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말’을 전해야 하는 이 시간, 오직, ‘진리’이신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게 하소서. 성령이여 도우소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하늘의 순리대로 순응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나의 생각이나 뜻’, ‘내 시간표’에 맞추어 일이 되지 않음으로써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 ‘하나님의 시간표’에 모든 것을 맡기면 합하여 좋은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우리 주 하나님~’ ‘주 안에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결국,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알곡을 거두는 추수 때, 고난 가운데 인내를 통하여 주님 같은 마음과 성품으로 변화되어 소망의 결실을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위대한 농부이신 하나님이 사람농사를 지으십니다: 좋은 마음의 옥토(沃土) 밭에서 좋은 생명의 열매들을 풍성히 결실하실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믿고 바라는 가운데 사랑함으로써 맺혀지는 극상품 열매는 천국 곳간에 옮겨집니다.
부활(復活)의 주일(主日)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을 기리는 주(主)의 날입니다. 주의 날, 부활의 주일의 주인공들이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지닌 약속의 사람들만이 ‘모순의 극치’인 ‘죽음’의 고정관념과 그 허상을 부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지닌 그 두려운 힘을 극복하여 은혜와 평안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참된 행복자가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떨며 절망과 슬픔가운데 낙심하고 있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후~’ 숨을 내쉬며 하나님이 기운을 부으시면서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제하늘의 뜻을 이루는 하늘의 미션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요20:19-23).
또 다시 부활의 주님은 낙향하여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부르심에 합당한 미션을 다하지 않고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고 먹이고 돌보라!’(요21:15-23) 부활의 주일 아침, 부활의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그리 아니할 지라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네 생각과 뜻대로 되어지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삶의 현장에 살아계시며, 크신 뜻을 이루시고 계심을 믿으시나요?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사랑하시나요? 그래서 오늘도 당신은 최선을 다하여 하늘의 미션을 잘 감당하고 있으신가요?
베드로의 인생은 수많은 태풍과 폭풍이 소용돌이치며, 천둥 번개 치는 치열한 여정 속에서 순교의 거룩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뒤따라, 고난과 시험과 시련의 치열한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다,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음으로써 자신의 미션을 아름답게 완수하였고 최후 승리의 면류관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베드로등과 같은 순교자들의 피의 헌신이 터전이 되어 세워진 우리 교회는 필연코 잘 될 수 밖에 없고,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처음 영광보다 크게 될 것입니다. 사탄마귀와 죽음의 권세를 부수고 영광의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후에 부활 승리하며,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영생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생명나무로 나아가며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십자가의 생명나무에서 썩지않는 생명을 결실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의 ‘썩지 않는 사과’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을 불러일으킵니다.
1991년, 일본 아오모리 현에 4성급 태풍이 강타하여 대부분의 사과농장이 전멸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농장에서만 80프로의 수확량을 확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의 사과가 출시됩니다. 4천년 사과재배의 역사를 뒤바꾸어, 기적의 ‘썩지 않는 사과’를 탄생시킨 혁신농부 ‘기무라’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죽지만 말고 제발 살아만 다오.’ 말라 비틀어 죽어가는 사과나무를 붙들고 애통하며 애원하나, 속수무책인 농원주인 ‘기무라 아끼노리’. 그는 비통한 표정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이어가지 못한 채, 뉘엿뉘엿 저어가는 석양에 물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농장을 떠날 줄 모릅니다. 기무라는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으로 사과를 재배하겠다는 신념과 끈기로, 지난 5년동안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가면서도 꿋꿋하게 화학비료를 중단합니다. 직접 만든 퇴비만을 사용하고, 해충을 손으로 잡으며, 사과 하나하나 봉투를 씌어주고,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확량 감소, 비틀어지며 말라죽어 가는 사과나무들, 점점 가중되는 재정적 압박, 아! 이제는 끝이로구나~
그는 결국 자살을 결심합니다. 산에 올라 상수리나무에 목을 매려는 순간, 그동안 무심코 봐오던 상수리나무에 가득 달린 도토리가 새롭게 보입니다. 숲속에는 벌레도, 잡초도 많은데, 농약도 없이 이렇게 잘 자라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새로운 인식의 변화는 시작되고 죽으려는 결심도 바뀝니다. 인식의 변화는 기적의 시작입니다. 원인은 ‘흙’이었습니다. ‘자연의 흙’은 ‘농장의 흙’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터득한 그는 기존 재배의 방식을 뒤엎는 역발상으로, 최대한 가꾸지 말고 방치하자고 다짐합니다. 그동안 사용되던 농약, 화학비료는 물론, 천연비료 및 농기계조차 일체금지하나 먹이사슬의 치열한 줄다리기 선수들인 잡초, 해충, 들쥐, 토끼 등은 환영합니다. 그가 할 일은 오직 병이 걸릴 경우, 물과 식초를 공급해주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어 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100프로 자연농법이 만든 기적의 ‘썩지 않는 사과’가 탄생했습니다. 그의 농장의 토양과 사과나무잎 표면에는, 원시림에서나 볼 수 있는 유익한 미생물들이 활발히 생존하고 있었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환경이 철저하게 관리되어 ‘야생의 힘’이 회복되었습니다.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치명적 한계, 모든 적에게 노출되어 있는 식물들의 처절한 생존경쟁, 그러나 그들에게도 ‘자기 방어 시스템’이 있습니다. 예컨대, 옥수수에 갑자기 애벌레가 나타나 잎사귀를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적이다’ 그러자 비상이 걸리고, 뿌리와 가지들은 화학성분을 만들어 잎사귀를 통해 방출합니다. 애벌레의 천적인 말벌이 가장 좋아하는 냄새입니다. 어느새 말벌이 날아와 애벌레를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신기하게 적을 퇴치하는 자기방어능력이 참으로 뛰어납니다. 원시림과 흡사한 흙에서 자란 기무라의 사과나무는 이처럼 잃었던 ‘자기 방어 시스템을 회복’한 것이며, 기적의 썩지 않는 사과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반면에 애벌레를 잡기위해 농약을 살포하면, 애벌레가 아닌 농약의 독성에 대처하기 위해 ‘자기 방어 시스템의 체계’가 바뀌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으로 ‘유전자(遺傳子)의 변형’이 올 것이고, 오염된 종자들은 ‘자기 방어 시스템’을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할 것이며, 농약에만 의존하는 변형된 씨앗으로 유전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목합니다. 기무라씨의 신념과 끈기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말라 죽어가던 사과나무의 ‘자기 방어 시스템의 회복’입니다. 기적의 썩지 않는 사과의 탄생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입니까? 이는 사과나무의 기적이 우리 자신들의 ‘자기 방어 시스템’의 회복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생명나무에서 결실되는 ‘썩지않는 생명’의 기적, 이 약속의 성취를 위한 ‘자기 방어 시스템의 회복’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미래의 또 다른 희망입니다.
