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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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새 시대, 하늘의 통로(通路)로부터 ‘복에 복’을 받을 것이라. 2012-07-22

감사^^* 2012. 10. 5. 16:07

전환의 새 시대, 하늘의 통로(通路)로부터 ‘복에 복’을 받을 것이라.
창세기 32:21~32    2012-07-22
 
‘약속’이 ‘복(福)’ 자체 입니다. 약속의 복을 받은 자는 ‘복된 과정’을 통하여 ‘복된 결과’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듯, 은혜의 베데스다 연못에 그리스도가 임함으로 ‘은혜를 은혜 되게’ 하듯, 복을 복되게 하는 ‘하늘(天) 복(福)’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르심에 후회하심이 없는 주 하나님은 ‘복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고, 함께 하시면서 ‘복에 복’을 주고 계십니다.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며, 십자가의 고난의 과정을 통해 약속된 복된 결말을 맞게 하십니다. 욥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고난과 인내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고, 그 아무 것도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은혜 깊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는 욥의 고난과 인내를 들었고, 처음보다 배나 되는 복을 받는 복된 결말을 보았습니다(약5:11).
 
‘살아계셔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이시여! 우리를 도우셔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시고, 지경을 넓히사, 복에 복을 주시며, 생멸살림 역사를 이루게 하옵소서!’(대상4:6) 복의 통로인 주를 붙들고, ‘기도하면 응답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욥처럼 극복하면, 배가되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거룩함의 실체가 존재하는 믿음 안에서, 극복하고 추진하는 자는 하늘에서 주시는 복*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비밀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될 것이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마13:1-12)
 
천국은 좋은 진주를 찾아 얻는 것과 같다 합니다. 진주는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야 보입니다. 천국의 비밀이 허락된 자는 진주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늘의 별빛으로 진흙탕 땅을 비추어서 그 속에 묻혀있는 진주를 발견하는 자는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다음은 복된 자인 베스트 셀러 작가, 델마 톰슨을 소재로 한 ‘진주의 가치’란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이런 곳보다는 차라리 형무소가 낫겠어요!’ 2차 대전 중에 모하비 사막에 있는 육군 훈련소에 배속된 남편을 따라 사막근처의 오두막집에서 살게 된 델마 톰슨 부인이 친정 부모님께 보낸 편지입니다. 그곳은 평균 45도의 무더위, 바람에 날리는 모래에 뒤섞인 음식,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인디언뿐입니다. 궁리 끝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보낸 편지를 받아본 그녀의 아버지는 단 두 줄의 회답을 보냅니다. ‘두 사나이가 형무소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단다. 그런데 한사람은 진흙탕인 땅을 보고, 다른 한사람은 하늘의 별을 보았단다.’
 
평소 생각해오던 부모님의 따뜻한 위로가 아닙니다. 일상적인 안부조차 없습니다. 달랑 두 줄의 글 그리고 의외의 내용, 이 회신에 톰슨 부인은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아버지에게서가 아닌,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비추어지는 하늘의 빛으로 진흙탕 땅 속에서의 힘겨운 현실을 비춤으로써 ‘왜 내가 이곳에 와있는 것인가’하는 오늘의 삶의 숨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진흙탕 땅 속 같은 현실의 삶속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진주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그녀는 힘든 전쟁터에서, 낯선 이웃들을 찾아 친구로 만들고, 자연을 깊이 관찰하기 시작했고, 반짝이는 별을 소재로 ‘빛나는 성벽’이라는 소설을 출간하기에 이릅니다. 생각과 마음을 바꿈으로써 툴툴거리던 ‘불행의 포로’에서 선망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톰슨부인이 예상했던 대로 사위를 설득하고 딸을 토닥거려 친정으로 불러들였다면, 당장 일신상으로 그녀는 편안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부모도 안쓰러운 딸에 대한 맘고생은 안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그녀에게 줄 수는 없었을 것이며, 숨겨져 있던 그녀의 재능을 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을 바꾼’, ‘그리 길지 않은 두 줄의 글’이 마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께서 이루신 ‘살아남는 법’인 ‘메타노이아: 생각과 마음을 바꾸라’를 연상하게 합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 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진흙탕인 땅을 보고 절망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희망 속에서 살 것인가? 델마 톰슨은 출간기념회에서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다해 변신의 기회를 갖게 한 아버지로부터 받게 된, 단 두 줄의 글이 지옥이 아닌 ‘천국의 비밀’이었음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하늘의 별빛을 따라 진흙탕에 묻혀있던 진주를 찿아 내었으니 말입니다. 처칠의 말이 떠오릅니다.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본다. 낙관론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와도 기회를 본다.’ ‘살아남는 법’을 알게 하신 소망인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전환(轉換)’이란 이제까지의 생각과 마음을 다르게 바꾸라는 뜻을 지닙니다. ‘전환기’를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새 생각과 마음, 새로운 정신세계의 새로운 ‘영적 세계’가 시작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만나 이니라. 썩지 않는 양식을 주는 하나님이 인(印)치신 인자로서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으리라. 야곱의 꿈에서처럼 인자위에 하늘이 열리며 하늘까지 사다리가 놓여져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하늘의 복된 통로가 될 것이라. 내가 곧 하늘의 복된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를 통하여 복에 복을 받게 되는 ‘복된 통로’가 열렸습니다. 시대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진리의 성령이 활약하는, 지금은 전환의 새 시대입니다. 이제까지의 상식과 경험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영적 세계로 전환된 주의 새 세계가 열렸습니다. ‘영적 경계’를 언제나 인식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복 받을 신앙인입니다.
 
