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였느니라!’(롬6:5)
‘나의 나 된 것’, 오늘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신 것’, 이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원수는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되, 은혜는 마음 판에 새겨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망극하신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짐승같은 인생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we)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베푸셨습니다. 너무나 많은 죄악, 허물,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크신 긍휼을 베풀어 용서해주시고 오늘도 이렇게 따뜻한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치열한 삶의 전쟁터인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늘의 이상향을 향하며 나아가는 산 소망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 삼아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참 사랑 안에서 감사의 삶으로 산제사를 드리며 일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옵소서!
천국 가는 길은 돌아오는 길이 없다 합니다. 이 땅 가운데 ‘이상(理想)과 현실(現實)의 경계선상(境界線上)’을 균형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걸어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하나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은 가야할 길을 가야 하리니, 제 삼일에는 완전해지리라!’ 현실이 아무리 처절하고 치열한 전쟁터이어도 주와 함께하는 자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믿고 바라며 더 완전하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가롯 유다’처럼 3일을 견뎌내지 못한 채, 스스로 삶을 포기함으로 불행하게 인생을 마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너무 너무 지치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인내하고 꿈꾸고 소망하며 어찌하든지 십자가의 고난을 극복하여 살아남고,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야 합니다. 가롯 유다도 단 삼일만 참고 견뎌내 살아남았더라면 혹시, 부활의 주님이 베드로, 도마, 오늘 본문의 죄 많은 여인, 수많은 제자들과 500여 성도에게 나타나심으로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부활의 증인으로 참 인생을 살았던 그들처럼 그에게도 나타나서 극적으로 행복한 새인생을 살았을지도 몰랐을 텐데...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형용할 수 없는 끝없는 고통과 갈등, 괴로움의 번민 속에서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그 가롯 유다도 뼈를 깍는 뉘우침과 회개로 회심하여 돌아오기만 하면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는 사랑의 주님께로 용기를 내어 다시 돌아가는 삼일동안의 현실의 삶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직면한 그 삼일을 견디고 살아내지 못하여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함으로 그만 영원한 벌을 받게 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약속의 성령받은 신앙인의 삶의 길은 ‘이상(理想)과 현실(現實)의 경계선상(境界線上)’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동전의 양면중 한쪽으로 치우치면 쓰러져 버리고 마는 것처럼 꿈속에서만 사는 ‘몽상가’가 되어서는 안되고, 현실에만 집착해서 사는 ‘현실주의자’가 되어서도 안되는, 그 양면이 만나는 중간의 접점으로 난 길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걸어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꿈과 이상을 갖되 결코 현실을 외면해서도 도피해서도 아니되며, 현실을 직시하고, 치열한 삶의 현실에 두발을 견고히 딛고 현실을 극복하면서 꿈과 이상의 목표를 향해 ‘출(出) 세상, 향(向) 천국 길’을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경계선상의 그 좁고 협착하나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천로역정의 천성길을 끝까지 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신 ‘출(出) 애굽의 역사’는 썩지 않는 참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고자 죄악으로부터의 ‘영적 출(出) 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인류구원의 섭리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출애굽한 그들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러 유하게 하시면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별된 사람들로서의 거룩한 삶의 지침서이자 규범인 계명을 주십니다. 애굽의 짐승같은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알려주신 것이 시내산의 십계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등 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 이 열 가지 계명, 지켜야 하는 거룩한 삶의 방법은 마음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렇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이 세상에서 죄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거룩히 구별되는 삶의 ‘사랑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성경은 사람이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주는 생명책입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과연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모든 것에는 ‘양면(兩面)’이 있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만물에는 ‘두가지 면’이 상존합니다. 실례로, 원자력은 극히 적은 소량으로도 석탄과 석유와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한 에너지를 발생하면서도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환경 친화적 이상적인 에너지원입니다. 반면에 이렇게 좋고 효율적인 원자력은 일본 쓰나미로 인하여 발생된 해악처럼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원자력으로 만든 원자폭탄의 경우 단번에 인류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재앙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면으로는 너무나 이상적인 연료이나 또 다른 한면으로 너무나 무서운 파괴적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양면(兩面)’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양면적 가치를 지닌 원자력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언제나 이런 ‘두가지 면’을 함께 보고 한면만을 편협하게 보지 말 것이며,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여 냉혹하고 치열한 현실의 삶속에서 꿈과 이상을 실제로 이루어낼 수 있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내야 할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 가운데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치중립적인, 양면적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잘 관리하고 잘 사용하느냐’ 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의 책무를 다해야하는 우리가 명심해야 할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시간’을 잘 관리하고 잘 사용해야 합니다. ‘돈’도 ‘혀’도 잘 관리하고 잘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땅’도 잘 관리하고 잘 사용해야 합니다. 