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 H allelujah I mmanuel, 성탄(聖誕)! 주안에서 영광의 자유에 이르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속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요3:16)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허무한데 굴복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영광 할렐루야!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성경 속 613개의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누구나 죄인이 되는 법, 따라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너도 나도, 왕후장상(王侯將相)도 촌부(村夫)나 범부(凡夫)도, 빈자(貧者)나 부자(富者)나 남녀노소(男女老少) 모두 다 꼼짝 없이 ‘죄의 감옥’에 갇혀 죄 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불순종으로 타락한 우리 아담의 후손은 저주받아야 할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사망과 멸망을 받아야만 하는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셔서, 구원과 생명의 유일한 진리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의 때가 오기 전에는, 우리가 죄의 포로가 되어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갇혀있었습니다(갈3:23). 이제 하늘 거룩한 곳으로부터 보내신 거룩한 아들을 통하여 ‘저주의 사슬’을 끊으시고, 새로운 인생, 참된 삶의 길이 열렸습니다.
축(祝) 성탄(聖誕)! 하늘의 하나님이 이 세상의 우리에게 생명살림이라는 구원의 복을 베푸시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식을 찾아 영생(永生)복락(福樂)을 베풀어 주시려고 오시는 참사랑의 주님의 가슴은 얼마나 설레고 두근거리셨을까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시며, 주체하실 수가 없으셨을 겁니다. 아무도 경배하지 않던 유대 베들레헴의 짐승의 구유에서 탄생하신 하늘의 왕의 ‘거룩한 실체’를 느끼어 믿게 된 동방박사는 신성 인성을 지니신 대속주이자, 중보자이신 예수님, 역사상 최고의 가치를 지닌 구세주를 만나 뵈러 갈 때, 또한 얼마나 두근두근 설레고 행복했었겠습니까. 견딜 수 없이 미치도록 기뻐하며 찬양하지 않았겠습니까. ‘구유 안에 누이신 어린 아기 예수께, 우리들도 다함께 기쁜 찬송 부르자. 영~광을 높이계신 주께, 영~광을 높이계신 주님께. 저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보고 절하고, 그 보배합 다 열어서 황금, 유향, 몰약 세 가지 예물을 드렸네.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성탄의 은혜요 축복을 감사하며 찬송하며 기뻐합니다. 바야흐로 참 생명, 참 행복, 참 자유, 참 기쁨, 참 희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거룩하고 영원한 곳으로부터 이 지구촌 시간의 속된 곳에 오신 예수 메시아로 인하여 참 사람됨의 참된 삶의 가능성이 현실화 될 것입니다. Halleluah Immanuel, Hi 성탄! 삶속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Immanuel)’,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허무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죄악된 우리를 거룩한 인생, 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가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들을 통한 생명살림의 구원 역사가 오늘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마1:17-2:6).
하나님의 생명 살림의 구원 역사는 ‘직접경험’을 통하여 느끼는 것입니다. 이성적, 논리적으로 어떻게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거룩함의 실체’를 감성과 영성으로 느끼어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무제한의 은총 속에서, 우리 주 예수 메시아는 모든 인류를 위하여 오신 분이로되, 그를 영접하여 받아들이는 자, 곧 믿는 자에게만 ‘제한적 속죄’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보내신 아들 예수 메시아, 기독교의 입문인 동정녀 탄생,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등의 진리는 이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간접경험을 통하여 연구하여 ‘아는 대상’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간접경험으로 학술적 연구에 의하여 ‘아는 것’이 직접경험으로 느끼어 믿는 것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난 하나님을 알아, 난 예수님을 알아. 난 동정녀 탄생의 사건을 성경말씀을 읽고,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들어서 그 내용을 잘 알아’ 하는 ‘아는 것’과 ‘난 살아계신 주 하나님을 믿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고, 내 삶의 자리에서 오늘 임마누엘하신 주님을 느끼고 함께 하심을 믿어, 그 주님을 난 사랑해’ 하는 ‘믿음의 고백’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 때문에 모세율법을 철저히 암기해 성경의 지식이 풍부했고, 출애굽의 하나님을 절기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전통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너무나 잘 알았던 유대인들, 바리새인 율법 박사들이 ‘알기는 했으나’, 은혜를 느끼어 경험하지 못했기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여’ 십자가에 죽이게 된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란 ‘하나님, 임마누엘의 예수님 등..’, 거룩함의 실체를 직접경험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믿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일을 하는 독립적 주체를 말합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직접적인 경험 가운데 느끼고, 믿게 하는 역사를 이룹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컵에 있는 물, ‘따뜻하든’ ‘차든’, 어떻게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상태를 직접 만져봄으로써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직접경험으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느낌으로 믿게 된 것, 사랑하게 되는 것과 간접경험을 통하여 학술적으로 아는 것, 교리적으로 아는 것, 그저 전통적으로 사회 통념적으로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으로 형식적인 열매 없는 신앙인으로 족한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영생의 열매를 맺을 행복한 소망인 입니다. 우리 소망인은 일상의 삶속에서 ‘임마누엘’의 주님을 리얼하게 느끼며,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참된 신앙인은 압바스왕의 교훈처럼 임마누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합니다. ‘내가 주를 위해 죽으리라’하는 영웅적 희생이 아닌, 일상의 삶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자체가 근본적이며 놀라운 변화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임마누엘의 주님이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Hi 성탄! 임마누엘의 주안에서 영광의 자유에 이르라!
