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인생이란 여정을 가는 중에 ‘되는 것’도 있고, 때론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되는 것은 되는 대로 감사하며 가야하고, 안되는 것은 안되는 대로 수용하며 가야할 것입니다. 안되는 것 때문에 가야할 방향을 바꾸거나 진로를 수정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가는 우리는 가야할 분명한 목적이 있고, 바뀔 수 없는 목적지가 있습니다. 소망인은 그 목적지를 향해 주와 함께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마음이 하나 됨으로 모리아산까지 함께 갈 수 있었듯이 주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주와 함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와 함께 한마음으로 가는 동안 모든 것이 합하여 결국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 진(眞)선(善)미(美)의 길을 선택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겸손한 믿음’으로만 진선미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멸망에 이르는 교만과 반대되는 ‘겸손’이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차이’를 틀린 것으로 여겨 배척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저 나와 다를 뿐임을 인정하며,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주변과 소통하고 교감하고자 하는 ‘겸손한 믿음’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편집증적 믿음’과 구별됩니다. 겸허한 믿음으로만 모세처럼 ‘사람의 소리도 하나님의 음성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하루 종일 광야의 뙤약볕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재판을 하고 있던 모세에게 ‘충고(advice)’를 하였습니다. ‘자네 그러다가 큰일 날 수 도 있으니, 백성들 중에서 각 분량대로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을 세워, 그들로 할 수 있는 대로, 각양의 문제들을 재판하고 처리하게 하게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만 자네가 재판하여 해결하는 게 옳은 일인 것 같으이..’ 모세는 장인의 충고를 옳다고 인정하고는 그대로 그 어드바이스를 받아들여 실행하였습니다(출18:13-27).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고, 교통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등, 출애굽의 본질적인 중요한 사역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당신 같은 늙은이가 무얼 안다고 그러느냐고,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는 내게 감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장인의 충고를 거절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계시하시고 직접 지시하시는 내 확실한 진로와 사역을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며 그러한 장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아마 모세는 광야의 땡볕에서 재판만 하다가 정작 해야 하는 중대한 다른 일은 하지 못한 채, 지쳐 죽었을 것입니다.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면 기독교는 더 이상 유지 존속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때론 사람의 소리도 하나님의 음성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가슴을 열고 귀를 당나귀 귀처럼 크게 해서 사람의 소리를 통하여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열린 자세와 나와 다른 것도 인정할 수 있는 겸허한 믿음으로 사람의 소리를 통하여 들려지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여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그 뜻대로 부름받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합하여 선한 역사를 이루시고 계십니다.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들을 합하여 생명을 살리시고자 선한 음성을 들려주심으로써 올바르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소리도 하나님의 음성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상대의 진언을 존중함으로써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진선미를 이룹니다. 부르심을 입은 후,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일원이 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되어 독특한 신분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의 하나님, 하나의 그리스도...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입니다. 우리 부름을 입은 사람들은 그 하나 안에서 ‘한 몸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각양의 지체들로 조직화되어, 시스템화 된 ‘유기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외부로부터 음식이 식도를 통해 몸으로 들어와, 기도를 통해 폐로 흡입된 공기와 함께 위에서 음식이 분해되어, 몸에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만들어 냅니다. 이 필수 영양분들은 피를 통해 온몸 구석구석에 산소와 함께 공급되어 생명을 유지, 존속하며 번식케 됩니다. 간에서 독성분은 해독되고, 심장에서 품어져 나온 피는 신장에서 정화되며, 노폐물들은 방광, 대장, 소장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이처럼 호흡기관, 순환기관, 소화기관, 신경, 조절기관, 골격 근육조직 등 각 기관과 조직이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교통하며 생명을 유지 존속해가며, 각 세포를 증식함으로써 몸을 성장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신기한 인체활동 중, 성인은 하루 10만3천6백89번의 심장이 박동되며, 2만3천 40번의 숨을 쉽니다. 피는 무려 2억6천8백80만 Km를 순환하며, 말 한마디를 하기위해서 760여 근육들이 빠르게 혹은 천천히 움직여야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은 매일 끊임없이 0.01714인치가 자랍니다. 건강한 심장은 주변의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심장박동수를 조절해 가는 자동조절 장치도 있습니다. 소우주와도 같은 경이로운 사람의 몸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각 지체와 마디가 연결되어 머리인 헤드라인에서 지시된 것을 적절히 의식적이든 의식하지 못하든, 교감, 부교감신경이든, 자율적인 의지를 통해서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든, 조화롭게 상호 합력하여 신기하게 생명을 유지, 존속, 증식해갑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도 사람의 몸처럼, 신비한 유기적 공동체입니다. 거룩한 주님의 몸 된 교회도 영혼의 양식인 ‘생명의 만나’를 공급받아 생명을 살리고, 유지 존속하며 증식하는 위대한 사역을 합니다. 살아있는 건강한 몸은 자라날 수밖에 없듯이, 세상의 희망인 살아있는 건강한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도 날마다 성장되고 성숙되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처럼 온 우주에 충만토록, 그렇게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인도와 코치를 받아, 그리스도처럼 자라게 됩니다. 각 지체들은 상호 긴밀히 협력하고, 균형 있고 조화롭게 합력(合力)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워갑니다. 날마다 내적 외적 열매를 맺어가는 가운데, 양적으로도 성장하고 질적으로 성장을 거듭해 갑니다.
