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고, 먹고, 영생하는 길
유대인들은 식품을 먹기에 합딩한 음식과 합당하지 않은
음식으로 구분합니다.
먹기에 합당한 음식을`코셔'(kosher, `합당한' 혹은 `적당한'
이란 뜻)라 부르며, 먹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트라이프'
(traif, 부정한)라고 부르는데, 트라이프는 제사적 의식을 하지
않은 방법으로 도살한 짐승이나 그 고기를 담은 그릇가지
모두 포함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사비온 유치원에서 유아교육 현장 수업을
받고 있을 때,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데리러 올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 문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은 수염이 더부룩하게 길게 난,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한 분이 유치원에 오셨습니다.
그를 보고 리브카가 반가워하며 달려가 품에 안기기에 내가
말했습니다.
"리브카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셨구나."
그랬더니 옆에 있던 슐로미 유치원 선생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귀띰을 해주었습니다.
수염이 하얗지 않고 검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습니다.
그들이 돌아가자 슐로미 선생이 리브카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인데 특히 고기를 도살하는 일을 맡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에는 짐승의 뒷다리와 볼기를 먹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동안 엉덩이뼈를 얻어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찬 32:25 참조).
만약 짐승의 뒷다리와 볼기를 먹으려면 그 짐승의 볼기에
있는 좌골 신경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웬만한 실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제의적 도살자들을 쇼헷(shohet)
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짐승을 도살할 때 뼈를 다치게 하면 고기가
부정해진다고 생각하여 그 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아주
노련한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뼈에서 고기를 분리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들었을 때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임종하신 후
요한이 왜 `그의 뼈가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였다'(요19:36 :
출12:46 참조)는 사실을 강조하여 기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뼈가 꺽인 고기를 부정하게 생각하므로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이 뼈를 다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로마 법정의 우유부단한 빌라도의
판결만으로도 사형이 선고되실 수 있었는데, 굳이 유대
법정인 가야바의 뜰에서 도살당할 양처럼 서신 것도 도살이
갖는 제의적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시기 위해, 먹기에
합당한 영적인 코셔가 되시기 위해 도살당한 양같이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요 6:51)
예수님은 일반적인 떡이 아니라 성결한 제물입니다.
우리가 영생하기 위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영적인 음식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요즘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등으로 고기를 먹을 때 마음이
불안합니다.
광우병이나 조류독감처럼 세상에는 성결하지 않은, 병든
거짓 진리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때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이라는 인증마크가
찍힌 예수님을 믿고 먹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안전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아이들이 불량식품을 먹으려 할 때, 또 인터넷이나 텔레비젼,
만화 등에서 불량한 영의 양식을 먹으려 할 때, 아이들을 그
불량식품들로부터 떼어놓으세요.
그 대신 아이의 입에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좋은 음식을
넣어주고, 아이의 손에 생명의 떡이 되신 주님의 말씀을
쥐어주세요.
유대인들은 식품을 먹기에 합딩한 음식과 합당하지 않은
음식으로 구분합니다.
먹기에 합당한 음식을`코셔'(kosher, `합당한' 혹은 `적당한'
이란 뜻)라 부르며, 먹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트라이프'
(traif, 부정한)라고 부르는데, 트라이프는 제사적 의식을 하지
않은 방법으로 도살한 짐승이나 그 고기를 담은 그릇가지
모두 포함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사비온 유치원에서 유아교육 현장 수업을
받고 있을 때,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데리러 올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 문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은 수염이 더부룩하게 길게 난,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한 분이 유치원에 오셨습니다.
그를 보고 리브카가 반가워하며 달려가 품에 안기기에 내가
말했습니다.
"리브카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셨구나."
그랬더니 옆에 있던 슐로미 유치원 선생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귀띰을 해주었습니다.
수염이 하얗지 않고 검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습니다.
그들이 돌아가자 슐로미 선생이 리브카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인데 특히 고기를 도살하는 일을 맡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에는 짐승의 뒷다리와 볼기를 먹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동안 엉덩이뼈를 얻어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찬 32:25 참조).
만약 짐승의 뒷다리와 볼기를 먹으려면 그 짐승의 볼기에
있는 좌골 신경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웬만한 실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제의적 도살자들을 쇼헷(shohet)
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짐승을 도살할 때 뼈를 다치게 하면 고기가
부정해진다고 생각하여 그 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아주
노련한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뼈에서 고기를 분리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들었을 때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임종하신 후
요한이 왜 `그의 뼈가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였다'(요19:36 :
출12:46 참조)는 사실을 강조하여 기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뼈가 꺽인 고기를 부정하게 생각하므로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이 뼈를 다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로마 법정의 우유부단한 빌라도의
판결만으로도 사형이 선고되실 수 있었는데, 굳이 유대
법정인 가야바의 뜰에서 도살당할 양처럼 서신 것도 도살이
갖는 제의적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시기 위해, 먹기에
합당한 영적인 코셔가 되시기 위해 도살당한 양같이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요 6:51)
예수님은 일반적인 떡이 아니라 성결한 제물입니다.
우리가 영생하기 위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영적인 음식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요즘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등으로 고기를 먹을 때 마음이
불안합니다.
광우병이나 조류독감처럼 세상에는 성결하지 않은, 병든
거짓 진리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때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이라는 인증마크가
찍힌 예수님을 믿고 먹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안전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아이들이 불량식품을 먹으려 할 때, 또 인터넷이나 텔레비젼,
만화 등에서 불량한 영의 양식을 먹으려 할 때, 아이들을 그
불량식품들로부터 떼어놓으세요.
그 대신 아이의 입에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좋은 음식을
넣어주고, 아이의 손에 생명의 떡이 되신 주님의 말씀을
쥐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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