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겪어본 사람들 모두 그를 `망나니' 라고
불렀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꾸지람이라도 들으면
곧바로 가방을 싸서 집으로 와버리곤 했다.
자라면서 주색잡기에 빠졌다.
집 안을 온통 뒤져 돈을 들고 가출하는게
일이었다.
돈이 떨어지면 집에 돌아와 소일을 했다.
부모는 `장가 들면 정신을 차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시켰다.
신부는 몰락한 명문가 출신으로, 돈으로
사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저렇게 집안 좋은 아가씨가 어쩌다가
저런 못된 인간한테 시집을 왔을까."
그의 집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 것은
이때부터였다.
신부가 기르던 강아지를 시집오녀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도 그의 생활은 바뀐 것이 없었다.
날마다 술에 절어 살았고 걸핏하면
아내에게 주먹질을 했다.
그런던 어느 날, 그가 아내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뿐 아니라 패물까지 모두 훔쳐
도망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 자식, 아예 안 돌아왔으면 좋겠네."
보름이 채 안 되어 그가 다시 돌아왔다.
들것에 실린 반송장 신세였다.
도박판에 끼어들었다가 돈을 모두 잃고
뭇매까지 맞았다는 것이었다.
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아내가 그의 병수발을 들었다.
죽을 떠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고역을
치르면서도 그녀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회복된 다음에 또
매질을 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는 남편이 불쌍하면서도 여전히 무서웠다.
그는 어느덧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기운이 좀 나니 무료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누라는 밥줄이니 손을 댈 수 없고….'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강아지였다.
강아지에게 손짓을 하니 쪼르르 문 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잠시 쓰다듬어주는 척하다가 호되게
강아지 머리를 때렸다.
"깨갱깨갱."
비명을 지르며 강아지가 도망쳤다.
그런데 잠시 후 그가 다시 손짓을 하자
슬금슬금 다가왔다.
"어? 이놈 봐라. 멍청이가 따로 없구나."
그는 또다시 강아지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강아지는 혼비백산해 자기 집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고개를 내밀고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가 부를 때마다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고, 아까처럼 데리고 노는 척하다가
쥐어박기를 반복했다.
반나절 동안 그는 이런 식으로 강아지를
희롱했다.
부엌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한마디 했다.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충성스럽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주인이 때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오잖아요. 제발 그만 때리세요.
불쌍하지도 않아요."
그가 지나가듯 물었다.
"이놈 이름이 뭐지?"
"키노예요."
"그게 무슨 뜻이야?"
"영화(映畵)라는 뜻의 러시아 말이에요."
이 말을 들은 그가 버럭 화를 냈다.
"그래, 너 좀 배웠다 이거지? 너 잘났다,
잘났다고!"
그는 있는 힘껏 강아지를 후려쳤다.
강아지가 비명을 토하며 도망쳤다.
이번에는 무척 아팠던지 집에 숨어들어
고개를 매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낑낑거리며 앓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아내가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돌아섰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키노냐! 이리와."
강아지가 누치를 살피더니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강아지를 때리지 않았다.
강아지의 눈을 살펴볼 뿐이었다.
강아지의 눈가에 눈물 흐른 자국이 보였다.
이후로 그가 누군가를 때렸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식구가 늘었다.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생겼다.
키노는 아이들의 친구였다.
늘 아이들과 함께했다.
첫 아이가 걸음마에 성공했을 때 키노는
아이 주변을 돌며 기쁜 듯이 짖었다.
그 아이가 자라 첫 등교를 하던 날에는
문 밖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
키노는 가족이었다.
어느 날, 그의 가족은 키노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다리를 절뚝거렸고, 아이들이 불러도
굼뜨게 움직였다.
키노를 진찰한 수의사는 "너무 늙어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 말했다.
며칠 후,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키노를
발견한 아내가 방으로 안고 들어와
푹신한 방석 위에 뉘였다.
키노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추운 듯 몸을 떨었다.
아내가 담요를 꺼내 덮어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온 가족이 키노를 빙 둘러싸고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키노만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키노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지만 해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키노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잠시 후, 키노가 힘없이 눈을 떴다.
"키노야!"
딸아이가 애처롭게 이름을 불렀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저승사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람이
은 저승사자가 데리러오면 따라가야 한단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름을
크게 불러주면 달라지지. 뒤를 돌아보고
다시 도돌아 올 수도 있어.
하지만 저승사자가 깜짝 놀랄 만큼 크게
불러주어야 한단다."
"아빠, 엄마. 우리 모두 키노를 불러요.
빨리요.
멍멍이 저승사자가 대려가지 못하게요.
키노야, 키노야!"
개들의 세상에도 저승사자가 따로 있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키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아내도 따라했다.
그도 "키노야" 하고 힘차게 불렀다.
키노가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
꼬리를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힘을 얻은 아이들이 더 큰 소리로
"키노야!" 하고 불렀다.
조금만 더 힘껏 부르면 키노가 훌훌 털고
일어날 것 같았다.
정말로 키노가 고개를 들었다.
키노는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족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다는 뜻이었을까?
키노의 눈과 마주쳤을 때, 그는 이 동물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키노는 한 번도 그를 배신한 적이 없는
진실한 친구였다.
키노의 마지막 눈망울에서 그는 원망의
기색을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
키노는 아내 고개를 앞발 사이에 파묻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잠이 든 것처럼 조용히 숨이 멎었다.
아내가 말했다.
"키노는 더 좋은 세상으로 떠났단다.
이제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이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그에게도 뜨거운 눈물이 남아 있었다.
생명을 구성하는 것은 시간입니다.
삶의 하루하루가 모두 그 안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명을 감상하세요.
마음을 침착하게 하고, 삶 속의 유쾌한
순간들을 웃으면서 바라보세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작음 감동들을
깊이 느껴보세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물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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