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말씀 ★/말 씀

진리의 사랑 공동체가 필연코 생명살림 프로젝트를 완수한다. 2012-06-17

감사^^* 2012. 6. 27. 17:15

요한복음 8:1~11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오는 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진리의 사랑 공동체가 필연코 생명살림 프로젝트를 완수한다.
요한복음 8:1~11    2012-06-17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요, 우리는 가장 불쌍한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우리에게 확신에 찬 소망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천사의 소리 내는 날,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한 복음의 비밀과 같이 불가불,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될 것입니다. 홀연히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고전15:50-54)’
 
하나님의 사람의 육체를 땅에 묻으며, 그가 믿음의 선진처럼 믿음으로 증거 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섭리를 가슴에 새깁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요, 새와 물고기와 짐승의 육체가 있는 반면, 사람의 육체도 있어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고전 15:39-44)
 
부활은 신비입니다. 부활의 신비는 믿음으로만 증거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생명 곧, 신비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게 아니고, ‘믿어야 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부활의 역사를 믿는 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요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이 부활의 복음이 은혜의 고향이고, 사랑의 보금자리요, 믿음의 둥지인 과천소망교회에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통하여 독수리처럼 두 날개로 비상하는 소망인들이 ‘열린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새는 아무리 높은 나뭇가지위에 앉아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새에게는 날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의 날개, 진리의 날개, 성령의 날개, 지혜의 날개, 약속의 날개가 있음으로 필승할 그리스도 공동체입니다. 이처럼 승리의 필연을 가져오는 확고한 마음가짐과 그리스도의 정신을 계승받아 영성이 충만한 소망 공동체는 ‘대그룹’과 ‘소그룹’의 두 날개로 힘차게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대학 2학년 학생이 수업시간에 늦게 강의실에 도착했습니다. 교통체증으로 가까스로 강의실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자마자 교수님은 그 날 강의를 마무리하고 계셨습니다. 그 학생은 칠판에 적혀진 수학 문제 두 문제를 서둘러 노트에 적었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풀어 제출해야 할 과제로 생각했기 때문에 노트에 옮겨 적는 것으로 그 날 수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 학생은 그 문제를 풀어 그 교수에게 제출을 했습니다. 문제의 해답을 받아 든 그 교수는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이 문제를 정말 네가 풀었느냐?’ 그 문제는 당대의 저명한 수학학자들이나 현재의 수학의 공식으로는 풀 수 없는 대표적 예로서 칠판에 예시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 학생은 당연히 풀어야 할 과제로 알고 그 문제를 풀었기 때문에 그 풀 수 없는 난제(難題)를 풀어냈습니다. 만약 교수님으로부터 ‘세상에는 현재의 수학공식으로 풀어지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지금 칠판에 쓴 이 문제들 역시 이제껏 알려진 수학공식으로는 풀 수 없는 난제이다.’ 라는 말을 들었더라면, 그 학생은 아마 문제를 풀 수 없었을 것임은 물론이고, 아마 문제를 풀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연히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로 나도 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당차게 그 문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거 나는 할 수 있다. 그 까짓것 나도 풀 수 있다!’ 는 확신에 찬 자신감으로 배운 적도 없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그 누구도 풀 수 없었던 문제에 대해, 지금껏 ‘아무도 생각지 못한 신기한 방법’으로 그 문제를 풀어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기상천외의 신기한 제 3의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길(Way)이요 방법(Way)이다.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신기한 방법!, 바로 그리스도가 신기한 제3의 방법(Way)입니다. 그리스도가 보내시는 진리의 성령이 ‘신비로운 방법’입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그 어떤 공식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들을 ‘주의 성령’으로 깨달아 알 수 있고 풀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달아 알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케 하는 ‘주의 성령’의 은혜야말로 참으로 복된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 방법에는 ‘학술적 접근 방법’과 ‘영적 접근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는 공식에 둥지를 틀고, 후자는 믿음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사료(史料)-구전(口傳)-신화(神話)’를 통한 ‘학술적 접근 방법’으로, 공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을, 오직 ‘성령으로 접근’하는 ‘영적 접근 방법’으로, 믿음으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시는 까닭입니다(고전2:10-12).’ 동서남북, 사방이 꽉 막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을 때에도 하늘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는 법이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접근 방법’이 있습니다. 주님에게만 신기한 제3의 방법이 있습니다. 주의 성령을 통하여 생명살림의 신비한 해결책이 제시되는 법입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접근하여 풀 수 있는 거룩한 책으로, 성령의 빛으로 조명 되야 참된 의미를 알 수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서 비판의 대표적 예인 본문의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프레이둔 사헤브잠(Freidune Sahebjam)의 베스트 셀러 ‘The stoning of the Soraya’를 영화화한 ‘더 스토닝’이 성령의 깊은 깨달음과 은혜의 울림을 줍니다. 이 ‘돌을 던짐 : The Stoning’ 영화는 1980년대 호메이니 정권하의 이란의 한 시골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투석형(投石刑)의 참상에 대한 고발영화입니다. 남편의 음모로 간통죄에 걸린 소라야 라는 한 여인이 구덩이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묻혀서, 아버지, 남편, 아들들,....이슬람 성직자......수많은 군중들의 돌에 맞아 처참하게 죽어갑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돌에 맞아 죽어가는 그 여인을 배경으로 클로즈업되는 수북한 돌무더기를 바라보며 간음한 여인을 둘러싼 돌을 든 성난 군중들에게 던지시는 주님의 생명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나님의 크신 은혜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율법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음으로써, 인간은 죄의 삯으로 썩어짐의 종노릇하며 사망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옴짝 달싹 못하고 죄악의 감옥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처지가 되었던 우리가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남으로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녀의 영광의 자유(自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이끌려 그리스도안의 사랑에서 환난, 핍박, 곤고, 박해, 모함, 적신, 위험, 칼이나 사망이나 생명, 현재나 미래, 권세자들, 깊음이나 높음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끊을 수 없고, 가야 할 길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받는 우리는 모든 문제들을 넉넉히 극복하며, 해야 할 미션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살 길이 열렸습니다. 문제를 풀 방법이 생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구원의 프로젝트 즉, 생명살림 프로젝트는 필연코 수행 됩니다.
 