가치중립적인 이러한 주어진 것들을 잘 관리하고 잘 사용해서 청지기로서의 인생을 잘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참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 땅에서 거룩히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사람들의 거룩한 삶의 방법을 나타낸 율법의 요약인 십계명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십계명중 하나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참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명의 복된 가르침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삶의 규범입니다. 일주일에 한 날, 일요일, 즉 ‘주일’은 거룩히 구별된 날로 치열한 현실의 삶속에서, 주안에서의 교제를 통해 참 안식의 쉼과 평안을 누려야 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이런 안식일의 계명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안식일의 주인인 사람을 위하여 땅도 매 7년마다 안식을 취하여 리프레시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회복되어 비옥해진 땅으로부터의 소출이 줄어들지 않고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어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을 향한, 사람을 위한 참으로 놀랍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배려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7년씩 7번째가 되는 해, 즉 50년이 되는 해를 ‘은혜의 해’요 ‘기쁨의 해’인 ‘희년(稀年)’이라 합니다. 이 희년제도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회복시켜 주는 희망찬 기쁨의 사건입니다. 이 희년에는 노예처럼 종살이 하는 모든 종들을 자유케 하고, 그동안 지은 모든 빚을 없는 것으로 탕감시켜 주고 땅을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레25). 모두를 절대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샬롬의 축복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런 율법의 계명, 삶의 규범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본래적 의도와 정신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희년의 정신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주권사상과 정신이 깃들여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간이나 돈 뿐만 아니라 특히 ‘땅’도 하나님의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땅은 무엇보다 거룩히 대하여야 하며 일시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하고 있는 그 땅에 대하여 영원한 주인이신 분이 십자가가 세워진 땅을 통하여 무엇을 원하실 지를 상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천의 땅이 개발되는 이 시점에, 그 땅을 마치 우리의 소유처럼 생각해 자의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되며 우린 땅을 맡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땅을 잘 관리하고 사용하여 하나님의 기쁘시고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가르쳐주는 대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해야 할지’....각자에게 깨닫게 하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 말씀에 죄 많은 여인의 많은 빚이 탕감되는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외갓 남자와 불건전한 관계를 맺으며 은밀한 입맞춤도 많이 했었던, 도둑질과 거짓증거 뿐 아니라 말로 다 할 수 없이 저질렀던 수많은 죄악을 용서받은 여인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이 그녀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많은 죄를 조건 없이 용서하셨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짐승처럼 살았었던 그녀는 주님의 사랑으로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만 의롭다고 자처했던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식탁에 기대어 계신 주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어 향유를 담은 병을 가지고서 주님의 발치로 가만히 다가섰습니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감사의 눈물이 두뺨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악만큼 용서받은 고마움과 감사함이, 견딜수 없는 사랑의 감동으로 바뀌어져 하염없는 눈물이 되어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너무나 불쌍했던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행복했고 감사했던 그 여인은 황급히 무릎을 꿇어 머리털로 눈물 젖은 발을 씻기고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어 주님의 발에 붓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입맞춤을 합니다. 젊은 예수님께 드리는 그 거룩한 입맞춤에 대해 주변에서 뭐라 생각하던 상관없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젖은 입으로, 수치심도 창피함도 모른 채 감사의 입맞춤을 합니다.
예기치 않은 난감한 상황에서 주님은 오십데나리온과 오백데나리온 탕감 받은 빚진 자들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따뜻한 미소를 지으신 채, 많이 탕감 받은 저 여인이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저리 하는 것이라 칭찬하고 대견하게 여기십니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해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8:39-50) 옳습니다. 사랑의 진실성이 교리의 순수성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는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수많은 죄를 용서받은 우리 또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감사하며 사랑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참 강퍅하고 메마른 우리, 매너리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우리네 현재의 모습..... 그 진실된 사랑을 받고도 감사의 눈물, 사랑의 입맞춤을 하지 못하는 내가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그 죄 많은 여인처럼 감사를 되찾게 해 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그 용서받은 죄많은 여인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로 난 그래서 거룩히 구별 받아 참으로 사람답게 ‘사랑의 방법’으로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법인 ‘사랑의 방법’을 따라 살아 내며 ‘사랑의 왕도’를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 하나님 사랑합니다. ‘거룩 하라!’는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답게 현실의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마음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렇게 이웃을 특히 과부와 고아와 노약자와 힘들고 어렵고 지친 이웃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주의 공동체를 위해, 타자를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참 사랑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되겠습니다. 꿋꿋히 하늘 천성을 향하여 이 땅 가운데 사랑의 왕도로 나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