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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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흔적이 있으니, Only1의 인생이다. 2012-09-16

감사^^* 2012. 10. 5. 16:13

예수 흔적이 있으니, only1의 인생이다.
갈라디아서 6:4~18    2012-09-16
 

태양이 뜨면, 어둠은 일순간 사라집니다. 어둠과 빛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빛을 발함으로써 어둠을 물리치고, 선을 행함으로써 악을 이기는 찬란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진리의 빛 가운데, 진리의 사랑을 받는 참자유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함이라.’(살후2:9-10)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는 진리의 자유의 혁명을 완수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에덴동산 밖에서 괴로운 인생살이를 했던 아담과 하와는 사무친 가슴으로 그의 자식 가인과 아벨에게 자신들의 뼈아픈 불순종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 철저한 신앙교육을 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지독한 기독교인들로 자라났습니다. 형제간 우애도 좋았고, 매사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며 첫째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열심히 일했고, 둘째는 새로운 분야를 창업해 목축을 하며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철저한 신앙 속에서 그들은 첫 번째 수확 중, 가장 귀한 것을 정성을 담아 그들의 뼈 속 까지 스며계셨던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둘 모두를 받으셨을 수도 있었는데, 오직 아벨이 드린 것만을 받으셨습니다. 아!.. 심각한 갈등과 문제를 야기 시킨 대사건, 가인의 제사와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와 제물만 흠양하신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러셨을까요?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은 이로써 전개될 ‘형이 동생을 죽이는’ 끔찍한 살인행각의 불행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생겨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둘 중 아벨의 것만 받으셨습니다. 왜?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또한 쌍둥이 중,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왜?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왜? 왜? 왜?...
 
이 세상에는 왜? 라는 이유를 설명(說明)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가운데 왜?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유가 없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것만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왜? 에서를 선택하지 않으시고, 어떤 이유로 야곱을 선택하신 걸까요?
 
왜? 그러셨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왜? 그런지 설명 수 없는 일,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에 대하여는 왜? 왜? 왜? 라고 자꾸 묻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왜? 라고 묻지 말고, 그 일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권한’으로 그저 인정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이후 인류의 역사가 펼쳐질 때, 인생사에서 왜?,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한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아직도 할 일이 많은 42살밖에 안된 젊은 목사님을? 왜? 열심쟁이셨던 전도사님을? 왜?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일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해있는 일임을 인정하고, 더 이상 왜? 라고 묻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운명도, 숙명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는 절대권한을 인정하면서.... 깊이 패인 아픈 가슴에 위로부터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것들이, 위로와 평강과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용기와 지혜와 영광과 성령.......이 채워지고 채워져 ‘알곡’되게, 가득히 채워질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물레위에 올려놓은 한 줌의 진흙으로 ‘요강’과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눈만 뜨면, 일생동안 똥만 보는 요강이 저 꽃병은 저렇게 향기 나는 꽃과 더불어 사는데 나는 왜? 나만, 왜? 무엇 때문에, 왜? 나는 냄새나고 더러운 똥 하고만 살아야 하느냐고 이유를 따져 묻기만 한다면...?, 왜? 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하며 계속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만들어진바, 그릇의 본래적 역할을 다하지 않을 때.., 그때 토기장이는 철장으로 그 그릇을 깨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강은 ‘요강의 역할’을 하기위해 만들어 진 그릇이니, 자신이 해야 하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그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을 때, 필요 없게 된 그 그릇을 깨 버리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입니다. 요강은 토기장이가 그의 권한으로 자신을 요강으로 쓰시려고 만들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강 됨’을 수용하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역할을 최고로 잘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듬어갈 때, 토기장이를 기쁘게 하는 참 좋은 요강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선한 도구’로 부름 받은 우리도 그리해야 합니다.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의 절대 권한을 인정(認定)하고, 제 역할과 몫을 다하는 것이 옳은 신앙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 토기장이의 권한을 인정할 때만 성경이 올바르게 풀어질 수 있으며,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면서 내 생각,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되는 줄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깨닫습니다. 이 일들은 필연코, 창조주의 절대 권한과 구원의 뜻 안에서 심리적, 정신적 ‘모멘텀’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극적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못 박혔다’고 증거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했던 바울처럼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나를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말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노라!’(갈6:12-17)
 
