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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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서른일곱 번째 할 일 / 악기 하나 배워보기

감사^^* 2018. 4. 13. 11:54

서른일곱 번째 할 일 / 악기 하나 배워보기


아버지는 커다랗고 길쭉한 상자를 들고 나타나셨다.
그러고는 그와 어머니를 거실로 부른 뒤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서 낡은 기타가 나왔다.
"지하실에서 발견했단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기타를 배우기만 한다면 평생 좋은 친구가 될 게다.
자, 너에게 주마."
그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기타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으므로 마지못해 기타를 받았다.
그가 줄곧 가지고 싶었던 것은 드럼이나 키보드였다.
그는 하루종일 라디오를 끼고 살며 록 음악을 들었다.
록 음악에 빠진 그의 머릿속에 고리타분한 통기타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그는 녹까지 슨 기타 줄를 보면서 `이런 바보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 사람들이 배꼽 빠지게 웃을 거야'
하고 생각 했다.
그 후 한동안 기타는 옷장 안에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일주일 후부터 기타 수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런 바보 같은 악기를 억지로 가르치겠다니….
나는 록 그룹의 드러머가 되고 싶은데.'
그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기타는 옆집 음악 선생님에게 배우기로 했다.
수업료는 꽤 비쌌다.
아버지답지 않은 이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현실적이어서 옷과 음식을 사는
데 돈을 쓰는 것 외에는 모두 불필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옷장 안에 넣어둔 통기타를 꺼내 먼지를 닦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원래는 네 아버지 것이었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네 아버지에게 사주신 거야.
그렇지만 사는 게 너무 바빠서 아버지는 못
배웠던 것 같아."
그는 아버지의 거친 손이 악기를 다루는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드디어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타 줄을 튜닝하면서 음을 맞추는데, 모든 것이
서툴러 어렵게만 느껴졌다.
"저 애가 잘 배우던가요?"
수업을 마친 후 아버지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첫날인데 아주 잘했어요."
선생님이 말했다.
아버지는 무엇인가 간절한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날마다 한 시간씩 집에서도 연습을 하라는
숙제를 받았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수업에 빠져야겠다고 결심했다.
낡은 통기타로 한물 간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가 친구 집으로 도망칠 때마다 집요하게 찾아내
집으로 데려와서는 기타 연습을 시켰다.
억지로 하는 연습이었지만 효과가 있었다.
그는 점차 악보를 보며 간단한 곡들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기타 실력이 꽤 늘었다.
이제 연주는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주 저녁 식사 후 그에게 몇 소절을
연주해보라고 했다.
안락한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흐믓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 앞에서 그는 「아랑후에즈 협주곡」 이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곡을 연주하곤 했다.
마을의 가을 축제가 다가왔다.
그에게 동네 극장 무대에서 독주를 하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저는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야 돼!"
"왜요?"
그는 대들 듯 소리 질렀다.
"아빠가 어렸을 때 기타를 연주하지 못해서요?
왜 제가 이 바보 같은걸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야 돼요?
아빠도 해본적이 없으면서!"
아버지는 화가 났지만 참는 듯했다.
그러고는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차근차근 말했다.
"네 연주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네가 그들의 영혼을 울릴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런 멋진
일을 네가 포기하도록 놔둘 수는 없다."
아버지는 온화하게 덧붙였다.
"언젠가 넌 네게 없었던 기회를 얻게 될 거야.
너는 네 가정을 위해 마음을 우리리는 곡을 연주할
수 있을 거다.
그때가 되면 지금 네가 고생하고 노력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거야."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간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부모님이 재촉하지 않아도 기타
연습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음악회가 열리는 날 저녁,어머니는 오랜 시간 공들여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귀고리까지 달아 멋을 냈다.
아버지는 일찍 퇴근해 가장 아끼는 넥타이를 맸다.
별 다른 말은 없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음악회는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 몰려드는 바람에
대성황이었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무대 중앙에 놓인 의자를
향해 걸어가 앉았다.
어두컴컴한 객석 어디쯤에 부모님이 앉아 계신지
알 수 없었지만 따스한 눈빛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버지가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그에게 물려준
낡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과「알람브라 궁전의
추억」같은, 평소 아버지 앞에서 선보이고는 했던
곡들을 잇따라 연주했다.
정말이지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해냈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극장을 가득 메웠다.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탄성과 칭찬이 여기저기서 계속
이어졌다.
그는 어떨떨한 기분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기타를 배우는 가혹한 형벌은 마침내 끝이 났다.
시간이 흘러 기타는 그의 생활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가족 모임 때마다 그에게 한 곡
연주해보라고 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그는 기타를 잡지 않았다.
기타는 거실 한구석에 놓인 장식품이 되어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그도 아버지가 되었다.
어느 날 오후, 가족과 함께 고향집을 찾았을 때, 아이들이
기타를 발견하고 마무가내로 조르기 시작했다.
"한 번 쳐보세요. 제발 한 곡만요!"
그는아이들에게 떠밀려 기타를 잡았다.
줄을 몇 번 퉁겨보던 그는, 자신이 아직도 기타 연주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끝에서 경쾌한 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몰려왔을까. 조카들은 물론 동네 아이들까지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내도 큰 소리로 웃으며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언젠가 너는 내가 가져보지 못한 기회를 얻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이해하게 될 거다."
아버지는 옳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하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다.

                                                  -웨인 켈린

악기를 연습하는 것은 꽃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을 흙에 묻은 다음 물을 줍니다.
이때는 아무 변화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씨앗 내부에서는 성장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계속 물을 주어 가꿔야 합니다.
악기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씨앗을 심는 일조차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서,
꽃이 피는 것을 성급하게 보고 싶어합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알지만, 꽃이 피는 동안 기다릴
인내심이 없는 것입니다.
인내심을 가지십시오.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일어섰다 좌절했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곡을 익힐 때 예전보다 더 빨라진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악기를 배우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가다듬는
것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