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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필연(必然)! 두 증인의 역사가 하늘 꿈을 결실한다. [창세기 38:24-39:5] 2013.12.15

감사^^* 2013. 12. 15. 14:52

2013.12.15 주일

행복한 필연(必然)! 두 증인의 역사가 하늘 꿈을 결실한다. [창세기 38:24-39:5]
창세기 38:24~30    2013-12-15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것’, ‘필연(必然)’의 역사!, 언약대로 이루시는 ‘하늘의 필연’, 마음가짐대로 이루시는 ‘인생의 필연’을 인정하는 삶은 형통합니다. 필연코, 아버지의 뜻하신 꿈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필연적 예정의 섭리를 따라서 하늘(天) 땅(地) 사람(人) 간, 만사가 인과(因果)관계로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 될 수밖에 없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엘리야도, 세례 요한도, 귀신의 왕도 아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베드로야, 이제 땅에서 매고 풀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릴 것이라. 필연코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마16:15-19)
    
교회를 교회될 수밖에 없도록, 반석위에 ‘교회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는 그리스도(救世主)’라는 신앙의 기초석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기초석이 무너지면 사십년 신앙의 공든 탑도 순식간에 무너져 폐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진리의 성령’을 기둥으로 세워진 ‘말씀하시는 교회’는 ‘그리 될 수밖에 없도록’ 모든 것이 합해져 ‘결과가 좋을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 법’, 좋은 열매로 정체성의 참된 가치를 입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1.5.3 성화(그리스도화)운동’을 실천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열매를 맺음으로써 참된 신앙의 정체성을 영광스럽게 드러낼 것입니다.   
    
새는 아무리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에게는 날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생적 신비를 지닌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에게는, 하늘을 향해 날 수 있는 날개가 있습니다. 하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두 날개로 비상하는 독수리 같은 자는,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와 함께 뱀의 머리를 밟고, 최후 영광의 승리를 하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유대지파의 사자가 하늘 꿈을 이루며 형제의 찬송이 됩니다. 언약대로 하늘의 필연을 이 땅에서 이룰 하나님의 사람! ‘독수리 같고’, ‘사자 같은’ 꿈의 사람, ‘요셉들’이 하늘 꿈을 이 땅에서 실제로 이루어 갑니다. 
    
필연적 섭리를 따라, 하늘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미리 정한 자, 예정된 그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로운 자들을 성화시켜 영광스럽게 만들어 가십니다. 필연적 ‘예정의 섭리’는 ‘운명론’이나 ‘숙명론’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전자는 결과가 좋아지도록, 꿈이 이루어지도록, ‘바뀔 수 있다’는 것이고, 후자는 ‘바뀔 수 없다’는 것으로서 운명에 맡겨 팔자대로, 꿈 없이 그저 무의미하게,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정론자는 행복한 필연의 역사가 성취되도록 열정적, 긍정의 마인드로,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증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늘에서 증인 하나, 땅에서 증인 하나, 이 둘이 합하여 진리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과 진리의 성령’, ‘진리의 성령과 우리’.., 두 증인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옳습니다. 두 증인이 바로 두 날개임을 깨닫습니다. 두 증인은 두 날개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가장 강한 하늘의 사람다운 마음가짐으로, 하늘의 꿈을 이룹니다. 저마다 다른 마음가짐대로 ‘그리 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석공들이 분주하게 돌을 다듬고 있는 현장에 유난히 눈에 뛰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석공들과는 달리 어찌나 몸놀림이 빠르고 유연한지 일하는 모습만으로도 구경거리가 될 만합니다. 여행객인 듯한 한 젊은이가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세 사람의 석공들은 자기들 또래의 젊은이의 질문을 듣고도 일손을 놓지 않은 채, 그중의 한사람이 귀찮은 듯 대답합니다. “지금 겨우 일당 3리라를 받기위해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또 한사람의 석공은 이마에 땀을 훔치며 대답합니다. “보시다시피 돌을 쌓고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잘 다듬은 돌들을 튼튼하게 쌓는 것이지요.” 나머지 한사람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으나, 제가 다듬는 이 돌들이 하나하나 모여, 머지않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당이 이 마을에 생긴다는 것 아닙니까.” 한낱 석공이 마치 건축주라도 되는 듯이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젊은이는 같은 질문에 대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너무나 다른 점을 깊이 생각해 봅니다.
    
