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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음성을 따라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5:31~46 . 2011-12-18

감사^^* 2012. 1. 9. 13:37

하늘 음성을 따라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5:31~46    2011-12-18
 
 
약속의 본질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맬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오늘 죄악, 흑암, 병마, 슬픔의 사슬로 부터 풀 것은 풀어질 것이고, 은혜, 기쁨, 생명, 사랑의 줄로 묶일 것은 묶이는 약속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마16:19).
 
절벽에서 떨어질 때에 비로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급기야 날게 되는 것입니다. ‘약할 때 강하게 되는’ 신비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약할 때가 가장 강한 때입니다. 가장 약할 때, 주님을 온전하고 절실하게 의존하게 되며 그로인해 주님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게 됨으로써 가장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혈루병 여인의 경우처럼 가장 약할 때, 그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주님의 능력을 끌어내게 되었습니다. 약할 때 강하게 되는 신비한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 같은 역설적 신비한 은혜는 ‘하나님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의 진실이 있습니다. 1.수학적, 물리학적 진실, 즉 인간이 없어도 원리를 따라 돌아가는 세계가 있습니다. 또한 2. 인(人),사(史),철(哲)적 진실 즉,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져가는 인문, 역사, 철학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3. 인간의 정신세계의 끝에서 시작되는 진실 즉, 신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신의 세계는 이성적 논리나 근거, 이유들이 통용되지 않고 오직 믿음의 법칙만이 통용되는 신비한 세계입니다. 이 신비한 세계에 신비한 제 3의 힘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제3의 힘을 깨닫게 하는 아담 스미스와 등소평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인의 이기심을 자극하지 않고서는 왕성한 경제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고 자본주의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주장합니다. 그의 경제이론은 경제활동의 근본적인 동기를 개인의 이기심에 의한 상호 경쟁과 충돌하는 과정을 거쳐 종국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사회전체의 공공복지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도덕의 의미나 신의 존재를 강조하는 사람이 아니면서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미묘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또한 공산 국가들이 맞게 될 비극적인 운명을 사전에 예견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중국 공산체제의 경제 정책의 기조를 바꾸어 낸 탁월한 지도자 등소평이 있습니다. 그 또한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날 공산 진영 안에서 불고 있는 바람은 누구도 거역 할 수 없는 세계적인 대기후다. 이제 검은 고양이던 흰 고양이던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흑묘백묘(黑描白描) 이론인 이 말은 백성을 잘 먹여 살릴 수만 있다면 이념이 다른 자본주의 경제체제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아담 스미스나 등소평이 고백한 것처럼 분명히, 부정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던 ‘거역할 수 없는 바람’이던, 대체 이 손과 바람은 무엇이며 또한 어디서부터 오는 것들입니까? 보이지 않는 실체, 도저히 거역 할 수 없는 차원을 달리하는 다른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겠습니다. 신의 섭리라고 표현해도 될 법한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는 화해와 조정의 손길인 이 바람과 손, 통제하기 어려운 경제활동의 방향을 공공복지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변할 수 없는 공산권의 경제정책을 변환시키는 ‘나의 힘’, ‘모두의 힘’이 아닌 ‘제3의 힘’이 오늘도 역사적 현실속에서 일상의 삶 가운데 신비롭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힘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의 희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힘에 붙들려 감옥에 갇힌 절체절명의 베드로를 구출시킨 부정할 수 없는 힘, 바벨론의 힘에 떠밀려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지키신 차원을 달리하는 힘, 이집트의 힘에 사로잡혀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거역할 수 없는 힘. 바로 인간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신비한 능력. 이와 같은 속된 것 안에서 활동하는 거룩한 손, 그리고 시간 속에서 역사하는 영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 모순적 경제체제에서 오는 절대적 빈곤, 사회를 병들게 하는 퇴폐적 문화, 예측 못할 기후 변화와 온난화, 천재지변, 돌발적 전쟁의 위협 등... 금방이라도 지구촌을 폭발시킬 것 같은 작금의 사태들이 지극히 염려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안심 하십시오. 제 3의 힘이라 표현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내시는 손길과 거역할 수 없는 바람, 즉 ‘하나님의 힘’이 모든 것을 조정할 것이며 예수와 그의 부르심에 응답한 여러분들과도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고 소망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일들이 혼란하더라도 평온을 잃지 않는 당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사랑을 봅니다. 보이지 않는 손, 거역할 수 없는 바람처럼 신비한 제 3의 힘의 인도를 받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신비한 제3의 힘의 인도를 받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새 희망이 창조됩니다.
 
