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복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의도’가 결코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을 통로로 하늘의 복된 열매가 결실됩니다. '축복의 통로!', ‘하나님이 아브라함 언약의 자손,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우리에게 먼저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인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말씀처럼 ‘너희 중에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희 중에 세우리니, 그의 말을 듣는 자는 복에 복에 복에 복에 복에 복에 복을 더할 것이라!’
윷놀이 문화, ‘업는’ 한국문화는 '함께, 더불어' 복 받는 뜻 깊은 공동체 문화입니다. 의인과 함께 가는 천국 복된 길, 의인덕분으로 '복+복'을 받습니다. 의인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하나님이 조카 롯에게 복을 주시고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의인 몇 사람이 힘을 합하면 불의한 사람을 구하여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장벽을 뚫고 지붕을 뜯어 들것에 실린 병자를 내린 의인들,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병자의 죄를 사하시며 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은혜의 축복의 통로를 만난 자들은 참으로 복 있습니다. 은혜의 축복의 통로! only 1, 말씀하시는 교회! 생명살림센터! 엘리야와 같은 성정을 지닌 우리!,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약5:16).
은혜의 ‘축복의 통로’를 붙들고, 기도하며 복된 생명의 열매를 결실함으로 은혜를 보답해야합니다. 미움, 원수, 죄짐...등 '내려놓을 것'들은 내려놓고, 사랑, 희생, 축복통로....등 '안고 갈 것'은 끝까지 안고 가야 합니다. 죄책감으로 자신을 학대하지 말고, 베풀어주신 은혜를 ‘회개(metanoia:생각과 마음을 바꿈)’의 복된 열매로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의 복!'과 '한국적 복!' 새로운 세계로부터의 천복(天福), '하늘의 복'은 한국사회에서 종교화되어있는 ‘기복 사상’의 복의 개념과는 차별됩니다. 최정원의 '한국의 복의 담론'에 따르면, '수(壽)', '부(富)', '귀(貴)', '다남자(多男子)'가 복의 중요개념입니다. 즉, 수(壽:현세 향락주의-저승의 죽음 천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부(富:물질만능주의), 귀(貴:출세, 선비, 권세주의), 다남자(多男子: 남존여비, 후세에 복을 이음, 가문, 혈족주의)와 같은 한국적 ‘복의 개념’, ‘복 사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하늘의 복은 이 세상의 복과는 그레이드가 다른 참으로 고귀한 천복(天福)입니다. 이 천복(天福)은 하늘 축복의 섭리로 십자가의 과정을 거쳐 복이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내가 너를 하늘의 복으로 삼으리라, 네게 축복하는 자를 내가 복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의 자녀, 성령으로 낳은 상속자, 왜 그토록 야곱이 리브가와 함께 가슴 저린 일들을 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브라함-이삭-야곱---모세---다윗---예수 그리스도---성령받은 약속의 자녀---하늘 축복의 통로를 통하여 '축복권'이 주어졌습니다. 축복하면 복이 됩니다. 축복권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저주의 말, 망하는 나쁜 말을 하지 말고, 잘 말해야 할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를 붙들고 축복의 말, 축복의 열매를 맺으며 생명살림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결코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할, ‘축복의 통로’를 절대로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약속의 정신을 일깨워, ‘only1 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하나,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배타적 선민사상은 배격해야 합니다. 열린 정체성과 성숙된 통합성, 개별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합니다. 겸허하게, 다름을 틀림이라 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열린 진심으로 대화하면서, 세상과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씨를 뿌린 후, 5년간의 인고의 뿌리내림의 시간이 지난 후, 싹이 나 하루 80cm씩, 30m 까지 매일 자라나는 '모죽'처럼 성장, 성숙해 갈 것입니다.
이슬람 종교의 힘은 기도와 금식과 메카 순례라 합니다. 겸손과 순종을 체득하는 하루 5번의 기도, 자선을 실천하는 금식, 알라를 잊지 말라는 성지 메카 순례가 이슬람 종교의 강력한 힘의 근원이 된다 합니다. 이와 비교할 수 없는 only1의 하나님 여호와 신앙을 강력하고 확고히 하기위하여, 금식, 기도하며, 절기를 지키라 하십니다. 이로써 기독교 약속신앙의 확실한 정체성을 굳건히 되살리고, 열린 진심으로 온 세상에 진리의 복된 열매로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이슬람교도 '마카다'라는 메카 순례자가 파김치가 되어 길가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덩치가 남산만한 친구가 와서 발로 자는 자를 깨워 ‘후레아들 놈, 못된 놈’하며 큰소리로 욕지걸이를 하면서 패려고 하자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유인 즉, 이 순례자가 발을 불경스럽게 ‘메카’쪽을 향하여 두고 잠을 자는 불경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해코지 하려 한 자초지종 듣고, 그 순례자는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내발을 알라가 안 계신 곳으로 돌려주십시오..’
“‘아~! 알라는 어느 곳에만 계신분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신데...................
그 순간 내가 ‘고정관념’과 ‘제한된 편견 속’에서 ‘신앙을 한 것’이로구나..”하는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남산만한 덩치의 사내는 그 순간, ‘자신의 신앙’을 ‘메카’라고 하는 ‘제한된 장소’에 던져 넣어, ‘고착화했던 것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신앙의 자유(自由)’를 얻게 됩니다. 진리(眞理)에 대한 깨달음으로 빠지기 쉬운 ‘신앙의 이분법적 유혹’을 극복한 것입니다.
옳습니다. 우리도 이분법적 사고를 갱신하여 ‘전체적 사고’로 ‘인식을 전환’하여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이 없는데...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 바, 아~ 내가 고정관념과 제한된 편견 속에서 신앙을 해온 것은 아닌가.. 특정 공간(空間)이나 틀에 내 신앙을 던져 넣어 고착화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성막-성전-교회'로 변화되어 가는 주님의 몸 된 공동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므로 공(空)보다 간(間)이 더 중요한 법(행7:44-50), 공(空) 그 사이에 무엇을 채워야 하는가..., 언약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하며, 오늘도 '하시는 말씀'을 따르는 참된 삶이 보다 중요하지 않은가...축복의 통로인 의인을 거역하지 말고 받아들여 축복의 열매를 결실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 아니겠는가...
이 같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신앙의 이분법적 유혹을 극복하고 자유를 얻어야 참으로 복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착화된 고정관념, 제한된 편견, 자기중심적 시각, 매너리즘...5년 ,10년 ,20년, 30년, 40년......신앙생활 중, 자유와 생동과 성화 없는 고정된 생각, 시각, 관념, ... 이분법적 단편성의 유혹을 극복하고, 배타적 선민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only1 의 정체성' 과 동시에 '전체의 통합성'을 함께 갖추어 올바른 신앙의 복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의 통로인 기독교 진리의 'only1의 정체성'과 '열린 통합성'이 함축된 스데반의 명 설교! 죽음으로 이끈 스데반의 선포가 유대주의, 율법주의의 울타리를 넘어서 이방선교의 새로운 길을 여는 전기를 만듭니다(행7:37-53).
only1, ‘말씀하시는 교회’는 고정관념이나 제한된 편견에 속해있는 잘못된 신앙이나, 어느 틀, 공간에 고착화된 신앙을 하지 않습니다. ‘축복의 통로’된 ‘말씀하시는 교회’는 성령의 하시는 말씀에 따라서, 1.5.3 공동체 성화운동으로 온 세상에 영광을 드러내며, 복된 열매를 맺습니다. only1의 ‘말씀하시는 교회’!, 열린 진심으로 하늘 축복(天福)을 함께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