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하나님!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육백만 학살을 당한 유대인들이 교수형으로, 가스실에서 죽어가며... 절규했던 비명. 어떻게 이런 일이...
주님의 떨리는 음성. ‘그들이 죽어가는 그 곳에 내가 함께 있었다. 고통스런 아픔, 함께 느끼며 그들과 함께 죽었노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슬픔과 고통과 비탄에 잠긴 거기 그 곳에, 그리고 오늘 여기에 함께 계시며, 아파하십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않으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리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합3)
네 천사에게 ‘심판의 바람을 붙들고 있으라’ 명하신 그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영생과 영벌의 경계선상에서 약속의 사람은 깨어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목경계선인 생명경계선상을 살고 있는 우리 소망인은, 희망의 삶을 살아가는 약속의 사람! 희망찬 내일을 약속하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천막 속 비명(悲鳴)...!
세월호 희생자들의 시신 확인은 천막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부모가 이 시신이 자기 자식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거기가 지옥입니다.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비와 어미의 발걸음을.. 내가 걷는다고 상상하면.. 생각만으로도 몸서리 쳐집니다. 그 천막 속에는 끝없는 암흑, 무서운 절망이 있습니다.
‘단테’는 지옥문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고통의 도시로 가려는 자, 나를 지나가라. 영원한 비통으로 가려는 자, 나를 지나가라. 길 잃은 자들에게 가려는 자, 나를 지나가라.......나는 영원할지니, 내게 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문으로 들어서는 아비 어미는 모든 희망을 버렸습니다. ‘내게 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것은 희망을 버리면 지금 이곳이 바로 지옥이 된다는 뜻입니다. 희망이 없다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희망을 버리면 지옥이 됩니다.
천막 속에서 아비 어미는 목 놓아 웁니다. 그 울음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라고 합니다. 천막 속 비명....! 모든 희망을 버리고 지옥문 앞에 선 아비 어미가 애타게 신(神)을 붙잡으며, 절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내는 절규요, 비명입니다.
‘여성, 키 168. 윗니 금보철. 오른 쪽 귀 피어싱, 2009.8.15라고 적힌 목걸이...’ 유족들이 있는 강당 앞에 시신 인상착의를 알리는 대형스크린에 뜬 자막을 보고 한 어머니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걸음을 떼지 못하고 발만 구릅니다. ‘어떻게 해, 어떻게 봐..’ 다른 가족이 부축해 지옥문과도 같은 천막으로 걸음을 옳깁니다.
‘내 새끼 @@@!!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생각하려해도..엄마는..하늘나라에서도 행복해야 해. 꼭 다시 만나자...사랑해....’ 한 어머니가 쓴 쪽지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단테는 지옥을 지나 천국문 앞에서 어린 시절 첫사랑이었던 ‘베아뜨리체’를 만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슴 설레는 환희의 만남...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 모두가 천국문 앞에서 예쁜 자식들을 다시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아이고, 내 새끼. 오래 기다렸지?’ 하면서 끌어안고 웃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희망찬 내일이 약속된 천국!
희망을 버리지 말고, 지옥문을 지나 천국 문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환희 가운데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을 잃고, 갈 곳없이 길 잃어버린 자들의 곳, 지옥. 그러나 우리는 갈 곳이 있습니다. 오늘만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찬 내일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길의 장애를 두려워 말라. 앞으로 앞으로 희망찬 내일을 향하여,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아가라!’
언약의 사람은 지옥문을 떠나, 천국을 향한 희망찬 삶의 여정을 떠납니다.
지옥문...자식모두를 잃고 흑암의 천막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며.. 하나님을 찾는 욥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주신분도 하나님,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겸허하게 약속 성취의 하나님만을 간절히 사모하는 참된 신앙인 욥! 열 명의 자식들. 재물. 아내..몸의 건강....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힘 있게 붙들고 일어섭니다. 그의 기도는 정결하고 그의 손에는 포악이 없었습니다(욥16). 욥과 함께 고난의 통과의례를 극복합시다. 환난의 터널을 지난 후에 생기를 받습니다. 욥과 함께 깨어 기도하며, 희망찬 내일을 맞이합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희망찬 결말을 보았느니라.’(약5:11)
욥기를 읽으며, 욥과 함께 살아갑니다. 욥처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함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항상 깨어 영적인 것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환난의 터널을 통과해 영광의 승리에 이르고자 합니다. 원망치 않고 감사하며 정갈한 욥의 기도를 하면서, 물(水)처럼 인위적(人爲的)이지 않고 자연적(自然的)으로 목적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리외상증후군’ 처럼 에펠탑증후군이 있습니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이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아니하면, 갑자기 구토, 설사, 정신 우울증세...등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는 에펠탑증후군! 이를 통하여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 ‘보던 것을 계속 보고, 하던 것을 계속하라!’ 욥과 함께 깨어 기도하는 153성화운동 실천자들은 통과의례를 극복하고, 환난의 터널을 지난 후, 천국 문에 이를 것입니다. 그곳에서 꿈에도 그리던 보고 싶은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 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그 거룩한 성전이 불타고 멸망했습니다.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노예로 팔려갑니다. 하나님의 매뉴얼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 절망 속에서 희망찬 내일의 약속이 실현됩니다. 바벨론 포로귀환!, 회복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 참된 신앙의 삶입니다. 우리는 참된 희망의 삶을 살아갑니다. 약속으로 시작하여 마칠, 스룹바벨 성전, ‘이전의 나중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클 것이라.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네 것이라...천하가 진동되어도 진동치 않고, 이세상의 참된 생명, 이 세상의 희망으로 굳건하리라, 참 희망의 터전으로 굳게 세워지리라!
우리가 원치 않는 매뉴얼대로 인도하실지라도 감내하며 따라야 삽니다. 감사하며 따라야 참된 삶,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매뉴얼대로 원망치 말고 따라야 참으로 안전케 됩니다. ‘안락(安樂)한 것이 안전(安全)한 것은 아닙니다.’ 불편한 매뉴얼이라도 지켜내야 합니다.
어디서 태어날 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디서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얼굴로 태어날 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떤 얼굴로 죽을 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옥문을 지나 천성을 향해 가는 사람들아! 욥과 함께 깨어 기도하며, 희망찬 내일의 삶을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