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이는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롬8:19-21)
호리병속에 ‘벌’을 넣고 병 바닥 쪽에서 빛을 비추면, 벌은 병 바닥 쪽을 향하여 날아가기를 계속하다 그만 병속에 갇혀버린 채, 죽고 맙니다. 열려있는 병의 입구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병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끊임없이 병의 바닥 쪽만을 향하여 날아가려다가 결국 병속에서 죽어버리고 마는 이유는 ‘빛을 향해 가고자 하는’ ‘벌의 속성’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병속에 갇힌 벌은 스스로는 ‘속성의 감옥’에 갇혀 그 병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법입니다. 벌이 감옥에서 벗어 나와 살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 병의 입구 쪽을 빛이 비추어지는 방향으로 돌려주거나, 또는 병의 입구 쪽으로 빛을 옮겨 비추어줌으로써 궁극적으로 병의 입구 쪽에서 빛이 비추어 지게 하는 방법뿐입니다. 호리병속, 속성의 감옥에 갇힌 벌을 구출하여 자유케 하려면 병의 입구 쪽에서 빛을 비추어 주어야만 합니다.
인간도 죄의 속성이라는 감옥에 갇혀있어서 인간 스스로는 그 감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죄라는 속성의 감옥’에 갇혀서 소멸하는, 썩어짐의 종노릇하며 허무에 굴복하는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늘 위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참 빛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밖으로부터 보내심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까닭에 사도 바울이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바는 하늘 위로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갈망했던 것입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 하늘 위로부터 보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참 빛의 역사를 통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가 가능해 집니다. 진리의 참 빛으로 모든 속박과 감옥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인간의 죄 된 속성의 감옥이란 달리 말하자면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인간적 육신의 생각 속, ‘고정관념의 감옥’을 뜻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케 하는 진리로만 이런 육신의 생각 속, 고정관념의 감옥을 벗어나 생각의 한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의 한계를 극복하고 또 극복함으로써 생각의 한계가 확장되어 갑니다. 생각의 한계를 확장하되 그리스도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확장되고, 마음의 한계를 확장하되 그리스도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확장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마다 그리스도의 생각과 마음에 이르기 까지 자라가라고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마음의 세계 속에서 참된 가치가 형성되어 지는 법입니다. 정신적 가치란 물질로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가치는 내가 결정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영(靈)이란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무형의 실체라고 정의되는 것으로서, 가치형성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류역사의 지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사람의 힘과 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神)’으로, ‘성령(聖靈)’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神靈)함이 없는 교회는 교회일 수 없고 신령(神靈)함이 없는 신앙은 신앙일 수 없다 하겠습니다. 말씀하시는 교회에서는 성령의 신령함의 역사로 생명 살림의 위대한 프로젝트가 완수됩니다. ‘살리는 것은 영(靈)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靈)이요, 생명(生命)이니라.’(요6:63) 말씀과 함께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신령함이 충만한 교회를 통하여 신자의 생각을 바꾸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만들어 새로운 가치관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품격 높은 인생을 살아가게 하면서 더불어 생명살림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일이야 말로 참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너희는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쁘시고 선하시며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 이로써, 새로운 가치관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며, 하나님의 사람답게 품격 높은 삶을 살아가라!’(롬12:1-3)
홍수 시,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확신에 찬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한 신자의 이야기를 명심해야 합니다. ‘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밧줄을 내려주심으로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자꾸 물은 불어나고 기도는 더욱 더 간절해지는 가운데 뗏목을 탄 노인이 다가와 ‘빨리 이곳으로 옮겨 타시오’라고 권유하지만 그 신자는 ‘무슨 소리냐, 이제 곧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와 하나님이 나를 구해주실 터인데..’하며 더욱 소리 높혀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렇게 그 신자는 몇 번인가 다가와 이 뗏목에 타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지붕 끝에 까지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다 그만, 물에 빠져 익사하고 맙니다. 그는 사후에 하나님 앞에 서서 삿대질을 하며 불평하고 불만 가득하여 이러실 수가 있느냐고 항변하고 있을 때, 뗏목을 타고 다가왔던 그 노인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나와 호통을 칩니다.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보내 너를 구원하러 보내셨거늘 내가 그렇게 간곡히 권유했건만 매 번, 당신이 타기를 거절하지 않았느냐.’......
홍수 시 신자의 기도 이야기가 가르쳐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신자가 기도하는 것에 응답하여 하나님이 구원선과 도움의 손길을 보내신 것을 거절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홍수 시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와 구원해주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사람의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진리로 자유케 됨으로써 그 제한된 생각의 한계를 확장하여 ‘다가오는 새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살 수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아 계속적으로 우리가운데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과 구원의 역사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얻을 후사, 신령함이 충만한 성령의 사람이란 깨달음의 은혜 속에서 다가오는 새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보내달라고 오랜 세월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들은 다윗 같은 정치적 해방자를 메시야로 보내 줄 것으로 믿고 기대하는 고정관념 속에서 기도했었기 때문에, 그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세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멸망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새것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도와 살리기 위해 보내지는 것입니다. 모습을 달리하여 보내지는 그리스도의 보혜사의 역사를 은혜의 깨달음 속에서 생각과 미음을 바꾸어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도움의 손길이 도처에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구원 얻을 후사를 도와 살리기 위해 이미 우리가운데 와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것을 다 가지고 이미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와 약속의 성령 안에서 ‘다가온 새것’을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받아들이는 자는 생명의 새 길이 열릴 것이며 고품격의 가치 있는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에 속해있는 다말(밧세바, 라합, 룻)의 경우에서 깨닫게 되는 것처럼 떳떳하지 못한 삶의 족적을 가진 자라도 누구든지 생각과 마음을 바꾸면 그리스도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우편에 달린 강도처럼 생각과 마음을 바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가치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 나게 됩니다. 누구든지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예수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니,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도다.’(고전 5:17) 변신하면 변화됩니다.
