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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 곁에 살아계신 하나님! 환란 후에 생기의 역사가 있다.2014-03-30

감사^^* 2014. 6. 26. 16:05

7000 곁에 살아계신 하나님! 환란 후에 생기의 역사가 있다. 열왕기상 19:1-18
열왕기상 19:1~18    2014-03-30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지극히 작은 씨 하나가 위대한 결실을 맺는 법입니다. 모든 일을 마음의 원대로 결정하시는 이의 깊은 뜻을 따라, 순식간에 불러 가시는 하늘 선한 도구의 고귀한 인생의 끄트머리를 바라보면서, ‘삶과 죽음의 차이’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 이기는 자가 되어 마지막까지 주의 일에 동참하며, 영광을 돌린 그 참된 소망인은 영원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종이 한 장처럼 미세한 차이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영생과 영벌,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는 것도 실로 미세한 차이로부터 결과 되기 때문입니다....850:1,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 믿음의 고가 하늘에 닿은 담대한 종 엘리야! 기세등등했던 용맹스런 하나님의 종이... 이세벨이 목숨을 노리고 보낸 자객들로 인해, 도망자가 되어 하루 만에 목숨을 거둬가 달라고 구하는 환란 가운데, 한순간,    극한 절망 속 무력한 종으로 전락됩니다. 그러나 보냄 받은 천사로부터 보살핌   을 받고 떡과 물을 공급받음으로써, 다시 한 순간, 새 힘, 새 능력을 부여받아   사명의 길을 힘차게 내딛게 됩니다(왕상19:1-10).

종이 한 장 차이! 단 한순간 에 영원이 결정됩니다. 미세한 차이로부터, 사소한 것에서부터, 실로 엄청난 결 과가 초래됩니다. 한순간,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마음먹느냐’에 따라 위대한 결과가 초래되는 법입니다.

한순간, 미세한 생각의 차이, 마음먹기 나름대로 일이 진행되어 결과 됩니다. 마음을 다해 온전히 말씀을 지켜 사는 일은 쉽지 않으나, 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은 것입니다. 이 일은 하늘의 별을 따며 바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이 멀리 있는, 별천지처럼 도달할 수 없고 해낼 수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지키어 위대한 결실을 이루는 것은 간발의 생각의 차이, 한순간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곁에 계신 주님과 함께 하면 무슨 일이든 능히 할 수 있고, 주님과 함께 하면 어떤 사명이든 할 수 있게 됩니다. God plus We can!     

오미자 씨가 뿌려지면 오미자 밭, 더덕의 씨가 뿌려지면 더덕 밭, 산삼의 씨가 뿌려지면 산삼 밭이 됩니다. 어떤 씨가 뿌려지는 가에 따라 그 밭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유다의 집에 짐승의 씨와 사람의 씨를 뿌리리라...’ 산삼의 씨가 뿌려진 밭에서 산삼이 결실되듯이 영생의 씨가 뿌려진 마음 밭에서 좋은 마음으로 잘 가꾸면 위대한 영생의 열매가 결실될 것입니다. 영생받기로 작정된 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 의 마음 밭에 뿌려진 진리 복음의 좋은 씨가 진리 복음의 좋은 열매로 결실됩니다. 영광의 승리의 결실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 환란의 터널을 지난 후, 생기의 역사가 있는 법입니다. 생기를 받아 영원한 영광의 큰 군대로 일어설 것입니다.     

때를 따른 역사. 때가 되기 전까지는 기다리며 준비해야 합니다. ‘환란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생각의 변화’를 체득(體得)하고, 비로써 ‘생각의 차원’이 ‘하늘의 차원’으로 비상합니다. 생각이 고양(高揚)된 사람에게 생기가 들어가야 사람을 살립니다.     

