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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프리젠터는 지혜의 혀로 설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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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空 間), 시간(時 間), 인간(人 間)! 무엇보다 ‘간(間)’이 중요합니다. 금번 필리핀에서의 노회모임을 통하여,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며,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감당해야 할 ‘사명(使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평생의 일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신뢰 깊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사랑스럽게 하는 ‘화평의 일’입니다. 사탄으로 인해 깨진 하나님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회복을 위해 우리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증거 하는 대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진 사도처럼 우리도 주님을 믿고 사랑하게 함으로써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은혜의 복음증거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다가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여 설득하게 하는 일을 다 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할 것이라’(행20:24)
사명(使命)은 생명(生命)입니다.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라도, 세상 전체가 합세하여 위협하고 공격할 지라도, 나는 담대하고 의연하게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의 역사를 위한 일에만 전념하여 이루어 내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낼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밖의 어떤 다른 것에도 눈길을 두지 않고, 초지일관 그 목표와 목적을 향하여 매진할 것이고, 진리의 복음의 메시지만을 선포하되, 진실된 가슴으로 용감하고 지혜롭게 전할 것입니다.
‘하늘 영광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나라의 일을 ‘잘 할 수 있을 까’를 생각해 내야 합니다. 어떻게 ‘잘 말할 수 있을 까’를 찾아내야 합니다. ‘잘 말하는 것’과 ‘말 잘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궤휼을 말하느니라.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잠12:17-18). ‘혀’에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증삼에게 베를 잘 짜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증삼의 어머니가 어느 날, 베를 짜고 있는 데 이웃마을에 사는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소리쳤습니다. ‘증삼이 사람을 죽였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한 그 어머니는 조금도 놀래는 기색 없이 태연하게 그저 베를 계속 짜나갔습니다. 잠시 후, 옆집에 사는 사람이 허둥지둥 달려와 베를 짜고 있는 어머니에게 또 다시 말했습니다. ‘글쎄, 증삼이 사람을 죽였데요!’ 그러나 이번에도 그 어머니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저 평상시처럼 너무나 평온하게 한 올 한 올 베를 짜나갔습니다. ‘우리 아들은 내가 너무나 잘 알지. 그 아이는 절대 사람을 죽일 아이가 아니야! 증삼이가 사람을 죽일 리 없어!’ 아들을 확고하게 신뢰했던 어머니는 요동함이 없이 베짜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또 아들의 친구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습니다. ‘어머니! 시장 통에서 시비 끝에 증삼이가 사람을 죽였어요!’ 그 순간 이제까지 흔들림이 없었던 어머니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며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와는 달리 세 번째로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안절부절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급기야 어머니는 짜던 베를 팽개치고 ‘아이고 증삼아! 어찌 이런 일이’ 하고 울부짖으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쓰러질 듯 시장 통에 도착한 그 어머니는 사태를 파악하고 비로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자기 아들 증삼이가 아니라 증삼이와 동명이인인 동네 부랑아가 사람을 죽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소문을 믿지 마라!’ 결코, 허황된 소문, 루머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진실은 하나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을 믿어야 한다. 오직 하나 뿐인 진실을 믿어야 행복해 질 수 있다. 또 다른 깨달음은 ‘세 사람만 같은 말을 하면 없는 것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한목소리를 내며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양면적 가치를 지닌 ‘혀’로 떠도는 헛소문을 퍼트리거나 악독한 말을 하지 말고, 오직 진실만을 ‘잘 말해야 할 것’입니다.
증삼의 이야기로, ‘말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세치 혀를 어떻게 ‘잘 사용해야 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지체 중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안되니 ‘성령의 재갈’을 물려 꼭 필요한 ‘성령의 말’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학자의 혀, 지혜의 혀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말에도 요령이 생기면, 다툼이 해결된다(담언미중역가이해분:談言微中亦可以解紛)’. 중국의 문화유산 제 1호인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초나라 ‘장왕’이 애지중지하던 애마(愛馬)가 죽자, 슬픔에 잠겨 왕명을 내렸습니다. ‘말의 시체를 잘 모시고, 장례가 끝나기까지 향을 피우라. 목관을 만들어 안치하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 신하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말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다니... 대망신 거리인 이 일을 전전긍긍할 뿐,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왕의 심기를 건드려 해를 당할까봐 누구도 감히 나서서 진언(眞言)을 드리는 신하가 없었습니다. 이때 ‘우맹’이라는 지혜로운 변사가 왕궁에 찾아와 왕을 알현하기를 청합니다. ‘이놈이 또 이번에는 무슨 일로 나를 보자하는 것인가? 그래도 날 꼭 보고자 하니, 만나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알현이 허락된 우맹은 왕 앞에 나서자 넙죽 절을 하며 아뢰었습니다. ‘폐하, 목관이라뇨. 목관이 아니라 석관을 준비해 애마의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어허 이 놈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먼..’ 왕의 마음에 미소가 피어나는 순간, 이어서 우맹은 말을 이어갑니다. ‘국빈에 준하는 장례를 치르시어, 왕은 사람보다 말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왕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되셔야 할 것입니다.’ ‘허~어 참, 이놈 말하는 것 좀 보소.... 말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되, 그로인해 사람보다 말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왕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라니....’ 탁월한 용기와 지혜롭고 절묘한 착상을 지닌 우맹의 말에 왕은 밤새도록 고민하다 다음날 새벽녘에 왕명을 내립니다. ‘말의 고기는 삶아먹고, 뼈는 추려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도록 하라.’ ‘세상에는 수많은 도리가 있다. 문제해결의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말에도 요령이 생기면 세상의 다툼이 해결된다.’ 그렇습니다. 말에도 요령이 생기면 다툼이 해결됩니다. 우맹 같은 학자의 혀, 지혜의 혀로 잘 말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법입니다.
