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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랑으로,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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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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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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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가까웠으니, 생각과 마음을 바꾸라!’ 주를 통해 천국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날, 이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계11:15)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혁명’이 이 땅에 시작되어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하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어, 오늘도 우리 소망인의 가슴속,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천국잔치의 기쁨을 오늘 이곳에서 선취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입니다.(마13:44)’ 천국은 재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가득담긴 마음으로 소유할 수 있는 특별한 가치를 지닙니다. 증오, 분노, 원망, 불평, 우울, 절망 등을 쏟아내고, 사랑으로 가득 채운 마음의 세계 속에서, 개인과 한 몸 공동체 안에 심겨진 천국의 씨가 자라나 영생의 열매로 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복음을 믿고 소망하며, 진실로 사랑하는 자만 경험하게 되는 특별하고도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임종직전의 명의(名醫)가 웃음 지으며 소개해준, 자신보다 더 훌륭한 의사 셋이 있습니다. 이 신통한 세 의사는 1.음식(위의 75%만 채우는 소식), 2.수면(12시 이전에 숙면) 3.운동(식후 부부가 손잡고 1시간씩 걸음)입니다. 또한 이와 함께 꼭 복용해할 세 가지 약도 알려 주었습니다. 영혼을 위하여 꼭 섭취해야 할 세 가지 약은 1.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말씀’이라는 약, 2. 만병통치약인 ‘기도’ 그리고 3. 상시로 복용해야 하는 ‘사랑’이라는 명약입니다.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Love never fails.’ 주를 사랑하는 자, 그 꿈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해져 미소 짓게 하는 선한 결과를 이룹니다. ‘천국 소망인’,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을 산 소망을 이룰 자들에게는, 출애굽시, 양의 피를 바른 문설주를 유월(pass oover)하는 ‘죽음의 천사’와는 무관하나,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구출했던 ‘살림의 천사’와는 긴밀하게 관계됨으로써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도 감당해나갑니다. ‘이 세상과 그의 나라는 심판당해 멸망당할 것이지만, 우리는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의 제1원리는 ‘새것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것입니다. 속되거나 옛것은 거룩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걸맞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7배나 뜨거워질 태양이 빛나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그러므로 병도 아픔도 눈물도 죽음도 없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우리의 모든 것이 거룩하고 새롭게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지금 ‘점진적’이만 변화됨으로써 약속된 ‘마지막 변화’를 이루어 온전한 천국의 잔치를 누리게 됩니다. 현재에, 답답하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변화인 ‘마지막 변화’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비밀을 말하노니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겠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다.(고전15:51-52)’‘그날,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에게 이르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다 이루어지리라. 첫째, 둘째, 셋째... 여섯째 화가 지나가고(pass over),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사망이 없는 영원한 새나라, 즉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 이다(계10:7, 계11:15).’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들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니, 하나님의 사람들이 삼일 반 후에 살아나, 영원한 승리자가 되리라(겔37:9-10, 계11:11).’
그리스도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고 최후에 웃는 승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영광의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생기가 들어가매 하나님의 새 나라에서 살 승리의 백성들이 새롭게 창조되며, 이 세상의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화’ 될 것입니다.’
신앙인의 궁극적 바람은 ‘마지막 변화’입니다. 마지막 변화는 현재적 변화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지닙니다. 마지막 날, 온전한 ‘사랑체’로 변화되어, 예수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를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에 웃어야 다 좋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와 함께, 마지막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가 됩니다. ‘참된 사랑으로’, 지금도 웃고 내일도 웃으며, 최후에 까지 웃는 자가 인생의 진정한 승자입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위대한 가치인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명작입니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얼음처럼 냉혹하나 아름다운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청혼해온 왕자들에게 결혼의 조건으로 ‘세 개의 수수께끼’를 냅니다. 그것을 다 맞추면 그와 결혼할 것이나, 하나라도 맞추지 못하면 참수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수수께끼는 세 개, 죽음은 하나! 목이 잘리는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유랑생활을 하던 타타르왕국의 왕자 ‘칼리프’가 공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용기를 내어 목숨을 걸고 도전합니다. 공주가 세 가지 수수께끼 중 첫 번째를 던집니다. ‘이것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개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 모두가 갈망하는 환상. 이것은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이 되면 죽는다.’ 왕자가 답합니다. ‘그것은 희망!’ 두 번째 수수께끼가 이어집니다. ‘이것은 불꽃을 닮았으나 불꽃은 아니며, 생명을 잃으면 차가워지고, 정복을 꿈꾸면 타오른다. 그 색은 석양처럼 빨갛다.’ 왕자가 주저없이 답합니다. ‘그것은 피!’ 마지막 아무도 풀지 못했던 세 번째 수수께끼가 던져집니다. ‘이것은 그대에게 불을 주며, 그 불을 얼게 하는 얼음.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이것은 그대를 노예로 만들고, 이것이 그대를 노예로 인정하면 그대는 왕이 된다.’ 빙그레 미소 지으며 왕자는 답합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 투란도트!’