예수 구세주가 신비한 생명 살림의 길(Way)이요, ‘방법(Way)’이며, 주의 성령이 생명 살림 프로젝트를 완수케 하는 동력의 원천이요, 해결 방법입니다. 살고 죽고는 방법의 차이에 달려 있고, 관점의 차이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살림의 관점’과 ‘죽임의 관점’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합니다. 바리새인과 율법의 선생들은 ‘어떻게 하면 죽일까?’하는 죽임의 관점으로 바라본 반면, 세상의 모든 죄를 다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가지고 계셨던 주님은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 까?’하는 관점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어떻게든 죽이고자 했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죽음의 올가미를 내밀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율법을 어기라 할 수도 없고, 죽이라고 할 수 도 없고...이렇게 대답하던 저렇게 대답하던 그 여인이나 예수님조차도 살아날 방법이 없는 ‘양두논법’의 간교한 죽음의 함정에 빠져 꼼짝달싹 할 수 없을 때, 주님은 생명살림의 신기한 방법으로 풀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난해한 문제를 푸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1-11)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신비한 부활의 생명으로 살리고자,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서 ‘성령으로’ 생명살림 프로젝트의 과제를 신묘막측하게 풀어내고, 그 미션을 완수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소라야와 같이, 율법아래 모든 것을 가둠으로 인해 죄인 된 우리 가운데에서 ‘임마누엘, 주의 성령으로!’, 바로 그 신비한 방법으로 죽을 우리를 살려내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 생명까지도 버리시는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죽음의 문제까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We Can!). 극한 상황 속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풀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안되지만 함께 하면 됩니다. 주의 성령과 함께 하면 위대한 생명살림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홀로 하면 안되지만 주의 진리의 사랑공동체로서 함께 하면 반드시 됩니다. 진리(Truth)와 성령(Spirit)이 함께하면 생명살림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We Can!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율법도 본질적으로 우리를 죽이고자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를 살리려는 목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율법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람과 그 영혼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예수 사랑밖에 없습니다. 생명살림 프로젝트를 완수할 예수공동체는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 사랑의 방법을 터득합니다. 어떤 문제든 풀어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성전, 진리의 사랑 공동체는 필연코 생명살림 프로젝트를 완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