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us collaborate :협력하자!’ 153 공동체 성화운동으로 협력하여, 드러내자 ‘하나님의 영광을!’ 하늘에서 증인 하나, 땅에서 증인 하나 이 둘이 협력하여 ‘진리를 진리되게 하는’ 두 증인의 역사를 이룹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밝히 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의 성령’의 두 증인의 역사를 통하여 영광의 실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 한 가지도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되어지는 일이란 없습니다. 내 마음조차도, 내 자식조차도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천하범사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즉 ‘진리’대로 되는 법이니, 진리에 내 뜻, 내 생각을 합하여 협력할 때, 그런 내 뜻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의(自意)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며, 내 뜻을 이루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협력하여 이룰 것이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let God be God)!’ 종교개혁의 횃불을 치켜들고, 영적 봄비의 서곡이 울려 퍼지는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설레임으로 준비합니다. ‘본대로 다시 오시리라!’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신랑되신 주님을 기쁘게 맞이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같이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자들은 천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알 수 있게 하는 ‘등불의 도움’, ‘선한 도구의 필요성’을 겸손히, 간절하게 구합니다.
알게 하시는 은혜! 진리를 알게 될 때,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참된 영광이 드러납니다. 아담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서 단번에 하와를 자신의 배필로 알아봤습니다. 어떻게...? 최초의 인간 아담이 생전 처음 보는 여인을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로...알았을까?’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룻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찾아온 천사를 단번에 알아보고 집으로 영접하여 하늘의 복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를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Christ)로 알았을까?...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 율법 학자..전통과 성경에 해박한 그들은 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던 것일까요? 전통에 속박되어 은혜를 경험해본 적이 없던 그들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알았더라면....결코 그리 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며 하늘을 향해 외치신 주님, ‘아버지 저들이 모르고 하는 일이니, ..용서하여 주소서!’
사람의 속사정을 그 사람의 영만이 알듯이, 하나님의 깊은 사정도 성령으로 통달할 수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요17:3). 아는 것이 힘이요 생명입니다. 진리를 아는 능력 안에서 참자유와 영생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영원토록 자유케 하리라!’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인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알게 하시는 은혜!를 통하여, 진리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회적 통념, 전통, 교리...중에서 잘못된 생각과 고정관념을 혁신해야 합니다. 올바로 알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여 잘못된 모든 관념과 인식을 바로 잡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오지 않을 것이요. 내가 가면 진리의 성령을 보내리니, 그가 내 것을 다 가지고 와서 죄, 의,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된 생각과 관념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함은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의심하기 때문이요, 의에 대하여라함은 내가 아버지에게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임이요, 심판에 대하여라함은 이 세상 임금, 사탄이 이미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자의로 말하지 않고 듣는 것을 말하시며, 미래사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것이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1-15).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참으로 자유케 되며, 참된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서도 진리의 사람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주의 성령은 선한 도구를 통하여 역사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별에서 온 그대, 외계인 alian 도민준 이야기’를 전파를 받아 방송하는 TV수상기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선한도구, 하나님 종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은혜’로 영광스럽게 이루십니다.
가장 최상의 조건인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이 참사람 됨의 과정을 사탄의 유혹으로 인해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자녀는 악한 영이 들어 쓰는 악한 도구의 사특한 궤계를 극복하고 추진하며, 승리의 졸업장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아담 그리스도와 같이 인간의 잃어버린 권리를 회복하며 에덴, 복원의 영광의 실상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2014,소치 동계올림픽 스케이트경기에서 메달이 스케이트날 하나의 차이로 결정나는 것을 봅니다. 그 순식간의 결정, 아~ 한 뼘뿐인 인생, 말 한마디로 가나안 약속의 땅을 유업 받음! 99.9999% 진짜 같은 가짜의 허무....참으로 미세한 차이로... 영원이 결정되는 준엄하고 숭고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담처럼 1/1000 순간, 0.0001%부족한 순종 때문에 참된 축복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중퇴함으로 실패하는 통한을 겪어서는 안됩니다. 울며 이를 가는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되어서도 결코 안됩니다. 이제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잃어버린 인간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두 번째 아담처럼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함으로써 영광의 부활승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을 통한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좁은 ‘관념의 새길’ 끝에서 영광의 실상을 목격할 것입니다. 약속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 기다림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 반드시 주의 약속하신 영광의 실상을 보리라! 진리의 관념의 새 길은 험난하나, 참된 영광의 결과를 얻을 진리는 끝까지 따르는 자가 있습니다.
