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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아버지의 은혜 안에서 또 하나의 보내신 자로 살라! 2012-05-27

감사^^* 2012. 6. 27. 17:10

창조주 아버지의 은혜 안에서 또 하나의 보내신 자로 살라!
사도행전 3:18~26    2012-05-27
‘♪ ♫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두려움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나는 ‘나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를 있게 하신 고마우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 존재의 근원이자 생명의 은인인 ‘아버지’가 ‘나를 나 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없이 내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의 사명자로 보냄 받은 자, 모세가 자신을 보낸 이에게 감히 이름을 여쭙자,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하시며 ‘지으시고, 부르시고, 보내신 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의 정체를 알려 주셨습니다. ‘스스로 계시는 자’, 피조된 모든 만물의 창조주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나를 나 되게 해주신, 이 땅의 아버지,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의 한량없는 은혜에 감사드리며, 부끄럽지 않은 자식다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자식의 모습을 되찾고 최선을 다해 자식의 도리를 다하며 살기 원합니다. ‘아버지 그 은혜!’ 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종아리에 툭툭 불거진 힘줄처럼 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낸 동네 앞 수호신인 장승같다. 눈이 오고 비바람이 쳐도 장승을 덮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추위도 더위도 티 내지 않고 다 견디고 난 후, 무던한 여전함으로 남아야 한다. 세월을 탓해서도 환경을 탓해서도 안되는 아버지는 그 모든 상황의 무게를 두 어깨에 메고, 그렇게 말없이 그 자리에 오늘도 서있다.
 
아버지는 꿈을 꾸지 않는다. 꿈꾸는 자녀의 밑거름이 되어야 하기에 꿈은 사치일 뿐이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룻소의 말처럼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제 자식을 지켜내야 하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흘리는 땀의 절반은 눈물이다.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의 절반은 울음이다. 아버지의 헛기침 속에는 두려움이 서려있다. 아버지의 웃음 속에는 남모를 한숨이 섞여있다. 자식으로만 살아서는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아비가 되어야만 비로서 이해할 수 있는 비밀스런 마음.
 
신께 선택된 후, 단 한 번도 외면할 수 없었던 짐들 벗으려 하기보다, 등이 굽도록 희생으로 지키려 했던 짐. 내가 그 짐이었음을 이제야 아오니, 외소해진 어깨에 진은 다 빠지고 패인 주름, 헤진 가죽만 남은 당신의 목에 감사와 존경과 사랑의 목걸이를 걸어드립니다.’ 아버지 그 은혜 ♥♥♥!
 
사도신경의 신앙고백대로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스스로 계시는 자’로서 이로 말미암아 천하만물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現象)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원천(源泉)의 세계’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보여져 나타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음이니’,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니라.’ 만물이 생기는 근원인 ‘원천’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구상과 계획을 따라 프로그램된 것이 이 땅에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원천(源泉)’의 세계는 ‘Thinking’의 세계이고, ‘현상(現象)’의 세계는 ‘Making’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비유컨대 자궁이 있는 여신인 ‘매트릭스(matrix)’처럼 이 세상 천지만물이 생성되는 근원이 ‘원천(源泉)의 세계’ 곧 ‘Thinking의 세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것’, 즉 ‘thinking 하신 것’이 현재 이 땅에서 우리의 삶 가운데 ‘만들어져 : making’ 가고 있습니다. 구원의 프로젝트가 ‘원천(源泉)의 세계’에서 프로그램(program)된 대로 ‘현상(現象)의 세계’에서 그대로 실행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원천(源泉)과 현상(現象)’, 이 둘이 합해져 진리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프로그램(program)’대로 성경의 말씀같이 그렇게 이 땅에 이루어지는 진리의 역사에 참여하는 자는 복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행3:18)
 
