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가’절(仲秋‘佳’節)! 영혼과 가족위에 은혜의 보름달이 떠올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조~은’ 밝고, 풍성한, 행복 한가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초생달, 반달,..보름달, 보여지는 현상의 모습은 날마다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로 달은 본래 둥근 모습임을 잘 압니다. ‘현상’(現象)과 ‘본질’(本質:源泉)을 인식하며,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물론, 밀물과 썰물로써 바다와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달이 하는 일에 주목하면서 말입니다. 한가위, Thanks giving! 영원한 생명의 일을 행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존귀와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리허설이 없는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살아가는 우리는 실수가 많고 잘 안되는 일들이 다반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으 목자잉게, 나는 오져부요~ 나가 부족함이 없당게’, ‘여호와가요 나의 목자래요, 이지가지 마카 주니까네, 내가요 부족한기 한 개도 읍쟎소~’. ‘여호와께서 염생이 같은 지를 키우시고 멕이시니, 지가유~ 부족한 것이 없네유.’ ‘여호와가 마 내 목자인기라, 그라이 내 사마 우짜든지 부족할게 없데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되시니끼니, 내래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시오, 거럼’
경계선 상의 인생! 우리는 이상과 현실의 경계선 상을 살아나갑니다. ‘국수와 국시’, ‘밀가루와 밀가리’, ‘봉투와 봉다리’, ‘가게와 점방’, ‘아줌마와 아즈메’, ‘아이와 얼라’, ‘엎어잔다와 뒤벼잔다..’등 다를 뿐, 틀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함경도 방언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흑백논리와 같은 ‘이분법(二分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문자주의(文字主義)’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21세기는 다양성(多樣性)의 시대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거나, 저급하게 여겨 무시하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녀노소, 신분, 지방, 나라, 문화가 다양한 가족이 한 데 모이는 한가위에, 화목하고 행복한 은혜의 만남이 되려면 명심해야 할 시대적 진리입니다.
전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드높힌, 황금사자상의 그랑프리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과 함께 K-POP 스타 등 한국가수들의 눈부신 활약을 바라봅니다. 참으로 신기(神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생받기로 작정된 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을 찾기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신기한 하나님의 기술이 발휘되면 어찌 될까요. 아멘 할렐루야! 영광의 전조를 찬양합니다. 나타내 보여지는 현상 속에 본질(원천)의 섭리를 통찰하며 다가오는 하늘의 영광을 온 마음으로 기쁘게 노래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기술로서 사람의 힘과 능이 아닌 하나님의 신, 성령으로 이루시는 진리의 복음의 역사에 참여한 우리 소망인이야 말로, 이 시대 빛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며, 이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게 되리라. 영광의 그날에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에 충만할 것이라(사11:9).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 갈수록, 그 만큼 더 주를 신뢰하고 사랑하게 됨으로써 무르익은 ‘영생의 알곡’으로 추수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조~오토록 참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설익은 것을 오늘도 성령을 통해 익혀가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써, 설익은 것들이 무르익어 가면서 눈이 밝아져 필경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처럼 영광의 실상을 밝히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설익은 것이 다 무르익는 다는 것, 다시 말해 영생의 알곡으로 완숙 된다는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을 온전히 회복한다는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의 두 속성인 사랑과 공의를 다 갖추게 되는 ‘Renewal’이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두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사랑과 공의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은 하나님의 참 자녀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옳습니다. 지혜가 무르익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분법적 또는 문자주의에서 벗어나 진리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생명사관을 천명합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두 얼굴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랑과 공의의 양면(兩面)을 가지고 계셔야만 사랑이 없으므로 무자비하지도 않고, 공의가 없으므로 무기력하지도 않게 되는, 참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 하늘의 상과 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면 천대까지 복을 받고, 사랑하지 않으면 천대까지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곧 와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리니, 각자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우리 참된 하나님의 자식은 사랑으로 가슴을 채우고 공의의 칼로 아버지의 참 뜻을 이룰 것입니다. 양보할 수 없는 그 일을 결코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단호하게, 용감하게, 담대하게, 의연(毅然)하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조~은 일을 ‘함께 죽으리라’는 각오로 결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사랑과 공의를 수행키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며 단행했던 주님처럼, 그 어떤 망신, 조롱, 모욕, 매 맞음, 찔림, 배척, 정죄...등 어떠한 고난과 고통, 슬픔과 억울함도 외로움도 힘듬도, 핍박도, 극복하며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그 어떤 희생도 ‘치러내면서’, 추진해 갈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뜨거운 사랑으로 그러나 공의로 칼날같이 생명살림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죄인을 다 품으신 주님, 하나님의 참 형상이신 예수님은 누구든지 다 주의 품으로 돌아올 길을 열어놓으셨지만, 불의와 타협하거나 논쟁치 않으시고 결코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그 일을 위해, 아버지의 참 뜻대로 말씀에 순종하여 의연히 결단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한없는 사랑으로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셨지만, 동시에 용납될 수 없는 일에 대하여는 거룩한 성전에서 ‘상을 뒤집어 없기도 하시며’,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새로이 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 독사의 자식들아’ 질타하시면서 공의롭게 채찍하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처럼 무르익어 하나님의 모습을 회복하는 우리도 사랑과 공의로써, 용인할 것은 끝없이 용인하나,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지혜로운 대응을 해야 합니다.
열정적 사랑을 가슴에 품고 공의의 칼로 단호하게 결단하며, 하나님이 뜻하셔서 명하신 일을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로써, 영원한 생명의 알곡으로 무르익어 가면서, 진리의 첫 열매로 영글은 극상품 실과들을 지혜롭게 추수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설익은 지식이 무르익음으로써, 사랑과 공의를 지닌 우리, 예수 십자가의 흔적을 지닌 소망인은 과거의 잘못과 실수에 발목 잡히지 않고,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부흥과 발전을 거듭할 것입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약속된 미래를 맞이하며 생명살림의 프로젝트를 영광스럽게 완수 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습니다. 태풍들과 번개, 벼락, 천둥들로 하늘과 통하고 세상과 통하여 사랑들과도 소통하는 가운데, 우리들 사이도 그로인해 소통됨으로써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믿어주고 사랑하게도 되었습니다. 리허설 없는 인생살이 중 잘못과 실수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결코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훼방과 비난과 조롱과 핍박과 폭력과 갇힘과 가난과 고난 과 고통과 위협과 칼과 죽음이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절대로 방해하거나 훼방할 수 없습니다. 이 어두움이 가득찬 세상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조~은 일을 완수해야 하는 우리와 우리교회는, 그 어떤 일에도 놀라거나 두려워 흔들리며 물러서지 않고, 의기소침에 빠져 포기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의연히 극복하며, 추진할 것입니다. 약점을 잡아 흔들고 위협하며 흔들어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들에도 ‘죽으면 죽으리라!’,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서, ‘죽어야 산다’는 진리를 되새기며 정면으로 뚫고 나가며, 헤쳐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가로막거나, 교회의 참된 일을 훼방하는 그 어떤 일에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단호하게 사랑과 공의로 지혜롭게 맞설 것입니다.
사랑 안에 공의가 있고, 공의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은 필연적으로 공의를 동반합니다. 오늘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 속에 성령을 통해 설익은 지식의 실과가 무르익어 갑니다. 점점 눈이 밝아져 사리를 명확히 깨달아 하나님이 보시기에 조~은 일을 사랑과 공의로써 극복하며 추진해 갑니다. 무르익은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과 공의를 동반합니다.
‘여호와는 나으 목장께, 내사마, 우짜든지 부족한 게 없어유~거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