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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패밀리가 감동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리라! [ 마태복음 10:37-11:1 ]

감사^^* 2014. 1. 12. 14:59

2014.01.12, 주일

십자가 패밀리가 감동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리라! [ 마태복음 10:37-11:1 ]
마태복음 10:37~42    2014-01-1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욜2:18)’ 중심이 뜨거운... 감동의 축복!, 주님을 감동시키는 자, 그리고 주의 사람을 감동시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감동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소망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14:28) 부정적 말을 했던 10명의 정탐꾼은 부정적 결과가 있었고, 긍정의 말을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의 결과가 있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잘 말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거꾸로 난 용의 비늘’, ‘건드리면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는 고사성어와 같이 ‘역린(逆鱗)’를 건드리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나쁜 말’, ‘싸가지 없는 말’은 죽어도 하지 말며, 해야 할 ‘좋은 말’, ‘감동의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야 할 것입니다. 보라! 주님을 감동시키는 말이 우리의 가슴 또한 뜨겁게 감동시켜, 그 한마디 말이 사람의 생명을 살려낼 것이니..,,‘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저 아낙자손은 우리의 밥이로다!’..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통일은 대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4년, 새해 중점목표는 ‘경제 활성화’라는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일!, 천국!, 희년!은 대박입니다. 새해, 과천소망교회의 중점목표는 주님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감동의 역사인, ‘전도(傳道) 활성화’라는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생명을 살리는 ‘생명살림의 역사’: ‘전도!’ : 감동의 대역사!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햄릿의 저 유명한 대사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상을 살아가는 치열한 인생의 근원적 질문, 치매 걸린 부모를 죽일 수밖에 없는 혼돈과 절망의 집단 우울증의 시대에 우리 모두 앞에 놓여진 본질적 문제입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살기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적 생명의 진리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판정하는 ‘종교적 신념’은 참된 인생, 참된 사회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십자가 진리의 종교인 그리스도교, ‘초대교회의 그리스도교 리더’는 무언가를 결행할 때, 철저하게 ‘원칙’을 따랐습니다. 즉 ‘대원칙’과 ‘소원칙’을 따라 판정하고 결행했습니다. ‘대원칙’이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정하는 주권이 ‘우리 편’에 있지 않고 ‘하나님 편’에 있다는 진리의 절대원칙입니다. 유교를 비롯한 동양철학의 ‘도(道)’는 한정된 시대, 당시의 상황에서만 옳은 ‘상대성’을 지닙니다. 동양인들의 신념인 동양철학의 도(道)는 ‘객관적’이며 ‘상대적’입니다. 그 시대 ‘사회적 통념(通念)’의 경계선을 넘을 수 없는 ‘동양철학의 도’는 시, 공간을 초월하여 그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와는 질이 다른 것입니다. 실례로, 조선 500년 동안 ‘사회적 통념’으로 통용되었던 ‘삼강오륜(三綱五倫)’, 특히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오늘날 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악(惡)의 규범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의 도’는 시대,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옳은 ‘절대성’을 지닙니다.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대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의 판정이 절대적으로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리더인 ‘베드로’의 말처럼 우리는 마땅히 ‘사람’에게가 아닌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대원칙’과 더불어 ‘소원칙’이란 결정해야 하는 어떤 일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일이 주의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공익을 위한 일인가? 아니면 해롭게 하는 일인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리더는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말씀’을 통해 신속히 판정하며, 우리 편에서 ‘주의 공동체의 공익’을 위한 일인가를 신중히 판단해 결행합니다. 그리스도교 리더는 ‘십자가의 도’를 따라서 ‘그리스도’처럼 다 함께 잘 사는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능력 있게 이끌어 갑니다. 옳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고 히브리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 전도되어 영생받기로 작정된 사람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000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약속의 자녀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를 죽이신 위대한 아버지, 뜻대로 영생의 새 길을 여신, 하나님 아버지를 제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원천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십자가 진리를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이 고귀한 사랑의 질서 안에서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한사코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비나 어미나 형제자매,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며, 자기 십자가를 사랑하여, 자기는 부정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 하느니라!’(마10:38-11:1) 
    

