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2010년! 모든 불가능의 반대말은 ‘2010년’ 입니다. 호시탐탐(虎視耽耽) 기회를 놓치지 말고 포착해서 ‘소망비전 777’, ‘1000 영혼구원목표’, ‘각자의 꿈과 희망’을 이루는 ‘호랑이 해’가 되십시오. 희희호호(嬉嬉虎虎)! 영생토록 샘솟는 신령한 것들을 퍼주는 그 만큼의 ‘우물’의 행복이 넘치는 ‘경인년’이 되십시오.
‘기’라는 중국의 전설속의 동물이 있습니다. 온 몸이 푸르고 소같이 생겼으나, 해와 달처럼 광채가 나며, 물을 가르고, 하늘을 날며, 우레와 같이 소리를 발하면 그 소리가 500리를 간다는 대단한 존재로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발’이 하나뿐인 ‘외발’이였던 ‘기’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있었는데 바로 발이 백여 개나 있는 ‘지네’였습니다. 아마 신발을 신는 지네였다면 신발을 신고 벗다가 늙어 죽었겠죠. 아하! 그런 지네는 그래서 ‘뱀’을 그렇게 부러워했답니다.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도 스르륵, 스르륵, 몸으로 미끄러져서 어디든 가고 심지어 물위도 스르륵 지나가니까요. 이 뱀은 ‘바람’을 그렇게 부러워했답니다. 바람은 몸을 안 움직이고도 ‘휘익’하고 금세 가고자 하는 곳을 가기 때문입니다. 이 바람은 ‘눈’을 정말로 부러워했습니다. 눈은 보는 그 순간 그곳에 가 있으니까요. 이쪽을 보는 순간 이곳에 가있고, 저쪽을 보는 순간 저쪽에 가있지 않습니까! 이런 눈도 부러워하는 대상이 있는 데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은 눈을 감고 있어도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갑니다. 눈을 감고도 마음으로 과천시청에 가고 싶으면 과천시청에 가 있고, 마음으로 미국에 가있으면 미국에 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러움은 한이 없습니다. ‘부러움의 대상’이 있는 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러움의 대상이 생기면 점점 더 그와 같아지고 싶어져 ‘발전적’일 수는 있겠으나 스스로 ‘행복’해 질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신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신앙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입니까? 부러움의 대상이 되도록 ‘발전(發展)’하기 위해서 입니까?, ‘성공(成功)’하기 위해서입니까? 신앙의 목적이 성공하는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 와서 신앙을 하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러움의 대상으로 발전을 이루거나 성공을 하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 목적일 수 없습니다.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幸福)’입니다. 앞에서 마음에 관해 언급 했는데, 마음이 흐뭇하고 보람차고 평안(平安)해야 행복해 질 수 있는 법입니다. 몸이 다니는 길이 있듯이 마음이 다니는 길도 있습니다. ‘먼 길’을 걸으면 ‘몸’이 지치고 힘들고 불편하여 주저앉습니다. 몸이 멀리 가면 지치고 힘들지만, 마음으로 가는 길은 아무리 멀리 가도 지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다니는 길이 막혀 있으면, 그때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저 사람의 마음이 내게 대하여 닫혀있거나, 나의 마음이 저 사람에 대하여 닫혀있으면 마음의 길이 막혀서 그 때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지치고 힘들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집니다. 닫힌 마음을 열어 소통(疏通)되어야 평안(平安)해 짐으로써 참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새해 2010년에는 행복해지십시오. 과천소망교회에 오시면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인 과천 소망교회는 그래서 ‘행복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린아이와 같이 행복한 ‘한 몸 공동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이며, 훌륭한 성공자입니까?’로 이 세상의 ‘출세론(出世論)적인 행복관’으로 우문(愚問)하는 제자들에게 샬롬(Shalom)의 세상인 ‘천국의 행복론’으로 현답(賢答)하셨습니다. 행복과 평화의 ‘샬롬의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고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어린아이(little children)’ 하나를 불러 저희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1-3)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change & become)아니하면 결단코 행복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어린아이는 규칙과 체계가 아직 확고히 자리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사고의 제한이 없고 생각이 자유롭습니다. 그런 어린아이는 속성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어제, 얼굴을 할퀴고 코피가 나도록 울고불고 싸운 상대하고도 오늘, 언제 그랬느냐며 금세 ‘희희호호’하고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 지난 일을 금세 잊어버립니다. 어른들처럼 지난 일을 그저 ‘꽁’하고 가슴에 담아두고, 두고두고 곱씹으며 불편하게 지내지 않습니다. 또 어린아이는 미래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내일 무엇을 먹고 입을 까?’, ‘내일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저런 일들이 어찌 되어 질까?’에 대해서 도통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린아이는 미래에 대한 염려가 전혀 없는 법입니다. 어린아이는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온통 ‘지금’에만 관심을 둡니다. 어린아이는 속성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오늘에 몰입할 뿐입니다. 어린아이는 바로 ‘지금 여기에’ 전심을 다하며 하루에 충실한 현재적 존재인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유리창을 깨도 염려하거나 고민하지 않습니다. 배상책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배가 아프면 엄마에게 달려가 칭얼대며 배를 내맡깁니다. 아픈 것을 여기 저기, 이것저것 설명하지 않아도 엄마가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어버립니다. 