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앞바다에 잠겨있는 세월호.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살아와....사랑해....
살아 돌아오라..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희망을 놓지 마..기다리고 있어....
생존자는 살아 돌아오게 하시고, 잠자는 자는 부활로 돌아오게 하소서!
생명이며 부활이신 주님!‘
그 어떤 말로도, 그 무엇으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오직 부활의 은혜로만...
부활은 기독교신앙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능력이고 축복이자 영광입니다. 부활의 생명의 능력은 딱 한군데에서만 드러납니다. ... 죽는 곳...입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현장...슬픔이 너무 깊어져 우울이 되면 안되는 것. 슬픔과 절망과 고통과 죽음 속에서 부활하신 부활의 주님의 은혜가 꼭 필요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십자가상에서 힘없이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마지막 실낱같은 기대, 한 올의 희망마저도 저버린 채, 수치, 모욕, 조롱당하시며 피투성이가 되신 채, 모진 고통 속에서 무기력하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정말로... 죽고 마셨다...’ 처절한 슬픔과 극한 낙담과 실망 속에서 하루 또 하루를 눈물로 보내다 마리아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고, 향유를 찾아 지니고 집을 나섰습니다. ...먼동이 트기 전 새벽에 캄캄한 어둠의 길을 몇 번이나 넘어지며 ...그래도 그토록 자신의 한 많은 삶에 은혜를 베푸신 그 사랑을 갚을 길이 없어서...시신이라도 수습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눈물범벅이 되어서 동굴에 도착합니다. ‘피투성이가 된 주님의 시신이라도 닦아드리고 수습해 드려야지....’
아무도 찾지 않아... 동굴 속 어딘가에 버려져 쓸쓸히 방치되어 있을 주님의 시신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한 청년을 만납니다. ‘여기 나사렛 예수의 시신이 어디에 있나요....’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나요..’ 그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음성이 들렸습니다. 가슴을 저미며 마음을 울리는 소리...‘마리아야...’ 빛나는 광채 속에 살아계신 주님의 음성....‘주님이 살아나셨다.....!주님이 부활하셨다......!부활하셨다......!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순간, 슬픔은 극한 기쁨과 환희로 절망은 희망으로 어둠은 빛으로 영광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말씀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이...부활하셨습니다....’
미친 듯이, 마리아는 달려가 부활의 소식을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조차 믿지 않았습니다...부활의 신비와 능력...부활의 사건은 인류역사상, 모든 일을 합리적 논리적으로 처리해가려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고통을 주는 사건입니다. 부활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건 부활의 증인들은 오늘도 이곳에 이렇게 존재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로부터 베드로와 제자들은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이었습니다. 희망도 기대도...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절망하고 낙담하며 씻지 못할 트라우마에 괴로워했습니다.....그 다음 차례는 자신들일 것이라는..두려움, 불안이 점점 가중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죽을 것 같았습니다....그 때, 제자들이 숨죽여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사방이 막힌 작은 방안으로 스며들듯 부활의 주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물질(物質)’도 아니고, ‘비물질(非物質)’도 아닌...,‘신물질(新物質)’의 신비한 ‘부활의 몸’으로 들어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평안하라...내가 함께 하노라’ 하시며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아버지가 나를 보냄같이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의 은혜. 십자가와 부활의 사랑. 모든 슬픔과 절망과 고통의 죄악된 본질적 근원을 근절하고 치유하여 새 인생으로 만들어 줄 참된 행복입니다. 이 참된 평안과 행복과 위로가 세월호의 희생자와 슬픔을 당한 모든 이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고통과 눈물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세월호의 아이들....죄악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 세월을 아껴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최우선시 해야 할 것입니다. 한 생명의 소중함, 한 영혼을 구하여 살려내는 ‘생명살림의 역사’가 얼마나 절실하고, 귀한 것임을 절절히 일깨웁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밖에는 본질적으로 참된 생명을 살릴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깨어서 기도합니다.
‘아담’ 안에서 죽음이 왔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새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를 뒤따라, 참사람이 되어가는 통과의례를 잘 통과하는 자는 부활 생명의 참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한국의 바둑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조훈현 9단, 그는 불과 9살의 나이에 그 어렵다는 프로의 관문을 뚫었습니다.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세계신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습니다. 바둑에 관한 한 그 누구도 그의 천재성에 이의를 달수 없을 것입니다. 그 후, 일본에 유학하여 바둑의 명문인 세고에의 문하에서 스승 ‘세고에 겐사쿠’의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스승은 어느 분야든 누구에게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하는 문제에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영향에 따라 훗날의 삶 전반의 가치가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바둑의 명인이 되도록 키워 주겠다. 하지만, 그 전에 네가 할 일이 있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어린 제자 조훈현에게 세고에 스승이 한 말입니다. 이 한 마디의 짧은 가르침에는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약속’과 ‘조건’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약속은 명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고, 조건은 사람이 되라는 것인데, ‘사람에게 사람이 되라’는 스승의 이 말은, 유추해 보건데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진검승부인 바둑 세계에서 명인이 되기 위해선 ‘사람이 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 과정에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환경이 더 좋을 수 없는 에덴동산에서도 사람 되는 과정에서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중퇴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한국 바둑계에 살아있는 전설 조훈현 9단, 아니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과 평정심이 유지되는 반전무인의 경지의 도를 터득한 그도 “저는 아직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전히 노력합니다.”라는 그의 겸손함에서 세고에 스승이 원했던 ‘사람’을 봅니다.
불순종의 첫 아담은 사람이 되는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순종의 마지막 아담은 참사람 됨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는 겸허하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참 사람으로 부활생명을 누리는 영광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뒤따라 십자가의 과정을 통과의례로 잘 통과한 참사람은 영광승리의 부활생명을 경험할 것입니다.
단상에 보이는 대로 고난주간내, 고난의 붉은 십자가가 새하얀 영광승리의 부활생명의 십자가로 바뀌었듯, ‘말씀하시는 교회’는 이제 곧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승리하는 교회’로 간판을 새롭게 바꿀 것입니다.
‘죽음의 죽음’ 부활! 부활은 대신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자기 자신이 다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유일무이한 존재, ‘나’라는 정체성은 개나 소나 짐승으로 바뀔 수 없는 ‘온리 원’의 고귀한 사람 피조물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처럼 ‘나 @@@, 정체성’이 사라지고 다른 짐승으로 바뀌어 살아가게 된다는 거짓에서 벗어나 부활은 자기 자신, @@@이 다시 사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가장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이 모든 것은 거짓이요, 쓸데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확증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처럼 우리의 부활도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믿음일 것이요, 우리의 바람이 이 세상뿐이면 우리네 인생은 불쌍한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코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승리! 영광이 언약의 무지개로 약속되어있는 십자가죽음과 부활의 삶이 실제로 체험될 것입니다.
‘대신(代身)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부활생명’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십자가 죽음과 떨어질 수 없이 밀접하게 관계되어있는 연계된 부활생명!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생명살림 역사’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으며, 우리 소망교회가 해야 하는 옳은 일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를 증언합니다. 우리 소망인 각자가 감당해야 할 이 귀한 십자가 사명, 영혼을 살리는, 부활생명의 역사 즉, 생명살림의 역사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필생의 사명입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서만 능력이 드러나는 ‘부활’ 생명의 승리! 깨어 행복한 순례(巡禮) 인생(人生)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부활 생명의 승리! 나는 참된 행복의 순례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