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은 꼭 필요한 것을 줍니다.’
진실한 어버이 사랑은 ‘우렁이 사랑’과 같다고도 합니다. 우렁이는 새끼에게 자신의 살을 먹여 키웁니다. 자신의 살이 다 뜯어 먹혀 물에 둥둥 떠내려가면서도 더 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어버이 주일예배를 통해 어버이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당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두 인생은 탄생되어 지는 방법이 사뭇 다릅니다. 둘은 근본적으로 모태(母胎)가 다릅니다. 오늘 성경본문의 말씀처럼 모태를 달리하는 두 종류의 출생에는 ‘육체’를 따라 낳는 ‘일반적인 방법(born in ordinary way)’이 있고 이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방법인 ‘약속과 성령으로’ 낳는 ‘특별한 방법(born by the spirit, promise)’이 있습니다. 후자처럼 ‘이삭’과 같이 신비한 방법으로 태어난 사람을 태생적 신비를 지닌 ‘약속의 자녀’라 합니다. 약속의 성령을 모태로 신비롭게 탄생한 우리 소망인은 육체를 따라난 사람들과는 차별된, 성령을 따라 사랑을 행하는 ‘특별한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계집종의 자녀’는 내어 쫒기나 태생적 신비를 지닌 ‘자유 하는 여자의 자녀’인 우리 약속의 자녀는 아버지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갈4:21-5:6).
유복한 집안에 유독히 애완견을 좋아하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인 그는 학교만 갖다오면 애완견과 함께 놀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애완견에게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밥을 안 먹고 자기 우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예전과 달리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꼬리를 흔들며 반겨 맞지도 않습니다. ‘이상 하네~ 어디가 아픈 게 분명한데..’ 아이와 그의 부모는 안되 겠다 싶어 이상해진 애완견을 급히 동물병원에 데려가 진찰해보니 ‘심폐기능에 문제가 생긴 불치병에 걸렸으니 포기 하시죠.’ 하는 수의사의 사형언도를 듣습니다. ‘안돼, 살려내’하며 울부짖고 떼쓰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어떤 댓가를 치르고라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살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자 한참을 망설이다 수의사가 단 하나뿐인 유일한 방법을 알려줍니다. ‘당신의 아들의 심장을 꺼내 저 애완견에 이식해야만 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애완견을 살리기 위해 당신 아들의 심장을 꺼내 이식 수술을 하시겠습니까? 어느 부모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겠습니까? 자신의 외아들의 목숨을 빼앗아 개의 목숨을 구할 어머니나 아버지가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의 심장을 꺼내주는... 아들의 생명을 송두리째 내주는 그런 일을... 나는 결코 그리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그리 하셨습니다. ‘우리 모든 죄인을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주셨습니다.’(롬8:32) 하나님 아버지는 지렁이 같은 죄인 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 하신 외아들의 심장을 꺼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셨습니다. 독생자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신 것입니다. ‘생명을 주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법’입니다. 이것이 생명살림의 원리입니다. 마음을 주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듯이 목숨을 주어야 목숨을 얻을 수 있다 하겠습니다.