어린아이는 엄마 아빠가 필요한 것,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온전히 신뢰하고 의존합니다. 어린아이는 설혹 엄마가 해로운 약을 주더라도 의심치 않고 받아먹습니다.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은 안 먹지만 엄마가 주는 것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다 받아먹고, 엄마 말대로 다 합니다. 전폭적으로 엄마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둔 영적부모의 자녀인 우리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변화되어 ‘동심(童心)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하며 ‘오늘’에 몰입(沒入)해야 합니다.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염려하지 말고 ‘하루’에 충실해야 합니다. 세속적 가치나 학문적 판단으로 자꾸 생각이 복잡다단(複雜多端)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어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Simple is the best!’ 그처럼 단순한 심령으로 행복해져야 천국에서 크고 훌륭해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이 되어 영적부모를 순전하고 단순하게 전폭적으로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변화되어 처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Paradise, 에덴동산’의 첫 사람 ‘아담’의 궁극적 모형인 마지막 사람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종’으로 변화되어야(change & become) 하는 것입니다. 오늘,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행복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의 자녀인 우리는 영적인 변화인 인식을 전환하여 동심(童心)으로 오늘에 몰입(沒入)하고 현재적 과정(過程)에 충실하여 행복한 한 몸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돌이켜야 합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변화하여 본질이 회복됨으로 동심(童心)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고 행복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지체인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공동체적 존재이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을 지향하는 ‘행복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겸손히 낮추어 행복을 만들어 가야하는 행복공동체는 이인삼각 경주와 오케스트라 연주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요, 하나님의 가족 된 ‘행복(幸福) 공동체’는 어린아이 한 사람이라도 실족케 하거나, 단 한 마리의 양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상생(相生) 공동체’입니다(마18:4-14). 영원히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야 할 ‘유기적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인삼각 경주처럼 강한 자는 뒤처지는 자를 생각하지 않고 혼자 너무 빨리 앞으로 치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담당하라는 말씀대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배려해서 함께 가야 합니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모든 단원은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소리를 내되 그 소리들이 조화롭게 하모니를 이루어야 합니다.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공동체의 전 단원은 각각 제역할 을 충실히 감당해 자신들이 내야할 최선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되 갑자기 화음을 깨는 돌발 음이나 지나치게 돌출된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각각의 최선의 소리들이 화합하여 최고의 선율을 만들어가다가 연주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솔리스트의 독주(獨奏)가 시작되면 다른 모든 연주자들은 숨을 죽인 채 기다리며, 그 독주자에게 마음을 모아주어야 합니다. ‘잘 해라! 그렇지 그렇게……. 정말 잘 하네……. 아하! 그래 조금 더 감정을 실어서……. 그래. 너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야. 너를 믿는다……. 힘내라…….이럴 때 관객들이 이상한 잡음을 내서 김빠지게 하면 안 되는 데…….잘한다. 더 잘해라!!!’ 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기를 모아주며 진심으로 열렬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 독주자의 독주가 망치면 연주회는 그와 함께 망치기 마련입니다. 우리 행복공동체에도 ‘리더’나 ‘하나님의 종’을 세웠으면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참고 기다리며 그를 믿어주고, 온 마음으로 격려하며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솔리스트의 독주가 끝나고 다시 오케스트라 공동체 전 단원이 협연을 하게 되면 또 다시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 각자의 최선의 소리를 내어 천상의 화음을 만들며 환상적인 피날레를 장식해야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흥왕해야 하는 유기적 ‘상생(相生) 공동체’요 ‘행복한 한 몸 공동체’입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행복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俗)되게 육(肉)으로 돌아가는 ‘세속화(世俗化)’, ‘육신화(肉身化)’에서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변화(變化)’되어 행복한 한 몸 공동체가 되면 반드시 행복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돌이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어린아이와 같은 종으로 ‘동심화(童心化)’되어 반드시 행복의 나라인 샬롬의 천국에 들어갑시다. 천국의 자녀 된 우리, 돌이켜 동심(童心)으로 행복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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