그렇습니다. ‘옳고 그름, 참과 거짓...’ 경계선을 정하는 주권은 우리 쪽에 있지 않고, 주 하나님 쪽에 있다는 대원칙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와 함께 소원칙에 따라서, 주의 공동체의 공익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살 것이라는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아 결행해야 합니다. 새해 새 결심! 단호하게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된 교회와 양들을 위해 죽겠습니다!’ 는 사랑과 희생은 내려놓지 말고, 끌어안고 가야할 것입니다. 십자가 패밀리는 ‘대신 죽어야 사는’ 역설적 생명의 진리를 가슴에 새겨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지닌 감동의 사람들입니다. 
    

역사의 상처 난 교훈, 병자호란. 1637년 1월30일. 추위와 굶주림 끝에, 지금의 송파인 삼전도에서, 조선의 인조 왕이, 14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 청나라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머리를 땅바닥에 9번이나 대어, 이마에 피를 흘리며 항복한 역사상 가장 굴욕적 사건 중에 하나인 삼전도 굴욕사건입니다. 인조는 척화파(斥和派), 주화파(主和派)의 주장사이에서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다시 말하자면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아니면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를 가슴 저리게 아파하며 고뇌 하면서, 경계선 상에서 둘 다를 수용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후일에, 김상헌을 축으로 ‘척화파(斥和派)’는 조선의 ‘정신’을 지켜냈고, 최명길을 축으로 ‘주화파(主和派)’는 조선의 ‘육체’를 지켜냈다고 역사학자들은 평가합니다.
    

이러한 병자호란, 청나라에 항복한 후폭풍으로, 조선 여인들이 60만이 잡혀가 노비로 팔려갔습니다. 그들 중 속전 값을 지불하고, 다시 돌아온 여인들을 가리켜 ‘환향녀’, 즉 ‘화냥년’으로 불렸습니다. 그들의 비극은 고향으로 돌아와, 삼강오륜의 철저한 유교사회 속, 멸시당하고 질시하고 손가락질 당하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가며, 정죄의 편견에 갇힌 절망의 불쌍한 인생이 됨으로...자결하는 자가 속출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그저 어쩔 수 없이 사는 자들을 위해 인조 조정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냈습니다.
    

‘모일 모시 세검정, 연신내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의 모든 죄와 잘못을 사하겠다!’ 광화문 사거리에 공고를 내걸었습니다. 천재일우의 생명의 기회! 그렇지만, 누가 세검정으로 갈 수 있었겠습니까...가서 몸을 씻으면 스스로 부정한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꼴이 될 테니...그러나 그날, 아침 일찍부터 한성의 아낙네들이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손에 손을 잡고 세검정으로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어린아이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울음을 삼키며, 복받치는 설움을 밟고서, 연신내(女新川)에서 여인들은 깊게 상처 난 서로의 몸을 닦아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날 이후, 세검정 연신내에서 몸을 씻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여인들, 더 이상 화냥년이란 손가락질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깨끗함을 입고 새 삶을 살아가게 된 우리, 마음 다해 살아계신 주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 그 은혜...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살리는 십자가 사랑의 결단과 결행을 감행하는 십자가 패밀리로서 주님과 사람들을 가슴 뜨겁게 감동시키는 새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둘러싼 돌을 든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감동적 생명의 한마디 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긍정만이 부정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정을 인정하고, 부정에 긍정을 이식합니다. 돌에 맞아죽어야 할 당사자들과 주변 사람 모두를 살려냅니다. 주의 십자가의 지혜요, 십자가의 방법입니다. ‘대신 죽음 으로써 산다는 역설적 생명의 진리!’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생 명을 살리는 ‘전도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새해, 통일 대박을 꿈꾸며, 희년 대박, 천국 대박을 꿈꾸며, 경제의 활성화를 기치로 내세웠던 대한민국처럼, ‘말씀하시는 과천소망교회’는 ‘153 공동체 성화운동, 그리스도화 운동’을 통하여 ‘전도의 활성화’를 기치로, 감동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패밀리여! ‘십자가의 정신(精神)으로!’ 감동(感動)의 위대한 역사를 이룹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