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도 이길 것이니라!’(요16:33) 부활 승리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고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대로 ‘이미 이기기로 결판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도, 소망인은 승리를 확인하는 강하고 담대한 새날을 살아나갈 것입니다. 우리를 낙심, 좌절, 의기소침, 의심하게 만드는 주범은 악의 영이요, 사탄이요, 마귀입니다. 에덴의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를 꾀어 타락하게 만든 그 어둠의 악한 영적 실체의 간계를 간파하고, 그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의 마지막 시기에 불타는 사명감으로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꼭 해야만 하는 말을 전하며, 이 진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싸움이 아니라, 이 세상의 통치자들,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지는 자는 상대 어둠의 주관자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되고 마는 끔찍한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전쟁인 ‘성전(聖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기필코 이기고 또 이겨야 할 것입니다(엡6:10-20).
‘거룩한 전쟁’에서 필승의 전략 또한 ‘거룩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여호수아의 필승을 도왔던 하나님의 군대장관처럼, 기드온의 300용사의 승리의 전략처럼, 말씀과 기도를 수반하는 신묘한 거룩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성전(聖戰)에는 거룩한 방법만 통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신(ambassador:大使)으로서 ‘쓰레기 같은 방법’을 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음의 의미 깊은 이야기를 통해 거룩한 승리의 비법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동서냉전시대에 ‘베를린 장벽’이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동독에서 습관적으로 쓰레기를 장벽너머 서독으로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먹을 것을 담았던 빈 깡통, 빈 박스 등의 쓰레기가 끊임없이 버려지는 것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서독 측 관계자들은 그에 대한 대처방안에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독측은 그 쓰레기의 빈 박스에 최상품의 내용물들로 가득 채워 그 물품들을 대형 트럭에 실어 동독 측 쓰레기 매립지에 살며시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물품들 중앙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가슴속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법입니다.’
동독 사람들은 이 짧은 글귀에 쓰레기를 버렸던 자신들의 행동이 부끄러워 졌는지, 그 후로는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 같은 짓’을 멈추었습니다. 저속한 쓰레기 같은 방법을 버린 이 작은 일로 동독 사람들과 서독 사람들은 마음의 벽이 조금씩 무너지며 서로 소통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독일의 통일대업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지금, 당신의 가슴 속에는 무엇으로 가득 채우셨습니까? 그럴 리는 없지만 혹 나누어 줘서는 안 되는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그렇다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내 가슴에 던진 사람들에게 서독 사람들이 한 것처럼 살며시 더 좋은 것으로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신기하게도 화풀이를 한 것보다는 속이 편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쓰레기를 내 가슴에 던지는 짓은 되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막히고 멋진, 고상하고 거룩한 방법입니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야심한 밤에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시장 통 좁은 길 중앙에 큰 돌을 놓아두고 갔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사람들이 시장 통에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우마차를 포함해서 가득 짐을 진 짐꾼들 하며 장보러 나온 아낙네들 할 것 없이 지나가는 사람마다 중앙에 큰 돌을 보며 욕지거리를 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거, 어느 염병할 놈이 이런 짓을 하다니... 에이 천하에 죽일 놈 등등...” 갖은 욕을 다하며 침을 퉤퉤 뱉지를 안나... 상상이 가실 겁니다. 그 때였습니다. 손수레를 끌고 가던 한 농민이 여러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을 생각 했는지 어렵사리 그 큰 돌을 옮겨 길 가로 치웠는데, 그 돌 밑에 이게 웬일입니까? 금 100냥과 왕의 친서가 있었습니다. “이 금은 돌을 치우는 자의 것이다.” 허허!, 이런 횡재가, 도랑 치우고 가재 잡는 다더니 큰 돌 치워 좋은 일 하고 수레에 금 실고 가네... 멀어져 가는 농민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욕쟁이들의 표정,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복 좀 받지 않으시렵니까? 확실히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배려입니다. 유교의 ‘인’이나 불교의 ‘대자대비’나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나 그것들이 표현될 때는 소박하게 ‘배려’라는 더 쉽게 말하자면, ‘보살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슴속에 있는 ‘사랑’을 배려라는 아름다움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하는 사신들(ambassadors)’이라면 더욱이 ‘배려하고 사랑하는 일’만이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인 것입니다.
