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이 곧 인격이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건강과 인격이 좌우됩니다. 중식은 '불 맛', 일식은 '칼 맛', 양식은 '소스 맛', 한식은 '손 맛'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만나는.... '무슨 맛'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던 그 만나...하나님의 사람들이 먹어야 하는 그런 만나는.......무슨 맛일까요?
신비(神秘)한 식재(食材)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 맛이 '신령(神靈)한 맛'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만나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것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비한 식재로 만든 신령한 만나는 잡식성이 아닌 양들이 먹어야 할 꼴입니다. 목자의 음성 즉, 신령한 만나를 소원하는 7,000이 준비되어 있음을 명심하고 우리 함께 힘을 내야 합니다. 파이팅!, 파이팅!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능과 힘으로 이루지 않고, 오직 주의 신과 성령으로 이루시는 신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함이 없는 교회는 교회일 수 없고, 신령함이 없는 신앙은 신앙일 수 없다 할 것입니다. 창립 48주년을 맞는, '말씀하시는 교회', 진리의 영으로 충만한 '신령과 진리의 언약교회'는 그리스도의 방주로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생명살림의 역사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참 생명이요, 참 희망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특별한 목적으로 탄생했습니다. 흥청대며 노는 '유람선', 장사하는 '상선', 싸움만 하는 '전함'과는 달리, 노아의 방주는 생명을 살리는 '구조선'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크고 정교한 배들 가운데 노아의 방주만 40일 대홍수에 침몰하지 않고 그 안에 태운 모든 것들을 살려냈습니다. 노아의 항해술이 대단해서가 아니며, 방주의 재질이 특별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운, 신령의 기운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은혜와 진리되신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인 언약 교회는 온 세상에 주의 영광을 드러내며 생명살림의 역사를 이룹니다.
이같은 주님의 몸된 성전, 생명살림의 교회는 '이 전의 나중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 모든 것이 진동될 때, 진동치 않고 신령의 기운 충만하여 진실한 사랑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운, 신령의 기운이 더해지면 질수록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더해지는 것은 지당한 섭리일 것입니다. 신령한 '사랑의 눈'으로 새 출발하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야 합니다. 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성경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며, 새로운 세계가 출발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네 형제의 눈에 티를 보지 말고, 네 눈에 있는 들보를 깨달으라..'(마7:1-5)는 말씀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는 식으로 일반적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새로운 해석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들보란 대들보를 가리키는데, 집의 구조상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들보는 지붕위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일을 합니다. 천정을 지지하고 있는 대들보가 약하면 지붕위에 눈이 쌓이거나 할 때, 무게를 감당 못하고 지붕이 무너져 내립니다. 이 대들보가 잘못되면 모 리조트에서 최근 한 대학교 신입생 OT 때,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천정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참사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 대들보와 같이 소중한 것이, 남이 볼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티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씀의 새로운 의미는 내 눈에 이렇게 소중한 대들보처럼, 상대에게 대들보처럼 소중한 것을 티끌처럼 하찮은 것으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눈에는 그것이 티끌처럼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상대에게 목숨만큼 소중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라는 뜻 깊은 가르침입니다.
쓰나미로 재해를 당한 일본의 한 노인이 쓰레기 더미에서 몇 달을 걸려 찢어진 가족사진 한 장을 찾아냈습니다. 남이 볼 때에는, 티끌같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그 가족사진 한 장이 그 노인에게는 집의 대들보 같은 소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보잘 것 없는 것이 그 노인에게는 희망의 메신저가 되어 죽음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고 살아가도록 버텨주는 대들보 같은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눈에는 티처럼 쓸데없고 가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상대, 형제의 눈에는 대들보처럼 목숨같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 아닌 남, 상대 특히 테러리스트가 아닌 주의 약속안의 형제가 내 생각과 내 견해와 달라도, 내가 보기엔 옳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에게 대들보 같은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될 때, 진실로 존중하고 껴안고 같이 가는 동행자로서 신령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더 해질 것입니다.