그렇습니다. 환란의 터널을 지난 후, 생기의 역사가 있습니다. 가슴 뛰는 일입니다. 죽은 것 같으나, 불씨가 살아있는 우리에게 벌떡 일어나게 하는 생기란 무엇입니까? 생기란 말없이, 마음으로 전달되는 소리입니다. 곁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여 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19:2-4) 이 신기한 신령의 역사, 마음으로 전달(傳達)되는 소리 에너지, 생기! ‘마지막 천사의 소리 내는 날,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한 복음의 말씀과 같이 다 이루리라... 불가불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15:51-58)     

엘리야의 증언처럼 하나님이, 바람, 지진, 불 가운데 있지 아니하시고,...세미한 소리가운데 계십니다.(왕상19:11-18)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내시는 천천만만의 영들과 천사들, 진리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환란의 터널과 고난의 감옥 속에서도 참된 기쁨과 행복과 자유와 감사와 사랑이 있습니다. 곁에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참된 환희와 희열에 감격하며 환란을 잘 극복한 후, 생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시는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가운데, ‘사울아! 사울아!’..... 하는 세미한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같이 갔던 자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오직 사울만 들어 바울로 변화되었던, 바로 그 마음으로 전달되는 세미한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의 고뇌에 찬 절규, ‘차라리 죽여주시옵소서..’ 죽을 것 같은 환란의 절대 성숙의 시간, 생각의 변화를 체득함으로써 생각의 높이가 하늘의 차원으로 비상하게 되는 새사람에게만 생기가 임하여 생명살림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 생기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두 증인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로 하시는 모든 일은 약속의 자녀들을 살리시고 복주시기 위해 끊임없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두 증인의 역사는 쓰러져 폐기되거나 중단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담긴 참된 말씀을 해석하면서, 미세한 차이로 영원한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컨대, 모든 지식과 지혜를 뜻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은 것이 죄가 아닙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이 주신 왕의 사명을 잘 감당키 위해 그토록 필요해 간구했던 지혜를 얻고자 한 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먹지 말라할 때, 아직 설익은 그 과실을 먹은 것이 죄였다는 진실, 그 미세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차이를 분별하여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 참된 뜻을 깨달아 믿고 따르는 것이 영생의 관건인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네 소유를 다 팔아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부자 청년은 주님이 말씀하신 참 뜻을 영적인 감각을 일깨워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그만 표면적으로만 그 말뜻을 이해함으로 그 본의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그만, 그 사이 말씀의 미세한 차이로 인해 넘어져 시험에 빠져서 주님을 떠나버리고 맙니다. 극히 미세해 보이나, 성경해석의 오류를 바로 잡고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야 삽니다. 옳습니다. 살아계셔서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올바로 믿고, 하시는 말씀을 올바로 깨달아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은 언제나 현재적으로 역사하시며, 진리의 성령은 오늘도 하나님의 증인들을 통하여 참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아담과 하와를 교묘하게 미세한 차이로 꼬여 유혹해 타락하게 했던 뱀 속에 역사했던 거짓의 영이 우리 주변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거짓의 영이 들어 썼던 사람들, 가롯유다는 사라졌지만 그 속에서 역사했던 사특한 영은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음을 직시하고 간파해야 합니다. 그 태초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그 거룩한 전쟁의 승리자는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전쟁사라 할 수 있는 인류사속,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을 밟고 승리하였다’는 원복음의 증언은 오늘도 참된 증인을 통하여 증거되고 있습니다.

두 증인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증인 하나, 땅에서 증인 하나가 합하여 진리의 두 증인의 역사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참된 증인 예수,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는 또 하나의 증인 진리의 성령, 이 둘이 곧 두증인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적, 평면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서는 안되며, 길이와 넓이와 높이 즉 장,광,고 입체적으로 깨달아야 옳습니다. 하신 말씀은 믿고, 하시는 말씀은 따라가며, 하실 말씀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보내신 자 모세, 두증인 즉 보내신 이와 보냄 받은 이가 함께 이루시는 진리의 역사입니다. 홀로는 안됩니다. 함께 해야, 곁에 계셔서 도와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종이 한 장의 ‘미세한 차이’로, 생(生)과 사(死), 영생(永生)과 영벌(永罰)이 결정될 것입니다. ‘세미한 소리’가 마음으로 전달되어 생기의 역사를 이루며, 부활의 영광을 누릴 7000이 남아있습니다. ‘흰 옷 입은 이들이 누구냐...이들은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리라...’(계:14-18)     

우리가 이제 행복 플러스 잔치를 통해 찾아야 할 사람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이 있습니다. 7000 곁에 살아계신 하나님! 환란 후, 생기의 역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