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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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열여덟 번째 할 일 / 사랑하는 사람 돌아보기

감사^^* 2010. 1. 1. 19:48

열여덟 번째 할 일 / 사랑하는 사람 돌아보기


그녀는 시샘이 많다.
주변 여자들이 생일이나 결혼 기면일에
남편한테 받은 선물을 자랑할 때마다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액세서리는 다른 여자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았을 뿐 아니라 훨씬
고급스럽기까지 했다.
명품 숍을 돌아보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취미였다.
누군가가 새로 수입된 핸드백을 가지고 나와
자랑을 하면, 반드시 복수를 해줘야 직성이
풀렸다.
그것보다 비싸고 좋은 것을 사서 상대방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마음이 가벼웠다.
"내 것보다 비싼 제품이군요."
상대방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누가 사준 거예요?"
앞의 말은 그녀의 자존심을 한껏
추켜세워주었지만, 뒤의 말은 그녀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건드렸다.
"내가 샀어요!"
그녀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속마음은 한없이 씁쓸했다.
`다른 남편들은 돈을 얼마 못 벌어도 아내한테
좋은 핸드백을 척척 사주는데, 우리 남편은
돈도 잘 벌면서 선물은 고사하고 왜 내
생일조차 기억을 못하는 거지?'
"돈을 줄 테니까 당신이 알아서 사. 알겠지?"
그녀가 타박할 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돈! 돈! 돈! 이 남자는 도대체 무드를 몰라.
평생 연애 소설도 한 권 안 읽은 모양이야.
장미꽃 한 송이와 예쁜 카드로 장식한
선물을 침대 머리맡에 살짝 놓아두면 얼마나
멋져?'
그녀는 도무지 로멘스를 기대할 수 없는
남편에 쏘아붙였다.
"선물은 돈으로 따지는 게 아니예요."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 담겨 있느냐라고요."
"그럼 그렇게 비싼 핸드백은 왜 사달라고
졸랐어?
마음이 담긴 싼 선물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야."
남편이 비꼬듯 대꾸하자 그녀는 정말 화가 났다.
"만약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죽으면,
나한테도 뭔가 남겨진 물건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는 물건 말예요!
그런 것을 어떻게 싸구려로 해요?"
그녀는 말을 쏘아 놓고 곧바로 후회했다.
남편의 옆모습은 전보다 늙어 보였다.
얼굴에 검은빛이 돌고 눈자위도 누렇게 변해
있었다.
요즘 일이 많아 피곤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미안했던 마음은 급방 사라졌다.
남편이 또 마음에 안 드는 소리를 한 것이다.
"내가 죽으면, 당신한테 돈을 모두 남겨줄께.
그게 훨씬 현실적이지 않아?"
사업가인 남편은 여전히 손에 든 서류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며칠 후 남편이 일찍 퇴근했다.
남편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를 확
끌어안았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이 양반이 왜 이러나? 낭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내친김에 영화까지 보고 돌아왔다.
그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남편에게 이처럼 자상면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귀울여주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남편은 침대에 앉아 작은 손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더니 그 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날 하루의 행복에 흠뻑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남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사업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는데, 그런 사람이 오늘은 180도
바뀐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가 세수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채비를
했을 때도 남편은 여전히 손가방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뭔데 그래요?"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남편은
화들짝 놀라더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말끝을 흐렸다.
"으응... 별거 아냐.":
"뭐가 별게 아닌데요? 그 속에 대체 뭐가 있어요?
나도 좀 봅시다."
남편은 황급히 손가방을 뒤로 감추며 마치
아침에 일어나 요에 실수한 것을 엄마에게
들킨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남편이 귀엽다고 느꼈다.
적어도 이 순간, 남편은 서류 뭉치에 빠진
일벌레가 아니었다.
남편이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연애할 때처럼 남편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의 손가방을 빼앗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남편이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면서 말했다.
"알았어, 지금 줄께. 주면 될 거 아냐."
그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원래는 당신이 잠들면 머리맡에 몰래 두려고
했었어."
그녀가 웃음을 머금은 채 물었다.
"대체 뭔데 그래요?"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밖에 모르는 남편이 그녀의 취향을 알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반지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반지를 보았다.
`설마….'
노란 알이 투명하면서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반지를
남편에게서 빼앗아 들었다.
그러고는 섬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맙소사!'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서 이런 선물을 받는 날이 있다니.'
그것은 3캐럿 옐로 다이아몬드였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다이아몬드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옐로 다이아몬드를 보면서 그녀가 "죽기
전에 한번 껴보기라도 했으면" 하고 혼잣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소리를 남편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무심코 한 이야기를, 남편은 지금까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감동한 나머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고마워요, 여보."
한참 동안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손가락에 반지를 낀 채 잠자리에 들었다.
반지를 빼놓으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꿈만 같았다.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아 그녀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내일 이걸 끼고 나가면 모두 기절하겠지.'
그녀가 아는 사람들 중에 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진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귀한 옐로 다이아몬드라니….
남편 역시 옆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잠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것이 일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에 겨워 눈물이 찔끔 났다.
이때 남편이 갑자기 팔을 힘주어 잡았다.
그동안 남편에게 잘못한 일들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담담한 말투였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거든.
그런데 오늘 결과가 나왔어…."

                                                  -류융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예단하지 마세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지나치고 나서야 후회하게 됩니다.
세상은 이따금, 후회할 여유조차 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