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처럼’ 오늘,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하나님의 면전에선 당신의 실존적 모습을 그려보라! 누구나 한번은 꼭 서야하는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파노라마같이 인생살이의 모든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그 때, 주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무엇을 하다 왔느냐? 보냄 받은 자로서 삶의 미션을 잘 수행했느냐? 네 인생의 열매는? 네게 맡긴 달란트의 이문은 어디 있느냐?’, ‘.....!!!’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우리 삶의 모범인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7) 주인이지만 종의 마음을 갖는 것, 거룩하지만 속된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성화’라 할 수 있고, 이 성화의 발현이 ‘성육신(成肉身)’ 사건입니다.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와 축복!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죄악가운데, 불쌍한 인생, 타락한 사람들을 구하여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피(血)와 육(肉)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자(人子)가 사람들과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평생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사람들을 자유케 하려 하심입니다.(히2:14-16)
참사람 되신 예수님은 ‘육신을 지닌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과 고초, 죽음까지 맛보심으로써 혈과 육을 지닌 연약한 사람의 처지와 형편을 낱낱이 다 이해 할 수 있게 되셨습니다. 육신을 입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험하심으로써 우리의 고초와 고통을 알게 되신 것입니다. ‘먹어야 하고 자야하고, 정과 욕에 끌려 사는 인생살이,.... 그래 그럴 수 있지, 괜찮아~ 알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하나님은 죽음을 경험해 보신 적이 없으셨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되어 죽음까지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험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능히 도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으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으로써 우리를 구해 살릴 수 있게 되셨습니다.
‘참하나님이고 참사람’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신처럼 살지 않고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사람 됨’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사람으로 하나님의 것을 전도(傳道) 하시면서 참사람으로 사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과의 영적교감(交感)을 통하여,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선물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관계를 회복하고, 은혜로 단절의 유리벽이 허물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한 부부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중년을 넘어서 노년을 바라보는 안집사님은 주변의 칭찬이 자자한 품위 있는 신실한 신앙인입니다. 누가 보아도 행복한 가족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녀가 소그룹모임에서 은혜를 나누다 눈물을 쏟아내었습니다. 그 눈물은 이내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이십년 째 각방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유인즉, 남편이 결혼초기 외도를 했는데, 그 이후로 각방을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각방을 쓰고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남편을 보면 벌레가 기어오는 것 같은 심리적 장애로 고통을 받아왔던 아내, 이제 주의 십자가 사랑으로 용기를 낸 그 집사님은 목장원들 앞에서 이번 주 내로 합방을 하겠노라고 공언 했습니다. 20년간 각방을 썼던 분이 과연 한 주 만에 합방을 할 수 있을지... 일주일간 내내 치열한 갈등 속 사투 끝에 그 집사님은 비장한 결심을 하고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향했습니다. 방문을 열고, 자고 있던 손자를 깨워 내보내고 가만히 남편의 옆에 누었습니다. 남편은 숨죽이고 부인의 용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밤, 20년간의 단절의 유리벽이 허물어졌습니다.
다음날, 평소와 같이 그 집사님은 빨래를 이고 옥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급히 쫒아 와서 ‘이렇게 무거운 빨래를 이고 가다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빨래를 냉큼 뺐으면서 사랑의 핀잔을 하자, 집사님은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답니다.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남편의 따뜻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은 돼지고기를 사와 손수 프라이팬에 구워주면서 ‘당신 오래 살아야돼.. 건강하게..’ 하더랍니다. 그 집사님은 다시 한 번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날, 목장원들 모두 눈물을 쏟아냈고 그곳은 이내 은혜의 울음바다가 되었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영적 부부사이입니다. 한순간에 20년간 각방을 썼던 사이가 합방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人間)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참된 사랑의 십자가 안에서 단절의 유리벽을 허물어 살가운 사람들 사이, 다정한 관계를 만들어 살맛나는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절의 유리벽을 허뭅시다. 부부간(間 ), 부자간(間), 가족간(間), 목장원간(間), 이웃간(間).....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단절의 유리벽으로 인해 서로 고통스러운, 지옥 같은 삶을 청산하고 비장한 결심으로 그 단절의 유리벽을 허물어 버림으로써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따뜻한 정이 넘치는 참 사람다운 행복한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심으로 짐승처럼 살아가던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참으로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로 참으로 사람답게,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의 단절된 유리벽이 허물어졌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 사람사이의 단절된 유리벽이 허물어져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성육신의 신비로운 은총과 축복을 깨달으십시오. 성육신한 예수님은 신처럼 살지 않고,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사람 됨’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같이 우리도 신처럼 살려하지 말고, 사람으로 살며 하나님의 것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되는 것! : Being human!’은 정말 중요합니다. 바둑천재 조훈현이 스승 세고에로부터 받은 금언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바둑의 명인이 되도록 키워 주겠다. 하지만, 그 전에 네가 할 일이 있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한 마디의 짧은 가르침에는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약속과 조건이 서려 있습니다. 약속은 명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고, 조건은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사람이 되라는 스승의 이 말은, 유추해보건대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며, 바둑의 명인이 되기 위해선 사람이 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최상의 환경인 에덴동산에서도 사람 되는 과정에서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중퇴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반전무인의 경지의 도를 터득하여 바둑의 신으로 추앙받는 조훈현9단, ‘저는 아직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전히 노력합니다.’라는 그의 겸손함에서 스승이 원했던 ‘사람’을 봅니다.