당신도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원한다면 당신의 마음과 힘과 생명을 다 바쳐야 할 것입니다. 목숨을 걸어야 목숨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부모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처럼 아들을 내줄 만큼 ‘목숨을 건 사랑’을 통해서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며 그로인해 그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인생이든 개인적인 종말이나 우주적 종말이나 인생의 끝인 죽음의 관문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부활에 이를 수 없는 법, 죽어야 사는 ‘역설적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역설적 진리 안에서 어떤 사람이든 ‘그 무엇인가를 위하여’, ‘그 누군가를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 김요셉은 나 김요셉을 위해 죽을 것이다?????’ 어떻게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죽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에 혹, 애인, 친구, 나라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애인과 친구와 나라를 위해 죽는 인간애나 조국애를 발휘하는 애국애족의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 삶을 갈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 하나님과 주의 생명살림의 일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불타는 사랑을 지닌 인생이야말로 참으로 가치 있고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일을 위해 죽을 만큼 사랑하는, 목숨 건 사랑의 불꽃으로 ‘사랑의 마중불’로 살아가는 자녀가 태생적 신비를 지닌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 하겠습니다. ‘너희가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주를 위하여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이요’, ‘주를 위해 순교의 피를 흘린 너희 동무 종들, 순교의 믿음가진 자들의 수가 차기까지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할 수 없노라!(마11:38-39; 계6:9-1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죄인 된 우리를 살리려고 독생하신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독생자의 심장을 내어주셔서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치유하여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독생하신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이 그 무엇인들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또한 이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선물인 하나님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는 아들과 함께 아들을 통하여 이미 모든 것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것은 다 내 것이라!’ ‘임마누엘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있는 우리가 더 무엇을 바라리요? 또 다시 무엇을 자꾸 ‘다고 다고’하면서 하나님을 보채며 또 그에 대해 시험에 빠지고 불평하며 시기 질투하고 분쟁하며 이단에 빠져 우상숭배하면서 탐욕가운데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탕하며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본래 자신과 곁에 있는 마음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마음이 떠났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A 로부터 B를 향해 이동해 가는 것처럼 마음을 두는 그곳으로 마음은 순식간에 이동해 갑니다.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그 곳에 당신도 함께 마음을 두기를 원합니다. 육체를 따라 탐욕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면 방탕하고 방황하겠지만 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을 통한 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그 사람이 참된 행복자 일 것입니다. 요즈음, 제 마음은 온통 행복 플러스잔치에 가 있습니다.
이미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셔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 왜 마음에 참된 기쁨과 평안과 용기와 무지개빛 꿈과 철장 같은 의지와 불타는 사랑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까? 모든 문제는 마음의 문제요, 온 마음으로 사랑하느냐 그러하지 아니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사랑이, 그 첫사랑이 식어져 감으로 모든 것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생동감이 없고 매사에 의욕과 꿈과 목표가 흐려지고 무사안일하게 하루하루 뜨거운 열정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안타깝게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 박제된 표본처럼 왜 생명력 있는 신앙의 야성이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제 자꾸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이미 주신 것을 ‘나누는’ 새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에 대한 해답일 것입니다. 은혜의 우물의 신비로운 축복을 기억하십시오. 이미 주신 것을 사용합시다. 나눌수록 커진다고 하는 이 좋은 것, 생명 된 것들을 자꾸 끊임없이 나누고 또 나눕시다. 태생적 신비를 지닌 약속의 자녀는 이미 우리에게 내어주신 독생자와 함께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이니, 나눔의 새 삶을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참사랑, 심장을 내어주는 그런 사랑, 즉 그 생명을 내어주는 목숨을 건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그 사랑, 그 사랑을 하다가 죽어도 좋을 그런 불타는 사랑을 나누는 ‘사랑의 마중불’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그 하나님 아들의 참사랑 안에서 우리는 사랑의 마중불로서 온 누리에 만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영원토록 사랑의 불꽃을 점화시키는 그런 생명살림의 일을 하기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여 참된 생명을 얻게 하는 자는 궁창의 별처럼 빛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가치 있는 일, 영혼을 살리는 영원히 보람 있는 그런 일, 활짝 열린 과천소망교회가 해야 하는 위대한 가치 있는 본질적 사역을 하기위해 저는 금번 행복플러스 잔치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어버이의 사랑에 감복하여, 그 어버이의 어버이인 하늘 아버지의 목숨을 건 사랑에 감전되어 이제 저도 저의 마음을 다하여 생명을 나누는 목숨을 건 사랑을 나누는 일을 행동으로 실천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라!’ 우리를 살리려고 아낌없이 내어주신 아들을 통한 참사랑의 불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 참사랑의 마음이 오늘 우리 마음에 와있어서 우리들 모두, 특히 나 또한 예레미야와 같이 그 진실 된 사랑에 관절과 골수가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어 목숨을 건 사랑을 나누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금번 생명의 축제인 행복플러스 하늘의 잔치를 통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에 과천소망교회에서 펼쳐지는 천국초청잔치를 통하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 영생받기로 작정된 약속의 성령으로 낳는 사람들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생명은 진실한 사랑을 줄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을 나눕시다. 우리 후회 없이 사랑의 불꽃으로 타올라 봅시다. 약속의 성령으로 태생적 신비를 지닌 약속의 자녀여! 우리 사랑의 마중불이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