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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는 ‘약속의 가족답게’ 하늘의 능력을 잘 사용하라 누가복음 23:30~43 ,2012-03-25

감사^^* 2012. 4. 3. 15:57

최선을 다하는 ‘약속의 가족답게’ 하늘의 능력을 잘 사용하라
누가복음 23:30~43    2012-03-2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갑니다. 양은 쓸개가 없습니다. 쓸개 없는 양은 험산준령이든, 바다나 가시밭길이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십자가 길이든, 끝까지 따라가 시온의 정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쓸개가 없음으로 담즙을 만들 수 없어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는 양처럼 우리 하나님의 양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30번, 100번, 300번 계속 되새김질하며 영혼과 심령에 힘을 얻어 단순 복종의 이 길, 승리가 약속된 길을 끝까지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우연’(偶然)이 아니라 ‘필연’(必然)입니다. 하나님의 필연의 역사인 ‘약속의 섭리’가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약속의 가족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저린 리브가처럼 ‘약속을 약속되게’ 하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가족이란 내게 불이익이 오고, 말할 수 없는 해가 미쳐도 끝까지 행동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면하여 서로의 흠과 잘못을 찾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껴안고 하나가 됨으로 ‘우리’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융합입니다. 우리 소망인은 약속의 가족답게, 약속된 꿈을 이루는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고 진실 되게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리 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섭리의 본보기로 기록된 성경 속 요셉의 이야기처럼 이 시대 우리 ‘요셉의 집들’(Houses of Joshep)에서 약속의 섭리가 필연코 성취될 것입니다. 웅덩이에 빠져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된 것도 필연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히게 된 것도 가족과 민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필연적 섭리였습니다. 약속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이처럼 필연적 역사가 진행됩니다.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세시며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려가는 것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출애굽’의 필연적 역사를 위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시기도 하셨습니다(마10:29-30).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여 약속의 뜻을 올바로 전함으로 돌에 맞아 죽는 그 일, 그로인해 온 세상으로 복음의 불이 번져 나갔던 그 신비한 일 또한 필연적 역사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가룟 유다가 팔아넘겨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사건이야말로 필연중의 필연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절대 필연의 역사에서 그 필연의 역사를 주도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요셉처럼 진실 된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 한 사람들입니다. 필연의 섭리 속에서 필연을 만드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요셉은 슬프게도 노예로 팔려가 노예로서 마당을 빗자루 질 할 때에도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광의 열쇠를 맡게 되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데 광에 쥐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날카롭게 나무를 깎아 쥐구멍을 막았습니다. 매사에 주인의식을 갖고 열성적으로 주어진 일 이상의 일을 하자 점점 더 신임을 받다가 그만 어찌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 곳,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요셉은 복수의 칼을 갈며 원망과 분노에 빠져 과거에 붙잡혀 있지 않고 벗어나서,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그 감옥살이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는 그 곳에서 평생 살 사람처럼 열성을 다하여 소임을 다 합니다. 감옥 문을 열어놔도 도망치지 않을 사람으로 인정받아 술 맡은 왕의 관원을 만나게 되고 그로인해 약속의 섭리대로 꿈을 이루어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는 ‘그리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성공적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 될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에 관한 다음의 이야기는 그 깊은 의미를 되새김해야 할 오늘 우리의 이야기 입니다.
 