1914년, 중국 복건성에서 유난히 바둑에 재능이 있는 한 아이가 출생합니다. 내기바둑으로, 살림을 도울 정도로 ‘바둑에 심취’한 이 아이가 열 살 때, 기원에서 중국을 방문한 일본 바둑계의 프로 기사와 대국을 벌이게 됩니다. 헐~! 장난삼아 시작한 이 대국에서 십여 차례동안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해 체면을 구긴 이 고수 프로기사는 갈등을 느낍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그러나 먼 훗날을 생각한 그는 이 사실을 알리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귀국하여 그 소식을 일본 공인 바둑협회에 있었던 일 그대로 전하고, 그 아이 ‘오청원’을 일본으로 초청하여 공식 테스트를 받도록 제안합니다. 그 제안이 받아 들여져 당대의 일본 바둑계의 명인 ‘슈사이’와 두 점을 깔고 공식 테스트 대국을 두게 됩니다. 당시의 바둑 규칙대로 7일간을 밤낮으로 일본 바둑계가 가지고 있는 고난도의 각종 수 들을 동원했으나 결국 4점을 패하는 것으로 1차 대국이 끝나게 됩니다. 발칵 뒤집어진 일본의 바둑계는 패배한 대국을 계기로 ‘오청원’을 일본기원의 정식 멤버로 받아들이고, 바둑의 개혁을 시도합니다. 그것이 바둑의 종주국인 중국을 앞지를 수 있는 현대 바둑의 시조가 된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최초로 ‘오청원’과 대국을 했던 ‘일본 바둑계의 고수의 훌륭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패배한 부끄러운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고, 일본 ‘바둑계의 미래를 생각’했다는 점이며, 그로 인하여 위태로웠던 일본 ‘바둑계의 머릿돌’의 역할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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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바둑은 가로 19줄 세로 19줄로 이루어진 361개의 좁은 칸으로 나누어 진 바 둑판, ‘이미 오랜 세월을 통해 바꾸어지지 않는’ 첫수의 첫돌을 두는 곳이 ‘소목점’이었 으나, ‘오청원’ 으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화점바둑’ 이후로는, 누구나 첫수를 화점으로부 터 시작합니다. 화점이란, 바둑판 위의 9개 까만 점 중 귀퉁이의 네 점을 말하는 겁니 다. 소목점을 시작으로 견고한 전략구조를 이루었던 오랜 세월의 공인된 최고의 전술은 천재소년 ‘오청원’의 등장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좁은 바둑판의 한 칸에 불과하지만, ‘첫수를 소목점에 두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만들어낸 거리’는 수백 년이 걸렸다는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바둑이 주는 좋은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고정 관념’이 만들어낸 좁은 바둑판 위의 물리적인 거리로 한 칸을 옮기는데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거리 수백년, 이는 누구나 자유롭게 둘 수 있는 첫돌의 위치를 ‘소목점’이 아닌 ‘화점’으로 가져가는 그 길은 ‘그동안의 고정된 생각’이 ‘흔들려야 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가득 쥔 손으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 44) 는 말씀과 같이, 일본 바둑계의 고수들도 상당한 갈등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보화와 같은 어린 소년을 따라 가야 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가던 길을 가야 하느냐... 이는 처음 보화를 발견하고 그동안의 모든 생각들이 흔들리던 우리의 모습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변화를 위해 흔들리는 경험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5~46) 그동안 소중히 여겨오던 것들을 버려야 하느냐, 마느냐 결단이 요구되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 하던 믿음의 선진들도 이 같은 쩔쩔 매던 순간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관념의 좁은 새 길! 진리의 관념의 새 길을 따라 가는 진리의 선한도구여!, 진리의 말씀끝까지 순종하면 영광의 실상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선한 도구는 함께 영광의 실상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