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라! 그리하면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시37:4)
자신을 고문했던 이근안 경위를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 고뇌에 찬 고백을 했던 고(故)김근태 의원의 말처럼 ‘용서는 사람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에 속해있는 법입니다.’ 우리로 사람의 힘과 능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 용서할 수 없는 자도 용서할 수 있게 하고, 사랑할 수 없는 자도 사랑할 수 있게 하며, 무엇이든 꿈꾸고 이룰 수 있게 하는 신비한 능력이 활동하는 신(神)의 영역,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신기한 세계에 살게 하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과 감사를 드리며, 온 마음을 다해 기쁨으로 찬양합니다.
‘세한송백(歲寒松柏)’, ‘임사이구(臨事而懼)’... 많은 사자성어 중에, 올해 참된 그리스도인인 우리 소망인에 걸맞는 사자성어는 당연히 ‘임마누엘’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기뻐하며 춤추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곧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된 당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하늘의 은총과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참된 기쁨이 충만한 소망인의 ‘임마누엘’과 연관지울 수 있는 사자성어로 ‘기복염거(驥服鹽車)’를 들 수 있습니다. 올해 참된 지도자로 백락같은 지도자를 꿈꾸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기복염거(驥服鹽車)’에 담긴 깊은 의미를 반추해 보고자 합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백락’은 말을 볼 줄 아는 사람으로서, 천리마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시장통 오르막길에서 노예의 채찍에 맞아가며 소금수레(鹽車)를 끄는 말을 보고, 말감별사요 조련사인 ‘백락’이 한눈에 천하 명마로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입고 있던 비단옷(服)을 덮어 주자, 그 천리마(驥)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후에 유래된 고사성어입니다. ‘기복염거(驥服鹽車)’, 이 사자성어의 깊은 뜻은 다음과 같다 하겠습니다. 백락을 만나야 소금수레를 끌던 노예의 천하명마인 천리마가 비로소 천리마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백락이라는 사람이 있어야 천리마가 있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천리마는 늘 있지만, 백락은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명마라도 노예의 손에 이끌려 소금 짐을 싣고 가는 일을 하면 평범한 말로 어느 이름 없는 곳에서 생을 마칠 것이며, 천리마란 칭호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좋은 인재를 가려낼 줄 알고, 그 능력을 키울 줄 아는 백락 같은 사람은 모든 일에 필요한 ’리더형‘일 겁니다. 백락의 예리한 눈, 어떻게 말가죽을 뚫고 그 안에 재능과 가능성을 볼 수 있을까? 이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일 것이라 여겨집니다. 우리는 그러한 백락과도 비교할 수도, 비교해서도 안 되는 한분을 기억합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신분. 그 분은,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조차 없는 분. 백락이 ‘말’의 전문가라면 이분은 ‘하늘’의 전문가,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이 분이 참으로 중요한 것은 백락이 있어야 천리마가 있듯, 이분이 계셔야 마시장에 널려 있는 수많은 말들 중에, 백락이 명마를 찾아내듯, 흩어져 잃어버린 피조물들 중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찾아 낼 것이며, 그것만이 영원히 잊혀져가는, 희망이 없는 피조물의 미래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할 일은 많은데 일꾼이 없구나.” 어디서 들어 본 듯한 구인 광고입니다. 이로부터 마시장에 모인 말들처럼 여기 저기 수많은 사람들이 원근 각처에서 모여듭니다. 광고지의 내용이 특별합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와서 그 짐을 내려놓고 쉬라. 또한 너희를 얽매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 줄을 끊고 기뻐하며 자유하게 하리라”는 등 일반적인 구인광고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내용들, 이것은 여러모로 보아 광고 전단이 아닌 초대장이 분명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이유’를 볼 줄 아는 분,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잠재력’을 보고, 그 심지에 불을 붙여 꺼져가는 이 모든 것들에 ‘새로운 열정’으로 다시 살릴 수 있도록 불을 당겨주실 수 있는 분, 바로 ‘그분의 부르심’이 분명합니다. 백락을 만난 말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십시오. 당신의 앞날은 바뀔 겁니다. 말(言語)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며, 행동이 바뀌고, 꿈이 달라 질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들에 간섭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할 곳이 많다는 아버지의 집에서 만일 청소하는 일이 맡겨진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베토벤이 작곡하듯’, ‘셰익스피어가 시를 쓰듯’해야 합니다. 기뻐하며 최선을 다하는 당신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나님의 특별한 초대에 응한 당신, 백락보다 수천 배 위대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고귀한 사명자로 하늘의 사역을 함께 하는 동역자가 된 당신 소망인은 참된 기쁨으로 춤출 수밖에 없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신비한 신의 영역 속에서 모든 것이 거룩히 변화됩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속된 것이 거룩한 것으로, 비천한 것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사울이 바울로 변화됨으로써 본성자체가 송두리째 ‘바뀌는(transformation)’ 위대한 축복이 임합니다. 이 같은 은총과 축복으로 사울에서 바울된 이방인의 사도가 빌립보 감옥에서 영어의 몸의 상태이나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외칩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을 본받아 우리도 어떠한 환경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비밀을 알고 자족하는 법을 배웁니다. 가난을 이겨낼 줄도 알고, 부유함을 누릴 줄도 압니다. 배고플 때나, 배부를 때나, 넉넉할 때나 궁핍할 때나, 어떤 형편에 처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빌3:20-4:14) ‘아버지의 것을 다 가지고 오시는 주 안에서 기뻐하고 춤추라!’
백락과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한 주 예수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죽을 비천한 우리 낮은 몸을 자신의 영광의 몸의 형체처럼 ‘변화(transformation)’시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어떠한 절망과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부활의 꿈과 영생의 소망으로 인해 기뻐하고 다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도 바뀌고 말도 바뀌고, 행동도 바뀌며 꿈도 달라질 수 있는 당신 그리스도인이여! 항상 기뻐 하십시오. 운명이 바뀌고, 앞날이 바뀌며, 미래가 밝고 희망차게 바뀝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걸인이 왕이 되며, 창기가 귀부인이 되고, 사울이 변해 바울이 됩니다. 주안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를 통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다 바뀔 수 있습니다. 새로 난 자들은 무엇에든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고,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을 생각합니다. 주안에서 참된 기쁨의 사역인 복된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였으니 참 잘하였습니다.
말 전문가 백락을 만나야 천리마가 비로소 천리마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찾으시는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역사를 이루는 천리마같은 인재로 그 재능과 가능성과 잠재력이 계발되어 하늘의 일꾼이 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던’, 빼앗긴 인간의 권리를 되찾은 태초의 창조의 영광이 ‘회복(回復)’된 그 참사람으로 ‘renewal’ 됩니다.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 성경을 통해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말씀입니다. 창조시, 그 환희의 말씀이 이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들려질 것입니다. 다가오는 천지만물의 ‘회복의 때’를 기뻐하십시오. 신의 영역,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안에서 처음사랑을 되찾아(回復), 예수사랑리더십으로 양들을 춤추게 하십시오. 처음사랑으로 회복의 때를 기뻐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