‘저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니 저 아낙 거인족은 우리의 밥이라!’(신14:9) 열명의 정탐꾼과 마음이 달랐고, 말이 달랐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지혜로운 학자의 혀로 잘 말했습니다.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맞는 것 같은데, 저 거인족을 보니 메뚜기 같은 우리는 이제 죽게 되었도다.’ 부정적인 마인드로 부정적이고 원망 섞인 절망의 말을 쏟아내었던 열 명의 정탐꾼은 사실 보도만을 하는 아나운서와 같은 자들로 논리와 이성만을 앞세운 채, 가슴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희망과 꿈이 없는, 그저 표면적인 신앙인들, 무늬만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동조하여 함께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며 함께 절망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뺀 60만은 모두 약속된 축복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저들을 물리치고 저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능히 들어가리라’ 확신했던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마음으로, 한목소리를 내어 같은 말을 했던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 출애굽시 599998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함께 그 영광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지혜의 혀로 약속의 땅을 프리젠테이션 했던 탁월한 ‘프리젠터’입니다.
‘어떻게 잘 말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말에 요령이 생기면 다툼과 문제가 해결됩니다. 말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말 한대로 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할 것이라.’(민14:28)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그대로, 우리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학자의 귀를 주시고, 학자의 혀를 주소서!’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Tongue of taught)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50:4)
‘말에 요령이 생기면, 지혜의 혀로 세상의 모든 다툼과 현상적이고 본질적인 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서 진리의 복음을 잘 말한 사도 바울은 성령의 ‘프리젠터’로서, ‘지혜의 혀’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설득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 본받을 만한 사명자입니다. ‘바울이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그들을 설득하더라...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프리젠테션하더라(행28:23-30). 약속의 성령 받은 우리 소망인도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한 사도 바울 같은 프리젠터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되어 상대의 마음을 얻어 움직여 함께 하늘의 천국잔치, 영생 의 프로젝트에 참여케 하는 축복을 나누어 줄 것입니다. 성령의 프리젠터는 ‘잘 말함으로써’ 영생을 위해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을 기필코 설득하는 사명을 다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일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프리젠터’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를 설득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마음을 움직여 그 일에 참여케 하는 프리젠터는 사실보도를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아나운서나 리포터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아나운서는 머리를 상대로,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만 프리젠터는 가슴을 상대로, 신념을 바탕으로, 지혜롭게 설득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성공신화의 주역이었던 ‘나승연’ 프리젠터!. 새로운 지평(New Horizen)’이란 명확한 주제로 청중의 입장에서 청중처럼 생각하며, 메시지를 전달한 그의 탁월한 프리젠테이션에 감동을 받습니다.: ‘인류사의 대축제,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변화의 특별한 힘, 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페스티벌,...’ 진심을 담아, 진실 되게 신념을 갖고 잘 말하여 그 때까지 부정적이었던 인식( 한국인은 무리지어 다님, 험담을 잘 함, 대화가 통하지 않음, 기계적 임, 시스템이 없음, 매너가 꽝, 김치만 먹고 냄새가 남....)을 불식하며 불리했던 판세를 뒤집고, IOC 위원들의 마음을 얻어, 올림픽 개최지로 ‘피~용창!’
대한민국의 대표로서 긍지를 지닌 탁월한 프리젠터 나승연씨의 프리젠테이션을 보며, 예수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우리 소망인들도 사명감을 불태워봅니다. 열정을 불사르며, 긍지를 지닌, 재미있는 이야기꾼인 성령의 프리젠터로서 천국잔치를 과천소망교회에 유치하는 쾌거를 이루며, 하나 되는 감격의 순간을 그려봅니다. 피~용창! 올림픽 잔치의 유치 성공, 과~천! 하나님 나라의 잔치 유치 성공! 생명살림 복합단지의 완성! 성령의 프리젠터는 ‘지혜의 혀’로 설득합니다. 피~용창! 과~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