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밥상머리는 내 자녀가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우물가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방식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한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빵과 고기를
먹이셨고(왕상 175,6 참조), 예수님은 빈 들에서 해질녘까지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눅 9:12~17 참조).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앉으셔서 떡을 사례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눅 22: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친히 그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거룩한 식사로 주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모일 때마다 "집에서 떡을 떼며"(행 2:46)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매주마다 믿는 집에 모여서 밥상머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찬식이 교회에서 예배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마치 공예배에 끼워 파는 이벤트처럼 되어버려
참 안타깝습니다.
성찬은 본래 집에서 하는 일인데 교회의 예전(例典)으로
받아들여진 후, 요즘에는 바쁜 사람들을 붙들어 앉혀놓고
시간을 끌 수 없어서 점점 간단해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회당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도 유대 전통을 따라 먹는 일과 교회 모임을
구분해서 지켰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행 2:46)
성전에 모여 떡을 뗀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 떡을 뗀 것입니다.
예수님이 몸소 본을 보이시고 시작하신 성찬 예식도
집에서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찬을 집에 가서 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주일에 밥상머리 예배가 믿는 가정에 정착되어
자녀들의 신앙을 불러 일으켜주었으면 합니다.
매주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 만찬이 유대인의 삶에
정착되어 이어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만찬이 가정에서
가정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어린이들을 성찬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잇는 고리가 성찬에는 끊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의 몸을
영적인 떡으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가정에서
드리는 밥상머리 예배를 통해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과 신앙을 다음 세대에까지 전승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밥상머리는 내 자녀가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우물가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방식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한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빵과 고기를
먹이셨고(왕상 175,6 참조), 예수님은 빈 들에서 해질녘까지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눅 9:12~17 참조).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앉으셔서 떡을 사례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눅 22: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친히 그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거룩한 식사로 주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모일 때마다 "집에서 떡을 떼며"(행 2:46)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매주마다 믿는 집에 모여서 밥상머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찬식이 교회에서 예배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마치 공예배에 끼워 파는 이벤트처럼 되어버려
참 안타깝습니다.
성찬은 본래 집에서 하는 일인데 교회의 예전(例典)으로
받아들여진 후, 요즘에는 바쁜 사람들을 붙들어 앉혀놓고
시간을 끌 수 없어서 점점 간단해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회당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도 유대 전통을 따라 먹는 일과 교회 모임을
구분해서 지켰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행 2:46)
성전에 모여 떡을 뗀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 떡을 뗀 것입니다.
예수님이 몸소 본을 보이시고 시작하신 성찬 예식도
집에서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찬을 집에 가서 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주일에 밥상머리 예배가 믿는 가정에 정착되어
자녀들의 신앙을 불러 일으켜주었으면 합니다.
매주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 만찬이 유대인의 삶에
정착되어 이어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만찬이 가정에서
가정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어린이들을 성찬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잇는 고리가 성찬에는 끊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의 몸을
영적인 떡으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가정에서
드리는 밥상머리 예배를 통해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과 신앙을 다음 세대에까지 전승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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