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고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으며(+),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십자가(+)는 플러스(+)입니다.
예수가족의 영광의 통과의례인 ‘십자가 + !’, 십자가 고난의 진리를 가슴에 새깁니다. 고난이 합(合)해져 결과가 좋습니다. 인고(忍苦)의 결실(結實), ‘행복 플러스 + !’ 고난의 과정을 필연코 통과하면 ‘행복한 참 사람됨’의 ‘영광의 열매’가 결실됩니다. ‘고난’은 모든 것의 의미를 참으로 알게 합니다. 모든 것의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뱀은 여자의 발뒤꿈치를 물지만, 십자가의 고난가운데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밟고 승리하리라’(창3:15)는 십자가 진리의 원복음을 가슴에 담습니다.
사탄은 달콤한 ‘유혹’을 주고 ‘시험’에 들게 하나, 하나님은 쓰디쓴 ‘시련’을 주시며 어려운 길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겪으셨던 3가지 시험인 현실, 정신, 의지적 시험인 사탄 악마가 주는 유혹, 시험은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주의 영광의 뜻을 이루는 경배의 삶을 통하여 ‘십자가의 진리’로 물리쳐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는 시련은 견뎌내며 참아내야 합니다. 그 시련 가운데 고난의 과정을 다 마치기까지 성숙과 연단의 통과의례 후, 참된 형상이 회복되며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까지 참아내야 합니다. 성숙될 절대시간, 부글부글~, 이글이글~ 풀무불속에 입(入)출(出)입(入)하며 단련의 과정을 통과하며, 그 기간까지 참고 기다리며 믿고 견뎌 내야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한 섭리 가운데 고난을 통하여 크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참된 일꾼, 성화된 종들을 신비한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의 연단을 통하여 새롭고 참되게 제련하며 만들어 가십니다.
‘그가 동서남북에 계시며,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라. 내가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겨 모든 것을 극복하고 따라갔도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가 다 알지 못할지라도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욥23:7-14).’
고난 속 연단의 십자가, 약속의 땅에 이르기 전 통과해야만 하는 광야처럼 필수적 복된 과정가운데 혹독하게 단련한 후 정금같이 나아오게 하십니다. 고난의 인내 속 연단을 통하여 주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정제된 큰 일꾼을 만드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중국의 산둥 성 대리석으로 만든 삼천계단위의 불상에 절을 하는 광경을 보며, 하늘의 가르침을 생각합니다. 계단 대리석이 불상 대리석에게 하는 말, ‘야~ 너랑 나랑 같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나는 발로 밟고 밟으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힘들어 죽겠다고 거친 말을 쏟아내며 오물을 뱉어 대는데 말이지....그런데 네 앞에 가서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며 그렇게 공경하는 이유를 모르겠다...허 참나~너나 나나 대리석인데...’ 대리석 불상이 계단 대리석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야! 너 칼 몇 번 맞았어?....너는 계단 만들 때 고작 서너 번 칼을 맞았지만 짜샤~ 나는 수천 번도 더 맞았어...이게 어딜 너랑 나랑 같아 보이지만 달라도 한참 다르지....그동안 사정없이 나를 자르고 찌르고 하는 통에, 상처 나고 아물며, 또 상처 나고 아물며...어휴~ 그 고통...다시 쪼개고 갈고 때리고...말로 다 못했지만...얼마나 많은 날 동안 아프고 힘들었는지, 니가 알아..? 칼로 징으로....눈을 쪼아대어 아름다운 얼굴모습으로...천상의 미소 만든다고...얼마나 많이.. 아휴~말도 말라구...너는 칼 서너 번 맞고 그늘에서 편안하게 쉴 때, 나는...온갖 고통을 다 겪으며 미치도록 힘들었다고...참으로 많은 고통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이 정으로 칼로 징으로 쑤시고 때리고 깨어 부수고 문지르고...수도 없이 칼 맞아서 이렇게 천상의 미를 갖춘 모습으로 만들어져서 내 앞에 절을 하고 공경을 표하는 거야 임마, 맥없이 내게 그러는 줄 알면 안 되지....’ㅎㅎㅎ 도살당한 어린양 같이, 빌라도 법정에서 억울하게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렇습니다. 십자가 고난가운데 죽으신 예수님은 부처님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칼을 많이 맞으신 분이 아닙니까? 온 세상이 그 앞에 무릎 꿇고 절하며 경배해야 할 가장 소중하고 귀하신 구원자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 칼 몇 번 맞았어?...당신은 칼 몇 번 맞으셨습니까....?