‘예수의 흔적’이란 이 땅에 남겨진 예수의 삶의 자취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흔적’이란 궁극적으로,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예수인(人)은 예수와 함께 배척당하고 이단으로 정죄되고, 갖은 모욕과 모멸을 받으며, 수치와 억울함과 배신당함, 감옥에도 갇히고 사기꾼 협잡꾼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주의 형틀에서 갖은 고난을 당하고 죽기 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났습니다. 예수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었던 온갖 고난과 환난과 고통과 시련과 시험... 저주스런 죽음까지 예수와 함께 다 겪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의 삶의 흔적을 지닌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예수 흔적을 지닌 사람이 더 이상 무엇이 무서울 게 있겠습니까? 예수 흔적을 지닌 내가 더 이상 무엇이 두려운 게 있겠습니까? 예수 흔적을 지닌 우리 소망인은 산전, 수전, 공중전, 육박전까지 치르고, 이제 더 이상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거리낄 것도 없고, 그 무엇도 안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갈 길을 그 어느 것도 결코, 가로 막을 수 없습니다. 환난과 핍박과 곤고와 위험과 칼과 죽음까지도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사명을 절대로 방해할 수 없습니다. 도무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 예수 흔적을 지닌 우리는 ‘온리 원(Only 1)’의 인생입니다.
 
옳습니다. 우리 소망인은 천지간, 예수 흔적을 지닌 ‘온리 원’입니다. 이런 일, 저런 일...겪을 만큼 겪은 우리 소망인,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고, 안될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 받은 ‘온리 원(Only 1)’,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리 원(Only 1)’의 삶은 왜? 라고 반문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충실히 감당합니다. 자신의 사명을 의연히 담대하게 감당하여 선으로 악을, 빛으로 어둠을 극복하며, 하늘의 생명살림 역사를 이룹니다. 결국, 빛의 열매를 맺으며, 영생에 이를 것입니다. ‘대추 한알’에 태풍 4개정도가 들어서야 붉게 익혀진다 합니다. 천둥도 번개도 그리고 무서리 내리는 몇 밤, 땡볕 서너 달이 들어서야 둥글게 다 져진, 실한 열매로 결실된다 합니다. 극한 시련과 풍파 속에서 알곡으로 익어가며 영생의 열매로 맺어집니다.
 
이 세상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건지 설명(說明)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대신,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강화하여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 그 십자가의 일에 혼신을 다합시다.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서의 본연의 일을 의연히 해나갑시다. 왜 그런 일이 생기며,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던 ‘노아’처럼, 의연하게 산 중턱에 방주를 짓고, 살 자를 태우는 사명을 다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행하는 의인의 용기 있는 삶, 사명자의 인내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온리 원(Only 1)’의 인생으로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요강으로서 꽃병으로서, 만족하는 이류(二流)로 머무르지 말고, 변화와 성장을 포기하지 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여 ‘온리 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열정을 쏟아 부어 장점을 강화해야 합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되도록 끊임없이 도전을 감행하여 ‘온리 원(Only 1)’의 인생이 되십시오. 칠전팔기, 77번 넘어져도 88번 일어서며, 99번 짓밟혀도 100번째 다시 움킨 것을 찢고 오르는 유다, 용맹스런 사자처럼, 멈추지 말고 빛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며 빛의 열매를 맺어갑시다.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예수의 흔적을 지닌 온리 원(Only 1)의 인생답게 가장 소중한 지금,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추수의 오늘, 릴케의 시 ‘가을날’이 생각납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 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시옵소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고난의 폭풍과 큰 바람 속 영생의 열매로 익어가는, 이 땅을 살아가는 하늘에 속한 소망인! 예수의 흔적이 있으니, only 1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