러시아의 민담속에, 벌거벗은 인간의 몸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된 미하일이라는 천사가 교회 담벽에 기대어 죽기직전, 가난뱅이 구두수선공 세몬을 만납니다. 세몬은 그날따라 외상값을 못 받아 울화가 치밀어 집을 향해 가는 길에 불쌍한 미하일을 그저 지나칠 수 없어 자신의 외투를 입혀 집으로 데려옵니다. 세몬의 아내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당장 내일 양식이 걱정인 그녀는 남편에게 심한소리를 해 가면서도 따듯한 밥을 지어 내놓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표정이 없던 미하일은 처음으로 미소를 짓습니다. 겉모습의 사람이 아닌 ‘사람’을 본 것입니다. 스승의 미소, 천사의 미소, 부모의 미소, 아내의미소, 친구의미소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과연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미소메이커.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일은 무엇인가를 사람처럼 생각하며, 우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되려하지 말고, 사람이 됩시다. 만나면 그저 반가와 미소 짓게 되는 예수 같은 사람으로 삽시다. 이 사람들처럼 ‘미소메이커’가 되어 참 사람으로 사는 인생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신처럼, 천사처럼 살려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신처럼 살 수 없습니다. 첫째 아담이 빠졌던 유혹과 같이 하나님처럼 되려하지 말고, 바벨탑을 쌓다 치명적 불행을 자초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음성을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되려 하지 말고, 사람이 되라! 하나님처럼 살려 하지 말고, 사람으로 살라! 사람으로 하나님의 것을 전해 주라. 인간성 좋고 인간미 넘치는 참사람 예수의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살라!’
‘물고처럼 생각’해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듯이, ‘사람처럼 생각’해야 사람을 구하여 살릴 수 있는 법입니다. 산골 오두막 빛을 보고 날아드는 새들이 그만 유리 창문에 부딪쳐 죽고 또 죽는 의미심장한 새 이야기를 가슴깊이 새기십시오. ‘훠이, 훠이~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쳐 죽지 말고, 저 쪽 저 열려진 창고로 날아가 곡식을 먹고 살라구~ 이리 오지 말고 저리로 저리로~ 그래도 여전히 유리창에 부딪쳐 죽어가는 새들을 바라보며 산골촌부의 순간의 깨달음. 내가 잠깐만 새가 되어, 새처럼 말할 수만 있다면, 저들에게 새의 언어로 살 길을 전해 줄텐데... 아! 그래서 예수님이 잠깐 사람이 되신 것이로구나~~~!!!’
새가되어, 새처럼 생각하고, 새처럼 말할 수 있어야 죽어가는 새를 살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middful) 사람, 허무에 굴복하며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구하여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되어,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으로, 하나님의 것을 전해줘야 생명살림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째아담처럼 사람 되는 과정을 중퇴하지 말고, 성육신하여 참사람이 된 예수의 십자가의 삶을 본받아 단절의 유리벽을 부수고 사람으로 하나님의 것을 전해주어 생명살림의 역사를 완성합시다. 소망의 사람이여! 하나님의 면전에서 참 잘했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참 사람이 됩시다. 예수님처럼, 남녀노소 누구든 그를 뵈면 달려가 뒤에서 꼭 끌어안고 싶을, 따뜻한 정감 넘치는 사람이 됩시다. 예수향취 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것을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