'어찌하여 네 형제가 들보같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티 같이 가볍게 보느냐? 네 것만 들보처럼 소중하고 남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시하느냐? 네가 들보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듯이, 네가 볼 때에는 티처럼 하찮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형제가 들보처럼 소중히 생각한다면 무시하지 말고 존중해 주어라!'
상대가 티처럼 보일지라도 들보처럼 여기는 넓고 높고 깊은 신령의 눈, 사랑의 눈이 필요합니다. 다름을 틀림이라 여기지 않는 열린 마음으로, 사랑의 눈을 가져야 새로운 해석,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새 출발 할 수 있게 됩니다. 48돌 창립기념 예배에 여호와의 일곱 눈의 시각, 신령한 관점, 사랑의 눈을 선물 받았으니, 상대의 다름과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아껴야 합니다. 남을 존중하고 잘된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모든 잘못은 다 내 탓으로 돌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신령함의 은혜는 나날이 더해져야 하며, 사람의 잘못은 개선되어야 이 두 날개로 하나님의 성전의 역사는 온 세상에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니어 미스(near miss)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500만개의 부품으로 되어있는 항공기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나, 비행기 사고는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합니다. 반면에 의료기술은 갈수록 증가하지만 의료사고는 해마다 늘어나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어일까요?
비행기 조종사는 사고가 날 뻔한 '니어 미스(near miss)'를 반드시 보고하게 되어있습니다. 비행기는 사고가 나면 승객뿐 아니라 조종사도 죽습니다. 조종사는 니어 미스가 발생할 시, 반드시 방지청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보고하지 않으면 조종사 면허가 취소되고 맙니다. 이와 같이 니어 미스 시스템이 잘 되 있기에 모든 조종사는 니어 미스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게 되고, 비행기 부품을 비롯해서 계기판등이 완벽하게 개선됩니다. 컨트롤 수뇌부에 보고된 미스(miss), 실수, 잘못은 조종사들에게 공유됨으로 그 같은 실수가 개선되고, 미연에 방지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의료사고가 해마다 늘어나는 이유는 니어 미스를 숨기기 때문입니다. 니어 미스 시스템이 가동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사고가 나면 의사는 대부분 그 실수를 숨기려고만 합니다. 만일 자기의 과실로 의료사고가 난 것을 시인하게 되면, 그 병원은 안 좋은 소문이 나게 되고, 의사도 신뢰를 잃고, 평판이 나빠져서 환자가 오지 않습니다. 니어 미스를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서 니어 미스를 줄일 수 있음에도 영웅주의에 빠진 의사들은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과실로 환자가 죽어도 본인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실책과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교회에도 니어 미스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합니다. 신령과 진리가 충만한 언약교회로서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데, 사람의 과실로 실책으로 잘못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니어 미스 시스템으로 사람의 잘못과 실수가 개선되고 예방되어야 합니다. 니어 미스를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성공을 말하기는 쉽지만 실패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공을 공유함으로 도전 받아야 하고 니어 미스를 공유함으로 개선되고 예방되어야 더욱 주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운이 더욱 더 불어넣어져, 신령함은 더욱 더 충만해져 가고, 반면 사람의 잘못은 점점 더 줄여가야 합니다.
2001년 담임목사가 된 이후, 저는 지난 12년여 동안 잘못을 참으로 많이 저질렀습니다. 유흥하는 유람선, 장사하는 상선, 싸움하는 전함이 아닌 생명살림 구조선의 본연의 역할을 다하게 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고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제 탓입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 실수입니다...... 감히 입을 열어 말도 할 수 없이.......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그 크신 은혜와 사랑....벌써 죽이시고도 남으셨을텐데....
이렇게 거룩한 제단, 신령과 진리의 언약교회에 세워주시다니.......매봉 산 꼭대기에서 저 서울랜드와 여의도, 평촌과 의왕의 불 켜진 정경의 시가지 가운데, 산 중턱에 빛나는 십자가 불빛이 있는 교회.... 이 아름답고 거룩한 소중한 교회에서 내가 저지른 잘못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