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가 되고, 네가 그리스도가 되며,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가 되어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의 진실된 삶을 살자!’ 이것이 성경의 본질입니다.
IT 새 문명을 만든 천재, 스티브 잡스가 떠났습니다. 한입 베어진 애플의 상징, ‘Think different!’를 강조하던 그였습니다. ‘죽음의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찾아, 뜨겁게 갈망하고 도전하며 우직하게 살아가라!’했던 그의 삶의 증언이 여운이 되어 우리의 가슴에 남습니다. 그러나 인간 정신세계의 끝에서 시작되는 ‘신의 세계’에서 경험되는 새 세상, 그리스도의 새 나라를 체험하지 못한 그 천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또한 가슴에 짙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 세상에는 천재(天才)같은 바보가 있는 반면, 바보 같은 천재(天才)도 있습니다. 진짜 같은 가짜가 있는 반면, 가짜 같은 진짜도 있다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이를 입증합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멸망 받을 자에게는 십자가는 바보 같은 것이고 꺼리 끼는 것이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구원 얻을 우리에게는 십자가야 말로 하늘의 지혜요, 참된 생명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자들은 바보 같아 보이나 실은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가짜 같아 보이지만 진짜로 진실된 삶의 열매를 맺습니다. 기한이 이르고 때가 차면, 밤나무에서는 밤을 포도나무에서는 포도 열매를 맺는 법이며, 엉겅퀴에서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쁜 나무에서는 못된 열매를, 좋은 나무에서는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바보 같아 보이지만 하늘(天)이 낸 사람(才) 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맛나고 빛나는 진실된 삶의 열매를 맺힐 것입니다. 바보 같지만 천재의 진실 된 삶을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바보 같은 천재,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십자가 ‘우편에 행악자’, ‘좌편에 행악자’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좌편의 행악자는 눈을 치켜뜨며 예수를 헐뜯고 욕합니다. ‘네가 구세주면 너부터 구해 봐라. 그리고 우리도 구원해 보라구.’ 이렇게 비방하는 그를 향하여 우편의 행악자가 소리쳐 꾸짖습니다. ‘하나님께 정죄를 받아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지금에도 그런 천벌을 받을 말을 지껄이느냐? 너는 어찌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너와 나같은 험악한 죄인이야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마땅하지만 아무 죄도 없는 이 분이야 우리와는 다른 분이 아니냐, 하나님 앞에서 이 분이 행한 일중에 옳지 않은 일이 없지 않느냐’ 이렇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편을 들며 예수 메시야를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우편의 행악자는 죽음 직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진실 된 간청을 주님께 합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세요!’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피 흘리시며, 벌거벗겨져 이단의 괴수, 귀신의 왕으로 비방 받고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다 당하신 채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계신, 참으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신 예수님, 자신의 전부를 주어 사랑하고 가르쳤던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리고 사라져버린 그 암울한 십자가에 달린 순간, 우편의 강도로부터 ‘당신의 나라, 그리스도의 새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잊지 마시고 꼭 기억해주세요’ 라는 진실 된 고백을 들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흔들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렸던 때도 아니었고, 물위를 걸으며 빵 두개로 오천명을 먹인 후도 아니었으며, 부활의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도 아닌, 참혹하게 십자가에 달린 곧 죽게 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런 자신에게 간청하는 우편강도에게 감동된 예수님은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니라!’ 그 즉시 우편의 강도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사하여 졌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하늘나라에서의 새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 우편의 강도로 인해 예수님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특별한 당신, 당신이 메시야(Christ)라면,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예수여, 나를 기억해 주세요!’ 우편 강도의 그 진실된 고백에 감동이 된 예수님이 ‘오늘 너와 내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감성을 흔들어 감동시켰다면 그 누구인들 어느 사람인들 감동시키지 못하겠습니까?
나는 예수님 곁, 우편 강도가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감동 메이커’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는 명예와 부귀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권세를 쫒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명한 학자이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와 내가 낙원에 있을 것이라’ 말씀하여 주시는 주님과 같이 낙원에 가고 싶습니다. 비록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릴지언정, 차라리 십자가 우편의 강도가 되고 싶습니다.