칼라프가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내자, 공주는 매우 당황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 소유가 되진 않는다.’고 소리치며 결혼에 응하지 않습니다. 황제는 약속은 신성한 것이라고 설득하지만 공주는 거세게 거부합니다. 이렇게 완강한 공주에게 칼리프 왕자는 역으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내 이름을 알아맞혀 보시오. 새벽녘까지 내 이름을 알아맞힌다면 그대의 승리. 원한다면 내가 죽으리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자, 공주는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동이 트기 직전, 사랑의 승리를 확신하는 왕자는 공주를 찾아갑니다. 왕자는 투란도트에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호소하고, 격정적인 키스를 하자, 이에 공주의 차가운 마음이 점점 녹아 눈물을 흘립니다. 그 때 왕자는 공주의 귀에 입을 대고 ‘나는 타타르의 왕자 칼리프’ 라고 이름을 밝힙니다. 자신의 이름이 칼리프임을 밝히고 죽음을 기다리는 왕자, 드디어 심판의 시간, 공주는 황제 앞에 그를 데리고 가서 이자의 이름을 알아냈다고 외칩니다. ‘그의 이름은 사랑(amor).’
사랑, 참으로 신비한 사랑, 그 사랑에 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네 인생의 삶이라는 현장에서, 간혹 신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사랑할 때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을 거뜬히 해내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화와 기적”을 끌어 내기도하고,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요? 사랑의 원천은..?
로마시대, 전사의 영웅이라는 ‘카이사르’는 이름을 남기고, 대리석으로 덮인 로마를 남긴 ‘아우구스투스’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남긴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로마사회의 주류로 명성과 업적을 남긴 일의 이면에는 수많은 병사들의 강요된 희생, 강제노역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 있었을 테니, 이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면 인간사 왠지모를 까칠한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되풀이 되는 역사 안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회적인 명성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주류는 아니나 삶에 감동을 주며 좌절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와 ‘용기’를 주는 또 하나의 가슴 따뜻한 명성과 업적이 있습니다. 손양원, 주기철,.. 소망의 장로님, 권사님,..지역장님들... 소망의 일꾼들, 그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숙여지며 가슴을 저어내는 이런 분들은 어디서 오신 분들이며 무엇을 가지고 오신 사명자들 입니까?
이들을 보낸 예수님은 강요하지 않았음은 물론, 보내심은 받은 그들 또한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자들일 것이라 믿습니다. 강요에 의해 하는 일과 자발적으로 하는 일은 다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보상이 없는 일에 헌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 사랑을 남기셨습니다. 로마시대 명성 있는 모든 이름과 업적은 지금 사라져 버리고 없지만, 어두움이 짙어갈 때 더욱 빛나는 별빛처럼 예수의 이름은 지금도 빛나고, 이 혼돈의 세상에서조차 멈춤이 없이 그분의 의지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 아닙니까? 나라를 사랑하는 이성적인 사랑이 아닌, 감성적이며, 인간 본질적인 사랑,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예수 사랑, 상대의 장점을 보고 미래를 보며 나눌 수 있게 하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발길을 인도로 되돌려 기독교적 비폭력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 또한 완전한 삶을 갈망하며 맞이한 황혼기를, 인내하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로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습니다. 그 메아리는 지금도 메아리쳐 들립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살아있음의 증거다.” 그렇습니다. 이젠 회초리 들고. 개 풀고, 몰아가는 ‘양떼몰이식 리더십’이 아닌, “양들을 춤추게 하는, 예수사랑 리더십”이 절실 할 때입니다. 욕망이 없는 ‘예수사랑’ 확장은 너와 나의 소명이 아닌, 우리 소망인 모두의 사명입니다. 예수 사랑으로만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예수사랑으로 끝까지 웃을 수 있습니다. 예수 사랑으로,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