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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의 행복 메이커로 신나게 누리라! 2012-10-28

감사^^* 2012. 12. 6. 12:14

주 안의 행복 메이커로 신나게 누리라!
빌립보서 1:1~14    2012-10-28
 
 
‘생육하고 번성하며, 행복하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인간을 향하여 축복하시는 은혜의 명령입니다. ‘행복’이란 자고로 인간이 추구해온 최상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행복은 ‘소유 가치’가 아닌 ‘사용 가치’입니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黃金萬能)이란 말은 틀린 말입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고,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수는 없으며, 여자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성경은 살 수 있지만 성령과 은혜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을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늘날 황금만능의 시대, 돈이 신이 되어 판을 치는, 암울하고 불행한 이 세상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하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회복하는 기독교의 역사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나뭇잎에 단풍이 들어 땅에 떨어져 어서 빨리 썩어져 거름이 되기를, ‘자연’은 바라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이 썩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소원하시며 꿈꾸십니다.
 
‘주께서 너희로 소원을 삼으시고, 너희를 통하여 꿈꾸시는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진정 행복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 나라의 새 역사를 위하여 너희 안에서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은혜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성취하실 것을 확신합니다(빌1:6-14).’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진리가 값없이 주어져,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세대에게 나타내려 하심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7-8) 이제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주의 은혜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495년 전, 종교개혁자 루터의 외침대로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Sola gratia)!’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의 허황되고 잘못된 가르침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연보궤에 동전이 땡그랑 하고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던 영혼이 빠져나와 구원에 이른다???’ 진리를 사랑하고 열망하며 진리를 밝히 드러내기 위하여 비텐베르그 교회 성문에 게시된 95개 논조를 통해 루터는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위협하는 무서운 카톨릭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의연하게 ‘오직 은혜로’라는 개혁의 진리를 천명하였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섯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은혜와 진리 되신 승리자, 주 예수 그리스도!, 은혜의 체험을 한 루터의 고백한대로 어떤 선한 행위라도 죄인의 속성을 지닌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성경의 증언대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의 이 믿음이 필연적인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롬1:17) 종교개혁의 나비효과가 오늘 여기, 우리 교회, 우리의 각자의 삶속에서도 일어나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오늘부터 ‘나를 위하여’는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와 주의 사람들을 위하여’,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만 기도할 것입니다. 자동차 주인의 허락을 받고 그 사용의 사유가 타당할 때에 자동차 소유자가 자신의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것을 사용하려면, 사유가 납득되며 명분이 있어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사용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며, 그럴만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창고 안에 있는 무진장한 보화들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은 우선 내게 있는 것을 여러분이 사용하려면 첫 번째 절차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내 승용차를 누가 급히 사용하고자 하면 먼저 내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탁할 때는 그럴만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아버지여 이 잔을 제게서 떠나게 할 수 없습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할 때도 인간 대 인간으로 부탁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사용하려면 예수님의 기도에서 배워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신 예수님! 내 이기심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것’을 사용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이웃이 고통을 당할 때, 마치 ‘내가 고통을 받는 것과 같은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면 주십니다. ‘사랑’만이 하나님의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오직 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내게 은혜로 이미 주신 것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늘 곳간을 마음대로 열수 있고, 이미 주신 하나님의 선물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주를 사랑하며 주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진실된 사랑입니다. 옳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여 주신 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십시오. 행복한 사람만이 행복을 만드는 행복 메이커(happy maker)가 될 수 있습니다. Don't worry, Be happy!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 메이커 예수, 예수를 행복하게 하는 행복 메이커 바울, 하나님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 메이커 소망인. 주안의 행복 메이커는 행복을 신나게 누리고 나눔으로 행복 발전소가 됩니다.
 
행복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특별한 가치체계를 지닙니다. ‘기’라는 중국의 전설 속의 동물이 있습니다. ‘기’는 생김새는 ‘소’와 같고, 광채 나는 푸른 몸에 ‘발’은 하나로, 우뢰 같은 그의 소리는 500리를 간다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발’이 하나뿐인 ‘기’가 유독 부러워하는 대상이 있었는데, 바로 발이 백여 개나 되는 ‘지네’입니다. 그 수많은 발을 가진 지네는 ‘뱀’을 그렇게 부러워했답니다. 뱀은 자신처럼 발을 움직이지 않고도 스르륵 몸으로 미끄러지듯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뱀도 부러워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바람’입니다. 바람은 몸을 안 움직이고도 ‘휘익’하고 금세 가고자 하는 곳을 가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 바람은 ‘눈’을 정말로 부러워합니다. 눈은 보는 그 순간, 바로 그곳에 가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눈은 ‘마음’을 부러워한답니다. 마음은, 눈을 감아도,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부러움’이란 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러움의 대상’이 있는 한 결코 만족하거나 행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부러움의 대상’이 생기면 노력하게 되고 발전할 수는 있습니다만, 성취감으로 결국 다른 대상을 또 찾게 됩니다. 모두가 선망하는 ‘기’라는 동물처럼 다른 대상을 찾고 또 찾아야하는 유혹이라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고 마는 불행한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신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불행이 아닌 행복한 결과에 대한 해답이 정녕 신앙이란 말인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은, 그리고 그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찾은 후 다시 또 찾아야하는, 옮겨 다니는 대상들이 아니란 말인가. 분명코 아닙니다. 그 확실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앙은 찾는 것이 아니고, 또 한 가지는 신앙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찾으러 오는 것이며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도난이나 분실의 우려가 없어 오직 받은 사람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소유한 사람들 사이에는 부러워 탐내고, 배 아파 못 참는 ‘끼리끼리 문화’가 아닌, 나누고, 함께하고,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하는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며, 인간의 본질인 존엄성이 무엇인가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때부터 주 안에 생활이 시작되는 겁니다. 부러움의 대상이 확실히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해답이고 행복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모세의 말씀처럼 보는 대로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되는 것이 ‘행복’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당시에 유명한 디오게네스라는 현자를 찾아갑니다. 그는 남의 집 돌계단의 볕 잘 드는 입구 틈새에, 밑 없는 큰 물독을 눕혀 놓고 남루하기 이를 때 없이 살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무엇이든 소원을 말하라. 다 들어 주겠노라.” 이 절대 절명의 순간에, “폐하, 당신의 그림자를 치워 주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따듯한 햇볕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그를, 누구도 불행하다고 할 수 없고, 명예와 부를 한 몸에 다 소유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 채울 수 없는 이들을 행복하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이란, ‘당사자 스스로의 기준’에 있는 것이므로, 누구도 타자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특별한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당신의 것입니다.
 
은혜의 고향에 온 당신,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은혜의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 메이커여! 하나님이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소망인이여! 은혜로 당신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 까지 은혜로 약속한 모든 것을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 주의 은혜 안에 있는 우리 소망인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행복메이커로서 행복을 마음껏 기쁘게 누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주의 소원이 나의 소원, 주안의 행복메이커로 신나게 누리라.
 
소원
‘삶의 작은 일에도 주님을 알기 원하네. 행복, 그 좁은 길로 가길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길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가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 하듯이 살길, 또 그렇게 죽길 원하네. 삶의 한절이라도 그 분을 담길 원하네.
사랑, 그 높은 길로 가길 원하네.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길 원하네. 행복, 그 좁은 길로 신나게 누리며 가길 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