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과 인간(人間)의 접촉점!
‘거룩한 만남, 행복한 랑데부’로부터 은혜(Hesed)와 진리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울아...사울아...! ‘사울’은 주님을 만남으로 바울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 했습니다. 이 순간의 ‘변화’가 ‘과거는 미래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는 구원의 길을 연 것이며, 이로 인해 죽을 수밖에 우리가 복 받을 수밖에 없는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모습을 달리하는 만남과 랑데부’를 통하여 연속적인 사건으로 계속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 지니는 성령의 역사가 아닌가!
오늘도 진리의 복음의 능력 안에서 행복한 만남: 랑데부를 통한 변화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활동하심으로 행복한 ‘만남: 랑데부’를 통하여 ‘그리스도화’, ‘사랑화’의 위대한 변화의 역사가 연속적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행님아! 살아 있어줘서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나두....고맙데이.... ’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에서 양수, 양곤 두 형제가 42년만의 만남을 통해 울먹이며 토해낸 말입니다. 3일간의 극적 만남 후에, 또 다시 이별해야 하는 시간..,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냅니다.
만남과 헤어짐....‘만남이란 무엇인가?’ 만남을 깊이 생각합니다. 부부간의 만남, 부모와 자식간의 만남, 이웃과 친구와의 만남,.....주님과의 만남.... 주의 교회와의 만남,....만남의 참된 의미, 그 소중함을 가슴에 깊이 새깁니다. 5년 후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만남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변질’과는 다른 ‘변화’란 ‘변하지 않을 때까지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논리에서 볼 때, 본질의 변화에는 부글부글...‘부패’하여 쓸 수 없는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발효’되어 이전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성경의 역사는 만남을 통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시는 변화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소개되는 ‘나오미와 룻의 만남’.........‘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통하여 ‘다윗왕가’의 탄생.....‘예수 그리스도 가계’가 형성됩니다. ‘기구한 인연 속 만남’, ‘우연과 마침의 만남’, ‘모습을 달리하는 기이한 만남, 약속된 랑데부!’ 그 소중함을 살려, 만남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확장해가야 합니다.
‘행복한 만남, 필연적 랑데부!’, ‘나오미와 룻’, ‘룻과 보아스’의 신기한 만남을 온 마음과 정성과 영혼을 다해 기뻐하며 감격하며 찬양합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던 절망의 노인, 아무런 기능도 유산도 없이 부양의 책임 막중한 짐 된 시어머니, 나오미! 오르바는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것처럼, 며느리들에게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나라’는 나오미와 ‘헤어져’ 자기의 민족과 본래 섬기던 신들에게로 돌아가 버림으로써 하나님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참으로 소중한 만남을 접고, 필생 통한의 잘못된 선택을 하여, 헤어지기로 결정하고, 결국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결과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귀한 인연, 고귀한 만남을 소중히 여긴 이방 여인 ‘룻’은 한사코 나오미와 동감하며 동행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의 ‘변함없는 사랑(Hesed)’이라는 발효제로써 발효되어 룻은 참된 신앙인으로 새로 납니다. 비록, 약속을 받지 않았을 지라도...그는 끝까지 ‘만남을 귀히 여기고’, 끝까지 따라가며 ‘만남의 지경’을 넓혀 갑니다. 결코 만남을 소홀이 여겨 가볍게 헤어지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만족이 내 민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을 것입니다.’(룻1:14-2:4) 진실로 만남을 확장하여 다윗 가문, 위대한 그리스도 가족이 되는 위대한 축복과 약속된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永生)의 길을 예비합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만남: 랑데부’는 영생의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딛1:2) 에덴의 낙원의 생명나무로 나아가 영생의 실과를 따먹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는 산소망의 기업을 얻으라!... 너 하나님의 사람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1-12).
이 거룩한 만남: 랑데부를 통하여, 거룩히 변화됨으로써 그리스도가 약속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하늘 아버지와 상봉하는 위대한 만남: 랑데부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만나 볼 것이라’(고전13:12). ‘새것은 새 부대에!’ 새롭고 거룩하게 되는 변화의 원리, 하나님의 나라의 필연적 변화의 원리를 가슴에 새깁니다.
미로에서 사는 스니프, 스커즈 두 마리 생쥐와 꼬마 인간 허와 헴의 치즈에 얽힌 현대판 이솝 우화가 있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Who moved my cheese)?’-스펜서 존스.
어느 날, 미로에서 치즈가 가득했던 C창고에 치즈가 없어집니다. 없어져 버린 치즈,.. 그동안 배불리 먹고 풍족한 생활을 편안하게 누렸던 두 생쥐와 두 꼬마인간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혹하고 당황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두 마리의 생쥐는 주저함 없이 곧, 킁킁...치즈냄새를 찾아 미로로 들어가 새로운 치즈 창고를 찾기 위해 떠납니다. ...반면, 망연자실, 두 꼬마인간은 없어진 치즈에 대해 당혹, 아쉬움..급기야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며 배는 점점 고파오고, 그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어느 곳에서도 치즈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미로로 다시 나가서 분명치 않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감히 미로로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새 치즈를 찾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그저 씩씩대고 화를 쏟아내며, 불편하게 뱅뱅 그 자리에서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후, 굶어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꼬마 인간 허는 용단하고 미로로 뛰어들어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납니다. 천신만고 끝에 맛있는 치즈를 발견하고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 헴의 손목을 잡아끌어 함께 새로운 치즈창고에서 맛난 잔치를 벌입니다.
이 우화를 통해 ‘변화의 필연성!’에 관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 본질의 변화에는 부패와 발효가 있습니다. 발효 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새것은 새 부대에!’라는 변화의 원리대로, 천국의 영생 복락은 새롭게 거룩히 변화되지 않는 자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면 마지막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넣어 전부 발효되어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44).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치즈를 누가 옮긴 것이 아니라 실은, 치즈가 조금씩 없어지고 있었던 것이었고, 점차 누린내가 나며 딱딱하게 굳어져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꼬마인간들과는 달리, 생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변화를 감지하고 조금씩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며, 준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치즈가 다 없어지자, 곧 바로 새로운 치즈를 찾기 위해 출(出)!, 과감히 미로로 뛰어든 것입니다. 출(出)! 이는 영생을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생명나무로 나아가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결정된 약속의 사람들이 출(出)! 거룩한 도전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로를 통해 새로운 치즈창고를 향하여! 모험을 떠납니다. 변화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에 관한 기대와 바램으로 ‘유아적 퇴행’이나 ‘매너리즘’으로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합니다. 변화하는 자만 살아남습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변화의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생명나무로 나아가 영생을 취할 것이라!’ 발효제인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마음 중심에서 부글부글...절대시간 속, 발효되어 ‘그리스도화, 사랑화’로 변화됨으로써, 마지막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변화의 필연성!’을 감지하고 적응해야 합니다. 변화를 추구하고 주도해야 합니다.
스마트폰, SNS, 21세기 변화의 시대! 변화를 두려워 말고, 즐겨야 삽니다. 변화하리라는 의지를 불태우며 솔개처럼 갱신하리라!
행복한 랑데부!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