몸의 최소 구성단위인 세포(cell)라 할 수 있는, ‘1~7교구, 실버, 어린이 교회학교, 청소년, 청년, 청장년 등..’의 ‘소그룹’모임이 활성화되고, ‘대그룹’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순환, 호흡, 소화, 신경, 골격 등의 각 기관에서 심장 같은 기능을 하는 장로, 피와 같은 순환기능을 하는 권사, 해독하는 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안수집사 등의 직분자회와 목양, 교육, 예배, 찬양, 봉사, 문화, 레포츠, 복지, 홍보, 미화, 안내..등의 각사역위원회, 여선교사역 등의 조직과 개체들이 상호 긴밀히 합력하여 진선미를 이룰 것입니다. 이 각체들과 조직들은 상호 긴밀하게, 조화롭게 유기적으로 교류하며 ‘상생(相生)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각 지체들, 기능에 따른 직분들과 직임들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다 소중한 ‘온리 원(only1)’으로 성령의 은사들로 독특하게 각각의 기능을 다 해야 하는 것으로서 상대를 서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세우고 함께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코털, 맹장, 항문 등......,가장 작은 것이나 꼭 필요한, 우열 없이 모두 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겸손한 믿음으로 하모니를 이루어가며, 각기 자신의 기능대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몸은 건강하게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제 몫에 대인 십자가를 기쁨으로 감당해 낼 때, 자연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사람들로서, 세상의 생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 봉사와 감사의 열매 등, 열두 가지 실과를 달마다 풍성하게 맺게 될 것입니다(엡4:1-16).
김세화의 ‘눈물로 쓴 편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가 없어요, 눈물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고칠 수가 없어요, 눈물은 지우지 못하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부칠 수도 없어요, 눈물은 너무 빨리 말라 버리죠. 눈물로 쓴 편지는 버릴 수가 없어요, 눈물은 내 마음 같으니까요. ’
가슴에 칼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러 가는 도중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김세화의 이 노래를 듣고서 전과 9범인 유씨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눈물... 그리고 내 인생....., 이렇게 살아서 되겠는가... 아,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감동에 젖은 그가 지난날을 뉘우치며 새로운 삶을 살리라고 다짐하고 검정고시공부에 몰두해서 대학에 입학하고 전자회사를 차려 지금은 성공한 중견기업가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교회의 장로이기도 한 그가 지난날을 회상하며 간증합니다. ‘그 때 그 노래를 듣지 못했었더라면, 나는 벌써 어두컴컴한 감옥에서 이 세상을 한탄하고 저주하다 죽었을 겁니다. 그 때, 김세화씨는 알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 노래가 내 영혼을 구했습니다. 저는 그 노랫소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음성인줄을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브라우닝의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에서 베니스의 실크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가 1년 중 단 하루의 휴가 날,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네 사람의 삶을 동경하며 차례로 그들의 창가를 지나가며 온 마음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실은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그들, 불륜을 범하고 살인까지 한 ‘오티마’는 그 노래를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 자백하기로 결심하고, 속아서 창녀의 딸과 결혼한 ‘줄스’는 아내를 버리려다가 그 노래에 감동되어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난폭한 폭군을 암살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꿈을 버리려고 하던 ‘루이기’는 피파의 노래에 자신의 이상과 사명을 깨닫고, 속세의 악에 항복하여 비굴한 삯군 목자가 되려했던 ‘늙은 성직자’는 피파의 노래를 듣고 마음을 바꿔 다시 자신을 재무장합니다. 날이 저물고 자신이 네 사람의 영혼을 구한 것도 모른 채, 피파는 단 하루뿐인 휴가를 헛되이 보낸 것을 슬퍼하며 고달픈 내일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듭니다. 하루처럼 잠깐뿐인 인생살이 중 자신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할 때, 온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한마디에, 은연중 내비친 따뜻한 미소 한번, 그저 고맙고 감사해서 내미는 손길, 가슴 벅찬 사랑의 열정을 담은 일상속의 몸짓과 삶의 파편 속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의 대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
온 마음으로 기쁨에 겨워 자신의 일을 해나갈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을 구하며, 그의 영광된 뜻과 생명살림의 대역사를 이루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 각기 제 몫을 다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과천소망교회는 ‘소그룹’과 사회복지, 평생교육원을 위시한 ‘대그룹’ 사역의 두 날개로 힘차게 비상할 것입니다. 중세교회처럼, 대의(大義)를 쫒지 않고 개인의 탐욕이 동기가 된 베드로 성당의 건물확장과는 차별된,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의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성장과 성숙의 진정한 부흥의 새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사람들은 합력하여 진선미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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