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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나그네 인생길! 참된 인연을 품격 높게 가꾸자. 누가복음 24:13-31, 2013.12.29 2013.12.29

감사^^* 2013. 12. 29. 14:56

2013.12.29, 주일

긍정의 나그네 인생길! 참된 인연을 품격 높게 가꾸자. 누가복음 24:13-31
누가복음 24:13~31    2013-12-29

 

‘인연 복(因緣 福)’이 가장 귀한 복입니다. 
우연이 아닌 인연을 잘 가꾸어, ‘만남의 은총’을 확장해 가야합니다. 이 세상 나그네 인생 길, 쉽게 잊혀 지거나 포기하는 ‘가벼운 인연’이 아니라, 가장 소중하고 미덥고 따뜻한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귀한 인연’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과거가 변하여 복 받을 수밖에 없는 새로운 신분으로 성화되는 구원의 은총의 역사 속에서, ‘모습을 달리하는 만남’의 ‘인연 복’을 품격 높게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그네 인생길에서 만남이라는 ‘참된 인연’을 통하여 사울이 바울로 바뀌는 복음의 능력이 지니는 성령의 역사가 연속적인 사건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가요?” 일생 함께 살아가는 인연 속에서, 아버지를 잃은 제레미와 그의 할아버지와의 대화입니다. 할아버지는 라코다 인디언으로서 정규 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는 시골농부일 뿐이며, 말을 키우기도 하고 사냥을 즐기며 목수일 등을 하는 분이였습니다. “인생이란 커다란 여행이란다.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우리에게 부닥친 여러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단다. 인생이란 양지를 걸을 때도 있고, 음지를 걸을 때도 있지. 넘어져 봐야 언제 일어서야 할지 알 수도 있고, 굶주려 보지 않으면 풍요로움에 감사할 줄 모른단다. 한 번씩 한순간씩 이겨 내다보면 강해진단다. 영웅들도 갈림길에서 갈등을 하지. 그러나 가던 길을 멈추는 일은 없단다.” 할아버지는 정말 지혜로운 분입니다. 어찌 보면 할아버지의 말처럼 인생의 여정이란 갈림길을 만나 머뭇거리기는 해도, 계속 가야만 하는 운명의 배낭을 짊어진 나그네 길인가 봅니다.
    

늘 다니던 길도 전혀 낯선 때가 있습니다. 처음 가는 길도 다녀본 길처럼 눈에 익은 듯 편안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겹게 길을 걷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정말 신중히 결정해야하는 예상치 못한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가 봅니다. 이 때 ‘어느 쪽으로 가야하나?..’하는 순간의 머뭇거림은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구도자들에게까지도 예외는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의 ‘일몰로 가는 여정(旅程)’을 시작하려 합니다.” 레이건 미국대통령의 이 같은 고별사에서, ‘인생의 길은 끝’이 있고, ‘인생은 나그네’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길가는 나그네에겐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물’이요, 또 한 가지는 ‘길동무’일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의 외면(外面)은 ‘물리적인 육체(肉體)’로 이루어져있고, 보이지 않는 내면(內面)은 ‘정신적인 영(靈)’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필요한 물에도 ‘육신이 마셔야 하는 물’과 ‘영혼이 마셔야 하는 생수’가 있어야 합니다. 길동무에도 ‘처지가 같고 소원하는 바가 비슷한 인간’과, 두 갈래 길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내면의 소리를 내어줄 ‘영혼의 친구’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전자의 ‘물리적인 물’이나 ‘길동무’는 구하거나 사귀면 될 것 같은데, 후자의 ‘마음이 마셔야 하는 생수’와 ‘영혼의 친구’는 구하거나 사귈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매입이 가능한 생수’는 아닐 것이고, ‘찾아 헤맨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도 아닐 것입니다. 그럼 ‘영혼의 길동무’는 어떻게 사귀고 ‘생수’는 어떻게 구하여 마실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우연히 물 길러 갔다가 뜻밖에’, 아니면 ‘타는 듯한 불길에 불붙지 않는 마른떨기 나무가 신기해서 가까이 가게 되므로’, 혹은 ‘가까운 친구의 권유로’, ‘내면의 울림과 꿈길의 안내를 받아서’, ‘거룩한 음성을 듣고’ 등등...  “ 어떤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분이 스스로 나타내셔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그니라” 하시지 않으셨다면, 그 여인이 알아 볼 도리가 없었을 것이며, 영적인 혜안을 가졌다고는 더더욱 상상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던 제자들에게도 친히 성경을 풀어 해석해 주시며, 마음 뜨겁게 감동적으로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주님인 줄 알아볼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이제 모든 것이 다 끝장났다고 생각한 제자들이 슬픔과 절망가운데 낙심하여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의 주님이 스스로 나타나셔서, 알게 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눅24:13-31). 
    

