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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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열여섯 번째 할 일 / 동창 모임 만들기

감사^^* 2010. 1. 1. 19:47
열여섯 번째 할 일 / 동창 모임 만들기


고속도로에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 길은
갈수록 희미해진다.
잠시 후면 동창들과 만날 수 있다.
희부연 거리를 더듬으며 운전하느라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와는 달리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학창 시절의 여러 가지 일이, 마치 어제
그랬던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20여 년이 지났다니….
그 해 십대였던 소년 소녀들을 오늘밤에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친구도 오늘 나올까?'
식당 밖에 차들이 줄지너 세원져 있다.
어떤 기사가 고급 승용차를 정성스레 닦고 있다.
그 옆에 주차된 20년도 넘어 보이는 낡은
소형 트럭이 정겹게 느껴진다.
식당 안이 떠들썩하다.
예상 밖으로 많은 친구들이 참석한 모양이다.
`그 친구도 저 안에 있을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몇몇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옛 얼굴을 알아본 친구들이 이름을 부르며
뛰어와 손을 잡고 안부를 묻는다.
반가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른 친구들도 속속 도착한다.
처음에는 서로 알아보지 못해 잠시 허둥대다가
이름을 잘못 부르거나 다른 친구로 착각해
폭소가 터지곤 한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우스꽝스러운
별명들도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20여 년 전의 기억들이 앞다퉈 눈앞에
나타난다.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을 말해버리고 싶어
자꾸 두리번거린다.
`그 친구는 어디 있지?'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한때 듣기 싫어하던 웃음소리였는데….
천천히 눈길을 돌리자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보인다.
여전히 공주처럼 차려입은 그녀가 많은
친구들에게 둘려싸여 있다.
주차장에 세워진 고급 승용차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20여 년 전, 수업 시간에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이렇게 소리쳤다.
"선생님, 제 부로치가 없어졌어요.
누군가 훔쳐갔나봐요.
아빠가 외국에서 사다주신 비싼 건데 어쩌면
좋아요."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가 노려보는 눈길 끝에는 내가 있었다.
화가 난 선생님이 엄하게 말했다.
"가방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 책상 위로
올려놓아라.
주머니 속에 있는 것도…. 자, 빨리 움직여라!
나쁜 녀석들 같으니라구."
가방을 열고, 안에 있던 것들을 꺼냈다.
그런데 가방 바닥에 못보던 것이 있었다.
브로치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제 도둑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망설이다가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브로치를 쥐었다.
`그래, 네 소원이라면 기꺼이 도둑이 되어 주마.'
그때 누군가의 손이 뒤에서 나타나 내
손가락을 풀더니 브로치를 빼앗아 갔다.
곧이어 나직하게 속삭이는 류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류이가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제가 가져갔어요. 브로치가 아주
예뻐서 그랬습니다.
여동생 주려고 훔쳤어요.
잘못했습니다."
지금 친구들 사이에서 웃던 그녀가 다가온다.
한 발짝 가까워질 때 마다 마음이 아파온다.
그녀는 여전히 웃는 표정이다.
`류이는 왜 아직도 안 왔지? 연락을 받지
못한 걸까?'
류이는 그 다음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의 홀어머니가 학교에 다녀간 후,
전학을 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선생님은 그 친구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류이는 그때 왜 그랬을까?'
웃는 얼굴로 그녀가 말을 걸어온다.
강한 취기가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과 건배를 한 모양이다.
"잘 지냈니?"
"응, 너는?"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그녀는 손에 든 술잔을 다 비우고 나더니,
다시 탁자 위의 술병을 들어 넘치도록 따른다.
왜 저러는 걸까?
류이의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류이는 전학 간 게 아니라 학교를 그만두고
돈 벌러 떠났다" 고 했다.
연락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매달렸지만,
어머니 역시 연락처를 모른다고 했다.
훤칠한 미남 류이는 반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다.
그가 가난한 집 맏아들이라는 것은 나만
알고 있었다.
류이의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류이와 나는 어릴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사이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원망이 기득하다.
왜 그렇게도 나를 미워했을까?
세상에 부러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아이가.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쏟아내듯 말한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그녀와 말을 나누고 싶지 않다.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흐르기
시작한다.
"네가 류이랑 그렇게 친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류이도 지금 여기 함께 있었을 텐데…."
"무슨 소리야? 너 류이의 소식 아니? 그
애는 지금 어디 있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울기만 한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친구가 말한다.
"4년 전에 죽었대. 얘가 좀 전에 그
이야기를 듣고나더니 계속 술을 마시네.
큰 빌딩을 짓는 공사장에서 일했는데
높은 데서 떨어졌다지…."
그 순간 가슴이 뻥 뚫렸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이렇게 너를
보려고 먼 길을 왔는데, 너는 오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올 수가 없구나.'
맥이 탁 풀리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진다.
그때 내 어깨에 기대어 울던 그녀가
고개를 들고 말한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해서 어떡하지.
나 이제 어쩌면 좋을까?"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괜찮아, 괜찮아."


졸업하던 그날 이후, 우리의 우정은
우중충한 도시 속에 녹아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친구들과 이미 연락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심합니다.
`2년 후에는 꼭 나나야지'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만약, 지금 만나지 않는다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 늦기 전에 벗들과 추억이 담긴
잔을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