그리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현장을 다시 찾게 된 그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돌아보며, 줄 곳 이마의 땀을 닦으며 돌을 다듬던 세 사람의 석공들이 눈에 밟힙니다. 수소문 끝에 그들에 관한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하루 일당에 불만을 품은 채 마지못해 일하던 석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 다듬는 일을 그만두고 떠돌다 행방을 감춘 지 오래되고, 또 한사람의 석공은 솜씨 좋고 수완이 있는 성실한 석공이 되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마지막 한사람의 석공은 훌륭한 건축가로 성공해 그리 멀지않은 도시에서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교회당을 건축하는 중에 있다고 합니다. “이 돌들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교회당이 이 마을에 생긴다는 것 아닙니까?하며 의욕에 찬 그의 일하는 모습과 마음가짐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 마지막 석공과도 같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리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역사를 가슴에 다시 새겨봅니다. 하나님의 필연적 예정의 섭리(攝理)를 따라, 순리(順理)의 삶을 살아가는 요셉은 하늘의 꿈을 이룹니다. 꿈꾸는 자, 요셉은 하늘 꿈을 믿고 인생의 꿈을 사랑하는 두 증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팔려간 것,...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것....모두 필연적 예정의 섭리였습니다. 하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하늘의 필연!’ 절대 절망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필연적 섭리로 받아들이고 순리를 따라, 그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한 ‘인생의 필연!’
    
요셉은 세 번째 석공의 마음가짐으로 빗자루질을 하는 일부터, 곡식을 나눠주며, 급기야 창고키를 관리할 때에도, 하늘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꿈의 증인으로서 두 증인의 삶을 성실히 살아갔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삯 이상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또 한번의 회복하기 힘든 위기의 상황, 모함으로 감옥에 갇혀서도 천년만년 그곳에 살 것처럼 최선을 다해 줄기차게 살아갔고, 드디어 바로의 꿈을 해석함으로 실제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노예가 애굽의 실권자인 총리가 되어, 그 앞에 꿈대로 형들이 무릎을 조아려 절을 하게 되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리 될 수밖에 없는 마음가짐을 지닌 ‘요셉의 꿈’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늘의 꿈’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 속 ‘필연의 역사’가 성취되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이었더라면...’이란 없습니다. 역사에는 오직 필연만 있을 뿐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삼천원에 팔리는 것, 머리털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 속, 필연의 역사입니다. 요셉의 총리의 꿈을 이루듯, 그리스도와 함께 1000년 동안 왕노릇하는 유다지파의 사자, 그리스도의 사람의 ‘왕의 꿈’ 역시 필연코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리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생마사(牛生馬死)의 필연의 지혜를 터득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아주 커다   란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던져 넣으면 둘 다 헤엄쳐 뭍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말이 훨씬 수영을 잘해서 소보다 두 배 속도로 빨리 헤엄쳐 나옵니다. 그러나 장마   기에 큰물이 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갑자기 몰아닥친 홍수로 강가의 덤프트럭   이 물살에 쓸려가는 그런 큰물에 소와 말을 동시에 던져보면 소는 살아나오는 데   말은 익사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말은 자신이 헤엄을 잘 치는데 강한   물살이 자신을 떠미니까 그 물살을 이기려고 물을 거슬러 안간힘을 쏟으며 헤엄쳐   올라갑니다. 1미터 전진, 물살에 밀려 1미터 후퇴를 반복하다가 한 20분 정도 헤엄   치면 제 자리에 맴돌다가 나중에 지쳐서 물을 마시고 익사해 버립니다. 소는 절대   로 물살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같이 떠내려 갑   니다. 어어~ 저러다가 죽겠다 싶지만, 물살을 따라 10m쯤 떠내려가며 1m쯤 강가   로, 또 10m쯤 떠내려가다가 1m 쯤 강가 쪽으로 그렇게 2-3km 떠내려가다가 어느새  강가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고, 엉금엉금 걸어 나와 산다고 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헤엄을 두배 잘 치는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 힘이 빠져 익사하고, 헤엄에 둔한 소는 물살에 편승해서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집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우생마사!, 소는 살고 말은 죽습니다. 소의 지혜를 배워야 삽니다.
    
흐름을 거스르면 안됩니다. 하늘의 필연적 섭리를 거스르지 말고, 하늘의 도리인 순리를 따라 살아가되, 인생의 필연적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의 정체성은 그 열매로만 입증됩니다. ‘하늘의 필연’과 ‘인생의 필연’, ‘하늘의 꿈’과 ‘인생의 꿈’, ‘하늘의 증인’과 ‘땅의 증인’, 둘이 합하여 진리의 역사를 이루어 갑니다. 두 증인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하늘 섭리에 순응하며,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요셉처럼, 우리 소망인의 꿈을 통하여 하늘 꿈이 이 땅에 성취될 것입니다. 행복한 필연! 두 증인의 역사가 하늘 꿈을 결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