이 세상에 현상(現象)으로 나타나는 모든 일들은 ‘그 마음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program)을 따라 예정을 입은 우리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源泉)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엡1:11)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필요한 것들, 가장 좋은 것들을 은혜로 값없이 주십니다. 큰 사랑 속에서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주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도록 아름답고 선하게 진실로 인도하심으로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하십니다. 귀향한, 방탕했던 탕자에게 조차도 두 팔을 벌려 품에 안으시며 용서하시고, 실수까지도 사용하시어 약속을 이루시는 그런 참 사랑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 소망인의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만큼 사랑이 되듯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실 만큼 진실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전부를 주시는 그 분이 아들과 함께 무엇을 아깝게 여기시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환난과 핍박과 곤고와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과 그 어떤 것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고난과 인내는 하나님 아버지의 회복의 복을 위한 복된 과정임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아버지가 주시는 최고의 복은 ‘회복’의 ‘복’입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실낙원(失樂園)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락원(復樂園)되게 하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렇게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대로 (뜻하시어 프로그램하신대로) 만물을 회복할 것이니라’(행3:19-20). 하나님 아버지의 참 형상인 ‘그리스도의 형상’같이 잃어버린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되찾고, 빼앗긴 권리를 회복하여, 만물을 회복하신 영광의 새 나라에서 영생복락 하게하는 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가 당신의 자녀에게 복주시기 위하여 사랑을 배경으로 ‘보내심의 역사’를 펼치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복주시기 위하여 너희 중에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라. 보내신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며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멸망 받으리라.’(행3:22-26) ‘영생의 복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자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3:16), 제자들의 즉문에 주님의 즉답대로 ‘썩는 양식이 아닌 썩지 않는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9) 또 하나의 그리스도, 또 하나의 보내신 자로서, 우리 아버지의 참 자녀들은 주제를 잃지 않는 삶에 이유가 분명한 사명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제를 잃지 말아야 하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 있는 한 시골교회에는 여느 교회와는 달리 본당 안에 ‘십자가’가 두 개 걸려있습니다. 설교단 뒤에 전통적인 십자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설교단 반대편 기둥에 또 하나의 십자가가 걸려 있습니다. 단상의 설교자들이나 볼 수 있음직한 뒤편의 이 십자가의 유래는 17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웨덴의 국왕 ‘찰스 12세’가 수행원들과 함께 예정에 없이 주일날 예배 중이였던 이 교회에 들려 목사님의 강연을 듣기 시작하는데서 유래를 찾게 됩니다. 강단에서 설교 중이던 목사는 예기치 않게 들이닥친 왕과 수행원들을 보자 그만 당황하게 됩니다. 황급한 나머지 여러 날 준비해왔던 ‘설교의 메시지’를 멈추고 국왕의 방문에 걸맞은 립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 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뛰어난 정치력 지도력, 업적 등등.. 이윽고 예배를 마친 뒤 국왕은 정중한 예의를 갖추고 가던 길을 서둘러갑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국왕으로부터 그 시골교회의 목사에게 소포가 배달되었습니다. 기대감으로 흥분된 목사가 소포를 풀어 봅니다. 바로 설교단 맞은 편 기둥위에 지금 걸려있는 그 십자가와 함께 국왕이 친필로 쓴 다음과 같은 친서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 십자가를 설교단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 맞은편 기둥에 매달아 놓으십시오. 그리고 설교단에 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제를 잊지 않도록 그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십시오.’
 
‘주제’를 잃지 않도록 ‘십자가를 잘 보이는 곳에.’ 이 말의 의미는 ‘십자가를 보며, 잃지 말아야 하는 주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작가의 주제란 드라마일 것이고, 사업가의 주제란 제품이며, 애인과의 주제는 사랑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 모두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주제란 불시에 예배에 참석한 국왕으로 인해 당황한 나머지 멈추게 된 ‘설교의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그날 참석한 국왕에게도, 꼭 필요한 궁극적인 최고의 가치인 ‘진리’인 것이며, 그 내용을 전하여 알게 하는 설교는 ‘복음’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그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복음, 그것을 증거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의 주제 일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천하 사람 중에, 예수 이름이외에는 이 세상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주제가 분명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3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신, 스티그마, 바보 청년 의사 안수현처럼 결코 주제를 잃지 않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 삶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 주제를 잃지 않는 크리스천인 우리는 ‘또 하나의 보내신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제를 잃지 않는 사명자, 보내신 자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우리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우리된 것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지으신 은혜, 사명자로 부르신의 은혜,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보내심의 은혜, 한량없는 은혜를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죽어도 갚을 길 없는 은혜에 보답하는 자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산에 가면 인된다 했던 어린 시절이 아닌, 성숙한 어른이 된 이제는, 산에 가서 땔감도 해 와야 하고, 산삼도 캐 와야 하며, 호랑이도 잡아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빠(abba),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자식이 있겠습니까? 낳으시고 키우시고 보살펴 인도해주시는 아버지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으며, 그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으면 그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형상이 회복되어 아버지의 모습을 꼭, 쏙 빼닮은 자식답게, 자식의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 하나의 보내신 자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은혜의 수고를 해주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소망인은 모든 것을 있게 만드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아버지의 자식다운 자식, 약속의 자녀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법이니, 지난 죄와 잘못으로 의기소침하고 우울하며, 절망하고 낙심하여 매사에 의욕이 없고 소극적인 것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날 들려지게 될 ‘빛의 자녀들이여 가자!’ 하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며, 오늘 항상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춤추며 선한 사명을 감당하는 당신은 아버지가 이 세상에 파송한 자랑스런 자녀입니다. 이제 아버지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낼 유다여! 창조주 아버지의 은혜 안에서 또 하나의 보내신 자로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