나눌수록 커지는 은혜와 사랑, 변장로님의 은혜로운 삶속의 간증을 나누어봅니다.
『 백혈병입니다. 만약 치료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두 달 안에 사망 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를 보기전과 의사로부터 안 좋은 소식을 들은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죽는 인생인데... 영원히 살 거라는 생각은 안 하면서 살았는데... 두 달 안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이렇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다니.... 그리고 0.001초 정도의 짧은 순간에 아주 큰 실망이 가슴 앞으로 다가와 등 뒤로 빠져 나간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동요나 슬픔은 없었다. 왜 나에게? 이렇게 빨리 죽음에 병이 찾아오다니...백혈병에 걸렸어! 지금 치료를 안 하면 두 달 안에 죽을 수도 있데...이 소식을 가족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가족이 얼마나 걱정할까?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며 얼마동안 치료해야 하며 치료를 잘하면 생존률은 얼마나 되는지 이런 생각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걱정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병을 알고 계시는지...하나님께 내가 크게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나님을 크게 실망 시켜 드린 일이 있었나?
우리가 산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죽어가고 있고 가까운 장래가 되 든 미래가 되 든, 개인적 종말이든 우주적 종말이든, 죽을 것인데, 그동안 죽음에 대해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한번은 다가오는 것이며 격어야 하는 것이기에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죽어가는 과정이 싫다. 내가 죽는다면 육신은 땅에 묻힐 테고, 영혼은 하나님께 가는데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내 아들아 수고했다. 세상에서의 너의 고생을 안다. 나를 믿으려고 내 편에 서려고 한 그 노력을 안다’ 하신다면 지금 죽는다 한들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런데 ‘난 너를 도무지 모르겠는데.....’ 하신다면....
무엇을 하여야 하나?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 하나님과 저는 어떤 사이입니까? 편한 관계 입니까? 사랑하는 사이입니까?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느냐 사느냐 문제보다 병을 어떻게 치료 하느냐 보다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일까?’ 그것이 더 궁금했다....!!!
제 목숨은 주님 것입니다. 그걸 잊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것을 오늘 가져 가신들 누가 하나님께 왜 그리하십니까? 물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저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며 토기장이와 토기의 관계란 걸 알았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고통을 주시던지 평안을 주시던지 살게 하시던지 죽게 하시던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이십니다. 어떤 결정을 하시던지 감사 할 것입니다.
택시는 벌써 양재 사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 가지로 언제나 차들로 도로를 채우고 있는데 저런 모습도 볼 수 없게 되겠다 생각하니 차가 막혀서 짜증이 나는 게 아니라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나간 날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멀리 있던 교회를 나가던 일, 학창시절 꿈에 부풀어 지내던 시간, 군대에서 배고파하며 힘들었던 때에도 취침 전에 그리고 기상해서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께 기도 드렸던 시간들, 마음이 따뜻한 여자와 결혼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나에 대한 배려, 나의 결혼을 위해 30분도 넘는 시간을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셨던 일.......등등. 그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았던 시간들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행복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당시엔 감사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엔 고마움을 잊어 버려서 감사 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한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게 해주시고, 소리를 듣게 해주시고 내 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게 해주셨는데,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감사하지 못했다. 이제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다고 하니 그런 것들을 누리며 살아오게 하신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감사 할 줄 몰랐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단 한 시간을 살아 숨 쉰다 해도 감사 하며 살아야겠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던 많은 시간 동안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