끝없는 좌절과 비탄속 엠마오 도상에서의 제자들과 ‘그분과의 은총의 만남’이나, 세파에 시달리고 순수가 짓밟히는 삶의 현장에서 좌표를 잃어버린 배처럼 목적 없이 이끌려 가던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그분과의 만남’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충분한 설명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성경에 두 가지의 실례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정(豫定)’에 관한 말씀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선과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롬 9장 11~13). 다른 한 가지는 “성령의 하시는 일들에 대한 믿음”에 관한 말씀인데, 성경에는 선물(膳物)로 표현하신 것입니다(요4:10, 마15: 21~28).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을 통한 귀한 인연, 엠마오 도상에서의 만남을 통한 귀한 인연은 ‘선물에 해당 되는 것’ 같습니다. 피부 색깔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남녀노소나 신분의 구별 없이, ‘성령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일을 믿으면’ 그것으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두 갈래 길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나그네 된 우리, 이 순간이야말로 하늘을 향해 더욱더 소리 높여 외쳐야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제가 믿사오니, 인도(引導)하시옵소서!” 그렇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해답입니다.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바 없기 때문 입니다. 길동무와 함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선물을 받으신 당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지만, 이 성경은 내게 대하여 증거한 것이니라(요5:39).’ 구원의 프로젝트를 맡아 성령과 함께 성취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증거하고 있는 ‘성경은 긍정자체’입니다. 소망인의 교리인 성경을 토대로 ‘지식의 정립!’, ‘신앙의 주관!’, ‘성도의 권세!’를 갖춤으로, 긍정의 인생 나그네 길의 끝에서 언약된 영광의 실상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긍정의 인생 여정에서, 두 갈래 길에서 머뭇거림...가운데, 긍정의 믿음으로 의연하게 결정(決定)하고 결행(決行)해 가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영원한 길동무’가 동행(同行)하며,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며 어찌 해야 할 지 모를 때마다, 계산적인 머리의 이해타산적인 이익을 따르지 않고, ‘내면(內面)의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따라 갈 바를 알려주실 것입니다. 언약 안에서 ‘사랑의 들끓는 가슴으로!’ 옳은 결정을 행할 수 있게 합니다. ‘물리적(物理的)인 육체(肉體)’로 되어있는 인간의 외형과 함께, 보이지 않는 ‘정신적(精神的)인 영(靈)’으로 되어있는, 사람의 내면의 ‘들끓는 가슴으로!’ 결행하는 것은 결과가 좋습니다.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줌으로 행동하는 선한 도구!’로서 이끌려지는 긍정의 나그네 인생길은 선한 결실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선한 도구인 제가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을 사랑하고 믿으니.......!’, 주의 성령의 나타내심을 믿으니, 선물로 주신 내적 영혼의 길동무와 영생토록 솟아나는 생수와 함께 나그네 본향 길을 걸어가며 성장하고 성숙해 갑니다. 내면의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여 이끄시고, 뜨거운 가슴으로 인도(引導)!하시는 것을 확신합니다! 갈림길에서, 이익을 따라가는 머리가 아닌, 내면의 양심의 소리로 정당(正堂)한 옳은 것을 따라가는 ‘가슴을 따라서!’ 결행하면 결과가 좋을 것임을 믿습니다.  
    

‘제 탓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며, 다 내려놓고, 비우고, 힘빼고....‘십자가 긍정!’으로 부정을 극복합니다. 모습을 달리하는 만남이라는 귀한 인연을 품격 높게 가꾸어 갑시다. 웅크려 기도하는 자세의 수목경계선 상의 생명체처럼, ‘들끓는 사랑의 가슴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2014 새해!, 참 아름다운 열매를 맺혀갈 것입니다. 새 영의 새 마음, 새로운 은총과 축복의 행복 공동체! ‘열정의 가슴으로’ 언약의 꿈을 이루어 갑니다. 희망의 꿈 가득한 2014년 말의 해!, 영적 봄비의 서곡이 울려 퍼지는 복된 나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중한 마음의 성전에 ‘내려놓을 것...죄짐, 미움, 원한, 상처..’등은 내려놓고, ‘안고 가야할 것...사랑, 감사, 희생, 생명..’등은 끌어안고, 뜨거운 가슴으로 꿈꾸시는 일들을 이루는 행복한 갑오년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