어려운 질병에 걸린 대부분의 환자들은 분노 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닥쳐야 하는가에 대하여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다 분노는 병마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뀝니다. 대부분 회복에 실패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배려라는 명약을 쓰게 되면 달라집니다. 밉기만 한 병마조차 사랑 안에서 녹아 없어집니다. 신앙생활에도, 인간관계에도 어디든 쓸 수 있는 명약입니다. 하늘로부터 보냄 받은 대사들, 화해의 사신들은 배려라는 ‘사랑의 명약’을 휴대합니다.
그렇습니다. 불치의 병마(病魔)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신비한 ‘사랑’이라는 명약을 잘 활용하십시오. 악한 영들과 싸우는 전쟁터에서 그리스도의 사신들로서 ‘사랑’이라는 거룩한 승리의 비법을 잊지 마십시오.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 이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벌이고 있는 거룩한 전쟁에 보냄 받은 우리들은 불타는 사명으로 무장하여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복음(유앙겔리온: 전쟁터에서 승리의 소식을 전함)의 사신’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신이 된 우리는 이 세상에 보냄 받은 또 하나의 보내신 자로서 꼭 해야만 할 일을 해낼 것입니다. 거룩한 방법으로 거룩한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사즉필생(死卽必生)! 23전 23승의 이순신 장군처럼 우리도 날마다 승리할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 전쟁의 신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매일 승리의 전략으로, 매일 승리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너,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사신이여!’ ‘사명으로 무장하라’ 말씀하십니다. ‘진리로 허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의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소망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로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악한 존재들의 불화살을 막아내며 성령의 검, 말씀의 검으로 적군을 제압해 물리치라’ 명하십니다. 저들은 쓰레기 같은 방법으로 이 세상의 명예와 재리의 유혹과 교묘한 간계로 낙담케 하여 죽이고자 하는 허무하고 헛된 저속한 방법으로 공격해오지만,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거룩한 사명자인 우리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거룩한 방법인 사랑의 방법으로 필승(必勝)합니다.
33세로 요절한 알렉산더 대왕! 강력한 군사력으로 아시아, 유럽대륙을 정복했던 그 불세출의 왕과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한 왕이 있습니다. 역시 33세로 공생애의 사역을 마치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메시야 예수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신 위대한 왕 중의 왕이십니다. 깨진 항아리에 살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내가 정복한 23개 나라를 달라 해도 줄 터이니 무엇이든 구하라!’하는 알렉산더 대왕의 말에 ‘폐하, 저는 내려 쪼이는 태양 빛으로 만족하니 지금 제 앞에 서 계셔서 그 태양 빛을 가로막고 있는 폐하의 몸을 치워주시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옵니다.’라고 했던 통 큰 ‘디오게네스’보다도 더 크신 분,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메시야! 구원자! 생명의 길 되신 진리! 그 뒤를 따라서, 세상을 이기신 주님처럼 우리도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와 나라를 다 줄 테니 한번만 네게 경배하라는 사탄을 향해 주님은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주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라! 네 나라는 이 땅에 있지만 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내 나라는 하늘에 있느니라!’ 우리는 그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 갈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는 그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상대를 극복하며 날마다 승리합니다. 사랑의 사명으로 무장하여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세워갑니다. 사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며, 사명자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십자가의 군사는 ‘거룩한 사명’을 ‘거룩한 사랑의 방법’으로 기필코 완수해 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반드시 이기고 이 세상의 어둠의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과의 싸움에서도 기필코 날마다 승리할 것입니다.
이기고 또 이기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곳, 예배에 참여한 거룩한 성도들은 이긴 자들입니다. 앞으로도 이 예배에 참석할 자들은 또 이기는 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병들인 것입니다. 이 땅의 용병이 아닌 하늘로부터 사명을 받아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군대는 하지 않으면 안되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을 감당해 냅니다.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랑의 전신갑주를 입히신 십자가 군병들이여! 거룩한 전쟁터에서 거룩한 사명으로 무장하여 승리의 삶을 살아 나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