수많은 석공들이 분주하게 돌을 다듬고 있는 현장에 유난히 눈에 뛰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석공들과는 달리 어찌나 몸놀림이 빠르고 유연한지 일하는 모습만으로도 구경거리가 될 만합니다. 여행객인 듯한 한 젊은이가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세 사람의 석공들은 자기들 또래의 젊은이의 질문을 듣고도 일손을 놓지 않은 채 그중의 한사람이 귀찮은 듯 대답합니다. “지금 겨우 일당 3리라를 받기위해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또 한사람의 석공은 이마에 땀을 훔치며 대답합니다. “보시다시피 돌을 쌓고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잘 다듬은 돌들을 튼튼하게 쌓는 것이지요.” 나머지 한사람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으나 제가 다듬는 이 돌들이 하나하나 모여 머지않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당이 이 마을에 생긴다는 것 아닙니까.” 한낱 석공이 마치 건축주라도 되는 듯이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젊은이는 같은 질문에 대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너무나 다른 점을 깊이 생각해 봅니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현장을 다시 찾게 된 그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돌아보며, 줄 곳 이마의 땀을 닦으며 돌을 다듬던 세 사람의 석공들이 눈에 밟힙니다. 수소문 끝에 그들에 관한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하루 일당에 불만을 품은 채 마지못해 일하던 석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 다듬는 일을 그만두고 떠돌다 행방을 감춘 지 오래되고, 또 한사람의 석공은 솜씨 좋고 수완이 있는 성실한 석공이 되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마지막 한사람의 석공은 훌륭한 건축가로 성공해 그리 멀지않은 도시에서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교회당을 건축하는 중에 있다고 합니다. “이 돌들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교회당이 이 마을에 생긴다는 것 아닙니까?하며 의욕에 찬 그의 일하는 모습과 마음가짐에 가슴 뭉클합니다. 마음가짐이 필연을 만듭니다. 필연적으로 그리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속은 그리 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필연적 섭리입니다. 어떠한 정황 속에서도, 어떠한 고난과 환난과 핍박과 방해와 위험과 칼과 기근과 난관 속에서도, 약속대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후승리와 성공 할 수밖에 없는 약속의 가족은 필연을 만드는 마음가짐을 갖습니다.
 
약속의 섭리를 필연적으로 이루는 사람들은 그 내면을 말씀으로 성숙시켜 영성을 강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기거하며 ‘도제교육’(徒弟敎育)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승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승계합니다.
 
3리라 일당을 받지만, 5리라의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세 번째 석공 같은 사람이 스승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승계한 사람이자, 요셉과 같은 약속의 가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3리라 때문에 마지못해 일하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첫 번째 석공은 4리라 준다는 데 있으면 언제든지 떠날 자 이기 때문에 그에게 더 이상 신뢰를 갖고 무슨 일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그는 곧 일이 없는 백수가 되어 떠돌이 방황자로 전락되어 성공적 삶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자기 맡은 일만을 하는 업무중심적인 두 번째 사람도 그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과도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세 번째 석공은 스승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승계 받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성공적인 승리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패, 자신의 불평등한, 이해할 수 없는, 도무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 상황을 인정하여 겸허히 받아들인 ‘요셉처럼, 예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실패를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때, 그 약할 때 가장 강해집니다. 새 역사를 극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볼 때 철저히 실패했다고 여겨집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에서 주님은 그러한 실패를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럼에도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옴짝 달싹 못한 채, 어머니와 제자들 앞에서 처절한 실패를 겪으시며 조롱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갖은 행악을 저지르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자들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너와 내가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주님은 하늘의 열두 군단에게 명하여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하는 자들을 능지처참할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 하늘의 능력을 생명을 살리는 데 잘 사용하셨습니다(눅23:30-43).
 
십자가의 정신, 예수의 마음가짐으로 겸허히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써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약할 때 강하게 됩니다. 스승의 정신을 이어받은 세 번째 석공처럼 요셉처럼 어떠한 정황에도 꿈을 사랑함으로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룹시다.
 
하늘 곳간에 가득 차있는 것들을 마음껏 갖다 써야 합니다. 엄청난 하늘의 능력이 충만한데 그 능력을 사용할 줄 몰라서 못 쓰고 있으니, 내면적 영적 성숙을 통하여 영성을 강화하고 예수 십자가의 정신을 승계해서 믿음으로 잘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처럼 생명을 해하고 파멸하고 죽이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고, 생명을 키우고, 성숙시키고 살리는 데 잘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정신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며, 그 안에서 약속의 가족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면서 우리 함께 하늘의 능력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약속의 가족답게 하늘의 능력을 잘 사용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