십자가가 서있는 이 곳, 보혈의 피로 주홍 같은 붉은 죄를 깨끗하게 씻겨주신 주님의 몸된 이 성전에서 온 마음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합니다. 예수 메시야!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인류 구원의 프로젝트를 완수할 메시야로, 구세주로 진실 되게 신앙고백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메시야! 예수는 구세주!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우리를 기억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음성이 들려집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 비록 우편 강도일지라도 ‘내가 너와 같이 가겠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축복 하실 만큼 주님을 감동시키는 ‘감동 메이커’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 까 생각해 봅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태종이 12만 6천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와 인조와 신하들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가 2개여월 만에 항복을 하고 마는 조선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삼전도의 굴욕을 당합니다. 그 당시 청나라 군사들은 조선의 수도 한성에 난입해 갖은 만행을 저지릅니다. 닥치는 빼앗고 부수고 게다가 수많은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맙니다. 그 이후 청군이 물러간 후, 한성에는 날마다 곡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녀자의 정절을 생명같이 여겼던 유교 문화 속에서 겁탈을 당하여 정조를 잃은 아녀자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수의 부녀자들이 핏덩이 자식들과 가족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을 뿐 점점 더 한성의 우울한 분위기는 심각해졌습니다. 그 때 한 관료의 건의를 받아들여 왕은 모년 모월 세검정에서 몸을 씻는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씻어줄 것이라는 어명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로 결정된 일이라 하더라도 백주 대낮에 세검정에 가서 몸을 씻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몸을 씻으러 가는 자들은 만천하에 자신이 정절을 빼앗긴 부정하고 부덕한 자임을 공표하게 되는 셈이니....드디어 그 날, 아! 가슴 벅찬 감동적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한성의 모든 부녀자들이 정절을 잃은 이든 정절을 잃지 않은 이든, 할머니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머리에 흰보자기를 쓰고 세검정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닙니까. 손에 손을 잡고 한마음으로 침묵한 채,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며....세검정, 흐르는 맑은 물에 서로의 몸을 씻겨주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세검정보다 더 좋은 이곳 세죄소(洗罪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는 감동이 넘치는 은혜와 사랑의 처소! 우리 또한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은혜와 사랑의 손길로 닦아주며 용서하는 ‘감동의 도가니’를 이루어야 할 곳입니다.
도가니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들고 있던 팝콘 봉지를 부르르~ 떨며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끓어오르는 분노와 서글픔, 탄식....죄송함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인화학교 장애아 성폭행 사건을 다룬 실제 이야기, 십자가와 교회가 클로즈업 되며 쌍둥이 장로, 교장과 행정실장 등이 말 못하는 어린 아이들을 성폭행하는 낮 뜨거운 장면들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거 가짠데 , 진짜 크리스천이 아닌데..진짜 같은 가짜인데를 가슴속으로 울부짖으며 소리치고 또 소리쳤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를 돌아보며 진실 된 신앙고백을 한 자들은 진실 된 삶을 보여야만 한다는 뜨거운 다짐을 하고 또 하였습니다. 진실 된 참된 나무는 진실 된 참된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세상에 버려져 짓밟힌다는 말이 옳습니다. 세상에서 소금처럼 맛을 내지 못하는 신자는 버려져 짓밟혀져야 마땅합니다. 영화 속의 썩어 문드러진 그 사람들을 짓밟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신자는 쓸데없는 신자입니다. 맛을 내지 못하고, 빛을 발하지 못하는 크리스천, ‘분노의 도가니’를 만드는 크리스천은 진짜 같아 보여도 실은 가짜 크리스천입니다.
토요일에 샬롬나비 강좌, ‘청소년 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에서 ‘빡빡 예수’를 만났습니다. 기윤실 좋은교사 대표, 인평 자동차학교 교사 윤재윤선생님의 강연을 듣다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생을 포기한 많은 청소년을 진실 된 사랑과 헌신으로 바꾸어가는 세칭 ‘빡빡 예수’ 머리를 짧게 깎고 바보처럼 어리숙해 보이지만 실은 진짜 천재인 그의 진실된 삶으로 보여주는 강연을 들으며 로고스홀은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인평 학교 학생들의 말처럼, ‘난 예수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러나 저 선생님의 삶을 보니, 예수님이 계신 게 분명하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도 실은 다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간절히 소망합니다. ‘분노의 도가니’가 아닌 ‘감동의 도가니’를 만드는 진실 된 신앙인으로 또 하나의 예수가 되어 예수처럼 진실 된 삶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썩어지는 이 세상의 소금으로 빛나는 빛으로서 진실 된 삶을 보이는 참된 신앙인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감동 메이커’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소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로다.’ 감동을 만드는 진실 된 신앙 고백!, 감동을 만드는 진실 된 삶을 보이고 싶습니다. ‘감동 메이커’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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