마음이 하나 되어 동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대의를 이루는 가운데 참으로 ‘사람이 되는 과정’을 완성하여 빛나는 졸업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 그 성령의 사람 바울의 일생은 거룩한 목표를 위해 ‘성산’을 등반하는 등반가의 삶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구상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에 관한 뜻깊은 위대한 등반을 상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53년 5월 29일 11시30분, 세계최초로 인간이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밟았습니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의 두 번째 공격에 의해 마침내 세계최고봉이 정복된 것입니다. 이 에베레스트의 등정 성공기에는 감동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정상을 불과 몇 발자국 앞에 두고 힐러리가 그만 호흡곤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앞서갔던 텐징은 힐러리가 호흡곤란에서 회복될 때까지 정상의 몇 발자국 앞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사투를 하면서 30여분을 기다려 몸을 추스린 힐러리를 부축하여 함께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서는 등반가의 꿈을 이룹니다. 힐러리는 후일, 그의 자서전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한번도 영웅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텐징은 예외였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는 미천하게 시작해서 세계의 정상에 올랐다.”
 
진정한 영웅 ‘텐징’은 기자들로부터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밟은 소감을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할 말을 산의 정상에 두고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재차 소감을 물어도 똑같은 대답을 하며 고사하는 그에게 소감을 포기하고 이번에는 이제껏 아무도 오르지 못했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습니다. “나는 적을 물리치는 ‘기력’이 아니라, 어머니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을 갖고 산을 올랐습니다.” 뒤쳐진 사람을 기다리며 영광과 기쁨마저 함께 나눈 진정한 서번트, 텐징의 이 말의 의미를 하나님의 사람들은 음미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떨기나무에 번지지 않고 불타는 성령의 ‘불’을 경험합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 후에 ‘출애굽의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불일치의 산에서 거룩한 사명을 받고 ‘새로운 신분’을 얻은 모세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만을 전하게 됩니다. 모세의 말, 이전에 했던 자신의 말은 그 산에 두고 내려와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모세처럼 ‘성령의 불’을 경험한 우리도 이제 ‘내 자신의 말’을 하지 말고, 일평생 ‘하나님의 말’만을 하는 새 인생을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이제 옛사람이 아닌 새 신분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과거에 ‘했던 말’은 하지 말고 오늘 ‘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거룩한 사명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거룩한 사명을 받은 ‘복음의 전령자’로서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새로 난 이성, 감성, 의지 등 ‘새로 난 본능’으로 참된 인생의 고지를 향하여 등정해야 합니다. 이런 ‘위대한 등반가’는 어머니의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으로’ 거룩한 산의 정상에 오를 수 있게 됩니다. 아이의 본능처럼 성령의 새본능에 따라 중단없이 가다보면 어느덧 정상에 서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산책’이 아니라 ‘등산’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의 등산길을 어머니의 무릎을 기어오르듯이 오르십시오. ‘위대한 등반’을 결행하여 ‘하나님의 성산’을 완등하십시오. ‘기력이 아닌 사랑으로!’ ‘보라, 그리스도와 함께 시온의 정상에서 새노래를 부르는 자들을 복되다 하도다.’
 
하나님의 영적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시온산의 정상을 등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 사람됨’의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주 하나님께 우리 삶의 모든 것을 100%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맡겨야 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력이 아닌 사랑으로!’ 그의 무릎을 기어오르듯이, 우리 ‘하나님의 사람’, ‘약속의 자녀’도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을 그렇게 온전히 신뢰하며 모든 것을 맡기고 100% 순종함으로써 ‘기력이 아닌 처음 사랑으로!’ 시온의 정상에 주와 함께 서게 될 것입니다.
 
“모든 행사를 주 하나님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희의 계획이 이루어지리라!”(잠16: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니, 주의 성령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서 순종하여 참으로 사람이 되어가며 주의 뜻을 이루고 시온성산에서 함께 승리의 새 노래를 부르게 되리라!(요16:13-15;계14:1-5)) 우리에게 로고스센터의 대역사를 이루게 하신 주께서 이제 이 대한민국 경기도 과천 땅에서 ‘참 사람됨’의 대역사, ‘생명살림의 프로젝트’와 ‘생명살림복합단지의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하여 성령 충만하여 무제한의 은총을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한 마음이 되듯, 바울과 성령의 마음이 하나 되듯, 우리의 마음도 하나 되어 함께 거룩한 시온산을 완등합시다. 이제 불꽃같은 성령의 운동으로 하나님과 이웃의 미소를 만들어내는 ‘미소 메이커’로서 성시화 운동의 꽃을 피우며 성민 운동의 열매를 풍성히 맺혀 봅시다. 참 사람됨의 과정을 극복하여 빛나는 졸업장을 받을 하나님의 사람이여! 온전히 주를 의지하라! 성령의 사람이여! 모든 것을 주께 맡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