전환기 이전의 세계와 그 이후의 세계는 차별됩니다. 그저 상식과 경험이 적용되는 전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일정한 공식이 통용되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나, 그런 땅의 차원과 전혀 다른 ‘전환’을 통한 새 차원의 세계는 마술적 현실세계를 인정하는, ‘초월적 현실세계’로서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한 ‘영적 세계’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둘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 ‘영적 경계’가 존재함으로써, 이 둘은 중복되거나,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 위로부터 오신 이는 만물위에 계셔서, 하늘의 것을 말하나 받는 이가 없도다. 땅에 속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요3:31-33) 우리는 이제까지 일관되게 ‘땅의 차원’인 상식과 경험, 공식과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하늘의 신령한 ‘영적 세계’로 부터 주어지는 하늘의 ‘영적 차원’의 역사에 의존하여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 영적 차원으로부터 활동하는 ‘영적 실체’야 말로 참으로 ‘복된 통로’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만난 ‘한 사람(man)’, 그 주의 사자야말로 영적 차원에서 보냄 받은 ‘영적 실체’로서 ‘하늘의 복된 통로’라 할 수 있습니다. 살기등등한 형 에서와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을 앞두고 밤새 두려움에 떨며 고심하던 야곱은 한 밤중 얍복강가에서 ‘한 사람’을 만나자마자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늘에서 보내신 주의 사자로다. 하늘의 복의 통로로다. 복 주시는 이, 저를 붙들어야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를 끝까지 붙잡고 간청하면 복을 주실 것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야곱은 그와 씨름하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허리뼈가 어긋나는 고통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고난과 장애와 문제를 극복하고, 끝까지 붙들고 간구하여 결국, 복을 받습니다. 복된 통로를 통하여 하늘에서는 주시고, 야곱은 받았습니다.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 하겠나이다.’ ‘알았네 알았어. 네 마음을 보았다. 이제 내가 복을 주겠다. 네 이름을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제부터 복에 복을 더하여 줄 것이라.’(창32:21-32)
 