미국 명문 하버드대에서 유학을 온 아프리카 추장아들과 함께 공부를 했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유독 친하게 지내던 그 추장아들이 공부를 잘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로부터 결혼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그의 친구는 아프리카로 즉시 날아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마침 전통적인 결혼 예식 절차를 따라 성대한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마음에 드는 신부감을 데려오려면 신부의 집에 합당한 대가로 소를 지불해야하는 관습이 지켜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정도, 괜찮은 신부감을 데려오려면 소한마리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아주 특별한 신부감에게는 소 두 마리가 제공됩니다. 그 마을이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소 세 마리를 주고 데려온 신부감은 딱 셋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추장아들이 데려올 신부감에게는 그녀의 집에 무려 아홉 마리의 소가 주어질 것이라 공언되어서 마을이 발칵 뒤집어 진 상태였습니다. 유학파요, 훤칠하고 잘생긴 추장아들을 사위로 얻는 행운이 주어지는데, 전무후무하게 소를 무려 아홉 마리를 주고 데려오는 신부는 도데체 얼마나 대단한 신부감일런지... 아홉 마리의 소를 끌고 신부의 집으로 향하는 추장아들의 뒤를 따라 호기심 가득한 온 마을사람들과 함께 신부의 집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신부감을 보는 순간 그 친구는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깡마르고 정말 볼품없는...어떻게 저런 처자가 이렇게 멋진 추장 아들의 신부감일 수 있을까...어떻게 저런 신부감에게.. 소 아홉 마리 커녕 소 1마리도 아까운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추장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어릴 때 초등학교 시절, 추장아들이 풋풋하게 사랑했던 같은 반 여자아이였던 그녀와 이다음에 커서 결혼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 9마리를 끌고 신부감집으로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아프리카의 친구 추장아들의 부족 마을 근처를 사업차 방문하게 된 대학동창은 연락을 주고 받은 후, 간청에 못이겨 절친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추장 아들을 재회하게 된 그 대학 동창은 이제 추장이 된 그의 집에 초대되어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 친구를 문 앞에서 맞이한 한 여인이 유창하게 영어로 안내를 하며 세련된 매너로 자신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특급호텔의 최고의 매니저보다도 더욱 더 고품격 자태와 숙련된 제스처와 표정, 말투와 세심한 배려, 거기에 환상적인 요리까지 직접 만들어 대접하는 그 여인에게 매료되었습니다. 경탄할 정도의 품격을 지닌 그 아름다운 여인의 정체를 알고 난 그 친구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 추장친구의 새로 맞이한 부인이겠거니...했던 자신의 예상이 완전히 벗어나 극적 반전으로 저 세련되고 품격 높은 아름다운 여인이 10년 전 보았던 그 깡마르고 볼품없던 신부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0년 전 결혼 후부터, 그녀는 ‘내가 소 아홉 마리 가치인데...’, ‘내 신랑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최고로 인정해 주는 데....내가 그 가치에 걸맞게 자신을 만들어 야지....’ 라고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결심하여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 불어 독어 3개 국어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휘트니스 클럽을 다니며 몸짱으로 몸매를 다듬으며 밤늦게 까지 수많은 책을 읽고, 틈틈이 요리까지 배우며.... 최선을 다해 자신을 ’소 9마리 가치‘에 걸 맞는 사람으로 변신을 거듭하여 언행에서, 삶의 모든 모양에서, 무겁지도 무례하지도 않게, 너무나 세련되게 품격 높게, 변화되었습니다.
‘9마리 소의 가치를 지닌 나인데, 그런 남편의 사랑을 받는 내가 그에 걸맞게....한계를 확장해 자신을 멋지게 아름답게 다듬어야 마땅하지.’ 그 여자가 대단하고 멋집니다. 그렇다면 예수 사랑 받는 자는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독생자의 목숨을 우리의 대가로 치를 만큼, 그렇게 엄청난 이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의 고귀한 ‘예수 가치’를 지닌 자는 어찌되어야 하겠습니까?...........................감사.........감사................감사.......!!!
추장아들의 사랑을 받으며 9마리 소 가치로 품격 높은 진선미의 멋진 새 사람 새 인생을 만들은 그 추장신부처럼 예수 사랑을 받은 우리 예수신부들도 예수 가치로 언행이 품격 높은 새 인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서게 될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앉을 때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어 영원한 영광을 얻으시기를 소망합니다. 멋진 아프리카 깡마른 여인이 9 마리 소의 가치(價値) 있는 인생으로 자신의 한계를 확장해가듯이, 헵시바요 쁄라인 시온의 딸, 우리 소망인은 ‘예수 가치(價値)’있는 인생으로 자신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확장해 갈 것입니다. 예수 사랑 받는 사람은 그 한계극복이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예수 가치만큼 자신의 한계를 확장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의 생각에 까지 한계가 확장되고, 예수의 마음에 까지 한계가 확장될 것입니다. 믿음에 덕, 덕에 지식,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에 형제우애,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신의 성품’까지 확장되어 성숙될 것입니다. 예수의 인격과 품성을 지닌 품격 높은 새 인생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마음가짐,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좋은 생각, 좋은 마음가짐, 마음의 결정이 참으로 중요한 에너지입니다. 오늘부터 생각을 바꾸고 무엇을 마음으로 다짐하여 실행해 보시렵니까? 고품격 예수가치의 사람으로서...!
습관이 만들어진다는 기간인 21일간, ‘불평 없이 살아보기 프로젝트’로 고품격 예수가치의 격조 높은 소망인으로 만들어봅시다. 고품격 예수 가치로 한계를 확장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