한 마리의 사자가 선두에 서서 100마리의 양을 이끄는 무리와 한 마리의 양이 선두에 서서 100마리의 사자를 이끄는 무리가 고지탈환을 위해 벌판에서 맞닥뜨렸습니다. 과연 어느 무리가 이기겠습니까? 전자인 A 입니까?, 후자인 B 입니까? 물론 결과는 붙어봐야 판가름 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두 무리 중, A 이든 B이든지, 이긴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논리와 근거와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A가 이길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A 가 승리할 수 있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명됩니다. ‘양’ 리더가 이끄는 B무리와 달리, ‘사자’ 리더가 이끄는 A 무리는 우선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승리의 중요 요건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사자 리더의 지시에 양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집니다. 먼저 사자는 양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 대열을 전방, 후방으로 나누어 정비합니다. 20마리의 양을 자신의 앞에 세우고 두고 80마리의 양을 뒤에 둔 채 진군합니다. 정글의 법칙에서 사자 같은 짐승이 사냥을 할 때, 반드시 먹을 만큼만 사냥 하는 법입니다. 앞의 20마리 양을 먼저 보내서 100마리의 사자가 그 양들을 사냥하여 배를 채우고 나면, 사자들은 풀밭에 누워 잠을 청할 것이고 그 무엇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나머지 80마리의 양들을 이끌고 재빨리 고지를 점령할 수 있게 됨으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전략에 수긍하는 자들은 함께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이성적 판단이 활동할 수 있는 한계선입니다. 이곳에서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 한계선 너머로 나아가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논리, 근거를 이유 삼아, 인간중심적 인(人),사(史),철(哲)적 진실의 세계를 넘어서 신비한 ‘신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성의 논리와 근거, 이유를 넘어서는 ‘믿음의 법칙’이 통용되는 신의 세계에서는 ‘믿음대로 될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신의 세계, 신비한 힘이 활동하는 ‘그리스도의 세계’는 ‘믿음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성적 판단의 논리와 근거, 이유로 설득될 수 있는 그 지점까지 몰고 간 후에, 그곳에서 열려지는 세 번째 진실에 눈을 떠, 믿음으로 열린 희망과 비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의 신비한 ‘신의 세계’에는 언제나 희망이 열려 있는 법입니다. 그 하늘로 부터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 하늘의 음성을 따라 이웃부터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멀리에서 오시는 사람이 되돌아가는 일들이 없을 것입니다.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가까운 이웃 사람들 사이에 ‘마음이 다니는 길’을 소통시켜야 할 것입니다. 주의 은혜도 바로 그 마음의 길로 왕래하기 때문에 마음을 소통하여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소중하다 하겠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함께 손잡고 가는 동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살아있음의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순간만 살았다고 할 수 있고,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내며,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라게 합니다. 믿는 자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인생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의 세계의 철칙이 있습니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강제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미움을 밀어내고 사랑할 이유를 찾아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낼 때,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2012회기년도! 하늘로부터 주신 위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소망인은 최우선적으로 이웃과 가족 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한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 회복을 위한 금언(金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원수는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내고, 은혜는 마음 속 심비에 새겨 넣으라!’ 원수 같은 것, 나쁜 것들은 재탕 삼탕하지 말고, 다 흘러 떠나보내 잊어버리고,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희망찬 새해를 꿈꾸며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말 한마디가 좋은 일을 불러오며 좋은 관계를 만들게 됩니다.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작은 소자(小子)를 소중히 배려하며 사랑하십시오. 춘추전국시대 아주 작은 일을 소홀히 함으로 큰 낭패를 당하기도 하고, 사소해 보이는 작은 배려를 함으로 큰 도움을 얻기도 했던 증산군의 이야기가 주는 가르침을 잊지 마십시오: ‘어허! 고깃국 한 그릇에 나라를 빼앗기고, 찬밥 한 덩이에 목숨을 구했도다. 누군가를 돕는 다는 것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고, 상대에게 원한을 사는 것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데 있는 것이구나!’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웃의 작은 자들에게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준 것,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해 준 것,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해 준 것,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준 것, 병들었을 때 돌보았던 것,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던 것들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1-45) 주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늘의 음성을 따라 행하십시오. 양 무리인 우편의 너희는 천국의 기업을 얻고 영생을 누리고, 염소 무리인 좌편의 너희는 저주의 불에 들어가 영벌을 받게 될 것이라. 작은 관심 속 배려 깊은 한 마디 말, 일상 속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일에 관심을 두며, 언제든 접하고 있는 우리 이웃의 작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바로 이것이 영원을 결정짓는 영생과 영벌을 판가름 짓는 중대한 사건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마땅히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형제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부부, 부모, 자녀, 목장, 직장.... 가까운 이웃과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며, 성경전체의 하나님의 뜻입니다(마22:37-4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여! 네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
 
가까운 이웃과의 관계를 건강하고 좋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남편과 아내 사이가 좋아야 하고, 건강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는 생명의 명령을 지켜 이제 식후,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1시간씩 ‘사랑의 워킹(walking of love)’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신비한 제3의 힘이 보내지고 있는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실천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신비한 하늘 음성을 따라,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