우리가 만난 것,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 우리가 관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야곱이 만나고, 붙들고, 관계하고 있는 것과 같은 영적 차원의 ‘영적 실체’여야만 합니다. ‘전환(轉換)’을 통하여, 영적실체를 발견하고, 꼭 붙들어야 복된 미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주를 만나야 됩니다. 주의 사자를 만나야 문제가 해결되고, 새롭고 희망찬 생명살림의 역사가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실상(實像)이 아닌 허상(虛像)을 붙들고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쓸데없고 소용이 없습니다. 피곤하도록 연구하고 상고하여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실상인 영적 실체를 만나, 붙들어야 영원한 생명의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詳考)하거니와, 이 성경은 나에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땅에 속한 너희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않느니라.’(요5:39) 허무한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는 헛된 것들, 이 땅의 차원에 속한 것들, 명예, 권세, 부귀, 재물과 허탄한 것들에 대한 집착과 욕망, 불의한 도그마와 사회적 통념, 유대적 전통, 인간적 범주.....만을 추구하는 자는 불쌍한 자입니다. 썩지 않는 것들, 하늘로부터 은혜로 주어지는 것들을 받으려 하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 자는 참 불행한 자입니다.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요6:29)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 예수 메시야를 은혜로 깨닫고 끝까지 믿음으로 붙들며 끝없이 사랑함으로써 ‘이기는 자’는 복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야곱처럼 이기는 자는 이스라엘 즉, 승리자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되는, 복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승리하는 야곱으로 인해 한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공동체가 태동되어 복이 확장되었듯이, 승리하는 우리로 인해 이웃과 주변사회에 상상할 수 없도록 복이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모든 장애와 문제를 극복하는 것, 싸움에서 이기는 것, 씨름에서 승리하는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습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의지의 문제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새롭게 마음을 다져 ‘필연코 이룰 것이라’는 의지를 불태워야 합니다. 외적 ‘완력(腕力)’보다 내면적 ‘마음의 힘’, ‘마음의 에너지’가 강력하게 활동하게 해야 합니다. 생각의 힘을 작동시키고 마음을 다해 승계된 정신세계 속에서 영의 힘, 영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힘, 영의 힘으로 ‘하늘의 복된 통로’, ‘복된 실체’를 놓치지 맙시다. 끝까지 붙들고 그로부터 복을 받는 자와 시련과 시험, 어려운 고난과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만 놓아버리고 포기하는 자는 천지(天地)차이가 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시는 보내심의 역사와 땅에서 비롯된 이 세상차원의 역사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듯이, 천국과 지옥의 차별된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give me tommrow!’ 인간은 누구든 희망차고 복된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합니다. 당신의 복된 미래를 결정할 요인은 당신이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법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당신이 지금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실체가 무엇입니까?
 
결과 없이 허무하게, 모압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고 계십니까?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했던 바알과 아세라의 종들처럼 ‘바알이여!, 아세라여!’ 헛되고 공허한 부르짖음을 울부짖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르밧 땅 과부처럼 복된 결과를 얻는 영적 실체, 주의 사자를 만나 그를 붙들었습니까?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과 기름 한 방울, 그로 만든 마지막 빵을 달라하는 하나님의 보내신 사자에게 자신과 아들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생명의 빵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식량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어떤 연유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저 선지자,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이 보내신 주의 사자가 내 처지와 형편을 아시고 복주시기 위하여 주께서 하늘로부터 보내신 ‘복의 통로’임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를 만나 주께로부터 개취급을 받으며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 여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간절히 주를 붙들고 온 마음다해 간구했던 이유는....?!! 그렇습니다. 주님이 ‘복의 통로’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 또한 모든 자존심을 버린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저분을 만나야 된다. 저분만이 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고, 복받을 수 있는 유일한 온리 원의 복의 통로다’라고 믿고 주를 붙들고 있습니까? 지금, 당신 또한 허리뼈가 부러지고 대퇴부가 으스러져도 밤새도록 야곱처럼, 주의 사자를 붙들고 씨름하며, 결코 놓지 않고 붙들고, 복 주시기를 구하고 또 구하여 ‘마음을 보시는 주께서’ 새이름 이스라엘이라는 복에 복을 주시는 신기한 영적 축복을 체험하고 있습니까? 오늘 당신은 보내신 주의 아들을 붙들고 질적 변화를 거듭하며 영원한 생명의 복된 결말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오늘, 누구를 만나고 있으며,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처음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붙잡으십시오. 애굽으로 도움을 청하러 내려가지 마십시오. 깨달음의 손으로 붙잡고, 믿음의 손으로 복 주실 때까지 붙드십시오. 우리 주 예수 메시야, 말씀하시는 교회, 주의 사명...을 붙들고 브니엘의 영광의 새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절대로 놓지 말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됩니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 ‘주의 사자를 붙들고’, ‘struggle: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며 애쓰고 노력하여’, ‘overcome :극복하면’ 영적, 물적 복을 배나되게 받을 것입니다. 전환의 새 시대, 하늘 통로로부터 복에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