그렇습니다. ‘썩지 않는 생명’의 회복은 미래의 또 다른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농부시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 ‘옥토 밭’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고 사랑하며 지키어 인내로 결실할 언약공공체입니다. ‘흙’이 원인, ‘사람의 마음 밭’이 관건입니다. 말씀을 듣되 깨닫지 못하여 사탄이 물어가는 ‘길가’나, 말씀을 듣고 잠시 기뻐하나 말씀으로 인하여 핍박이나 환난이 오면 뿌리가 뽑혀 결실하지 못하는 ‘돌짝 밭’이나, 재리의 유혹, 육신의 염려, 세상의 쾌락으로 기운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가시덤불 밭’과 같은 척박한 토양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과 같은 품성으로 계발되어 ‘옥토 밭’이 되어야 실한 결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좋은 마음으로 믿고 사랑함으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증언처럼 우리의 척박한 마음을 옥토 밭으로 이렇게 기경해야 합니다. 믿음에 덕, 덕에 지식,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에 형제애, 형제애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벧후1:1-11). 성숙되어 질을 높이며 예수의 사랑의 마음으로, 그런 옥토 밭으로 바뀌어 질 때, 자기방어 시스템이 회복될 것이며, 그로인해 썩지 않는 생명이 회복되어 영생의 소망을 이룰 것입니다.
지난 7일간, 많은 것을 생각하고, 수많은 하늘의 메시지를 받았던 고귀한 나날! 큰 가르침과 깨달음, 각오와 결단의 시간들, 안타까운, 그러나 감사한 나날이었습니다. 예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서 ‘때를 따라’ 정하신, 하늘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부활 승천 하셨습니다. 그 ‘예수의 죽음’을 깊이 생각하며, 그 뒤를 따랐던 작은 예수 이정수 목사님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눈물로, 기도로, 가슴에 되새겨보았습니다.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또 하나의 보내신 자로, 불꽃같은 열정의 삶을 살다가 부활의 주일,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신 이정수 목사님이 사랑하는 약속의 사람들에게 사모님을 통하여 대신 전하는 하늘에서의 편지를 마음에 새깁니다. ‘......42년간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날들이 너무도 짧고 짧아 안타깝고 아쉬움이 많지만 증거하지 않을 수 없는 고백이 있습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살아온 사람임을 옆에서 보아온 사람으로서, 가장 확실하게 이번의 죽음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목사님 자신도 알았기에 사랑하는 가족들, 아직도 돌보아야 할 아이들을 남겨두고 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쓴잔을 받아들이심에 망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발병을 하고 수일동안 목사님의 쾌유를 위하여 기도하였던 모든 분들은 한 목소리로 기적이 일어나 목사님이 다시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이 자리에 서있듯이 눈에 보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우리의 기도는 모두 헛된 것이었을까요? 아시는 것처럼,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일주일동안 이정수 목사를 가슴에 품고 간절히 기도했던 사람이라면 기적은 꼭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그 사람의 가슴속에서 이정수 목사님은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살아계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제껏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권면을 하고 상담을 하였던, 그 어떤 사역보다 가장 위대하고 큰 사역이었으며, 최고의 사역이었다고 생각됩니다....이제 선배목사님들처럼 죽음 앞에서 당당하고 싶다고 고백하였던 목사님을 생각하며 그 대신.., 그 사람대신,.. 이젠 제가...아니 우리가..그의 죽음을 통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됨으로 더 이상 슬픔에 빠져 있지 않으려 합니다. 그처럼 위대한 흔적을 남기며, 그렇게 충직하고 헌신된,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께 눈 먼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주께 영광을 돌리는 이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기적’, 예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기적’, 이런 위대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시나요?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진실로 사랑하시나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먹이라, 돌보라.’ ‘네 몫을 감당하고, 네 미션을 완수하라.’ 다짐합니다.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살리라! 예수사랑을 확장하며, 욕망 없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리라! 예수의 마음으로 옥토 밭으로 기경(起耕)하여 ‘신의 성품’으로 나아가며, 자기방어 시스템을 회복함으로써 썩지 않는 생명을 결실하리라! 성숙된 신앙인, 참된 그리스도로 살리라! 필연코, 우리 소망인은 ‘영생의 소망’을 이룰 것입니다. 썩지 않는 생명의 회복은 미래의 또 다른 희망입니다.
이 영생의 결실, ‘대추 한 알’처럼 거저 맺혀질 리 없습니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 졌을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저게 저혼자 둥글어 졌을 리 없다. 저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땡볕 두어 달, 초승달 서너 날이 들어서야 둥글어 졌을 게다. 대추야, 너는 하늘과 통하였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