욥처럼 얼마나 많은 칼을 맞으셨나요? 환난 속 연단 단련....고난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가슴으로 받으며, 참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들어쓰시는 시대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정갈하게 기도하며 감사드립니다. 시대의 사명자, 주님의 선한 도구된 참사람으로 다듬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이 때 주님의 영원한 생명살림역사를 위하여 사용하시고자 함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왕후가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한 사명자로 쓰임 받으려고,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에스더처럼 주의 영광된 뜻을 이룰 산소망의 참 사명자로서 마지막 때, 추수의 때에 다니엘처럼 느헤미야, 베드로 바울 야고보처럼 쓰임 받는 영광의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난 속 참고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합니다. 욥의 인내를 들었고 욥의 결말을 보았습니다(약5). 욥의 고난, 애매한 고난, 억울한 고난이라 일컬어집니다
이 세상사,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많습니다. 이유 없이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몰랐던 욥...,가장 나쁜 신앙의 전형인 세 친구는 극한 고난 속 위로와 동감이 필요한 친구에게 초지일관 아량 없고 배려 없이 용서와 사랑의 마음 없이 시시비비를 따지는 법적 관점과 인과응보(因果應報)식 논리로 그저 정죄하기만 했습니다. 주님은 설혹 잘못하고 죄를 지었더라도 가슴으로 품고 용서해주되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시며 사랑을 베풀라 하십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주님이 결정한 뜻으로 알고 사랑이 포함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삽니다.
오래전 패닉상태의 멘붕을 일으킨 사건이 생각납니다. 주일학교 교사,@@@ 주일학교 마치고 가는 길에 갑자기 인도로 덮친 트럭에 깔려 사망하게 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등....세상살이가운데 참된 신앙인의 길에도 욥처럼 이해 못하고 알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심으로 앞으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날 것을 전지하신 하나님이 알았으면서도,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하나님...왜 그리하셨는지...도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사랑하셨는지....잘 모릅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많고, 참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도 참으로 억울한 고난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은 죄가 없다 하며 자기 손을 물에 씻으며 결백을 증언했지만, ‘십자가에 죽이라 죽이라...’ 성난 다수의 군중들의 강압적 요청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고 마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성숙될 절대시간,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얼굴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련을 견디고 새인생의 참 지평을 연 이지선 자매의 말처럼 ‘고난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고난 속 연단가운데 거룩한 변화로 새사람이 만들어 집니다.
‘주의 기도문’같이 사탄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마로부터 우리를 구하여 주옵소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 그 찰라 에 ‘사탄’이 살고 있습니다. 그 찰라 광명한 천사로 변장해 유혹하여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여! 주의 뜻을 이 땅에 이룰 영광의 선한 도구, 진리의 사람들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 악마 사탄 마귀에게서 구하여 주옵소서.’
투우사들이 소를 유혹하는 데 쓰는 붉은 망토, 사탄이 사영하는 명예, 부귀, 권세의 헛된 망토에 유혹되어 그 헛된 것을 쫓아가면 결국 허무하게 망하고 맙니다. 헛된 것에 팔려 죽습니다. 우리가 쫒아 가는 것을 진리의 말씀으로 잘 판단하여 선택해야 영원한 가치의 참된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쫓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헛된 것이냐 참된 것이냐?, 현상이냐 본질이냐? 그렇습니다. 참으로 가치 있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주의 뜻하신 영광을 드러내는 주 경배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험은 물리쳐야 하고 시련은 견뎌내야 합니다.
욥의 시련, 하나님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대 배신할 자가 아니라고 욥을 믿었기 때문에 사탄에게 넘겨준바 되었습니다. 혹독한 고난 속에도 온전히 다 견뎌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처럼 죄 없이 받는 고난 이었지만, 십자가 그 시련을 통하여 정금같이 만들어져 갔습니다. 영적 은총이 참으로 커서 온전히 성숙 변화되며 결국 전보다 배가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산도 열 명의 자식도..하루아침에 다 잃고, 부인도 욕하고 떠나고 맙니다. 게다가 자신의 몸까지 상피병에 걸려 그 극한 고난, 경계선 까지 갔던 의인이 욥입니다. 의인으로 십자가의 정병됨, 시련을 견뎌내고 정금 같은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제련되고 연단되어 참된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주의 영광된 뜻을 이루는 선한 도구로 빚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코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포악을 행치 않고, 정갈한 기도를 했던 참된 의인으로 성화되며 승리했던 위대한 신앙의 모범 욥, 그 일 년여 극심한 고난, 광야의 시련, 십자가의 고난의 과정을 잘 견뎌내고 욥기서의 주인공, 욥같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탄은 달콤한 유혹과 시험을 주나, 쓰라린 시련을 주시는 하나님은 십자가의 고난, 광야를 통하여 단련 연단하여 참된 큰 일꾼 폭 넓은 가슴 뜨거운 사람을 만드십니다.
인고의 52주년,
생명살림역사의 참된 열매를 결실하기 위한 행복 플러스 축제.
예수의 참된 가족, 우리를 고난의 풀무불속에서 단련하여 제련하여 하나님의 참 일꾼으로 만드신 것이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닙니까?
예수 가족의 인고의 결실, 행복 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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