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속에서 봄을 보듯, 예수 사랑 안에 성화(聖化)를 주목하라!’
눈을 치우며 다가오는 봄을 보듯, 거듭되는 사랑의 메시지를 들으며 약속의 때가 가까움을 느낍니다.
눈 내리는 날의 명상,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골 오두막 농부의 깨달음을 상기합니다. 며칠 째 내리는 눈, 가족 모두가 교회의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에 가고 혼자 남은 농부가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탁..탁..탁..’ 창가에 무언가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에 나가보니, 먹을 것을 찾아 산새들이 밝은 등불을 보고 날아들다 유리창에 탁.. 탁.. 부딪혀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농부는 곳간을 열어놓고 ‘휘이~ 휘이...저리로 가서 저 곳간의 곡식을 먹어라....’ 목이 쉬도록 외치지만 여전히 새들은 창가로 날아들다 ‘탁...탁...탁...’ 떨어져 죽고..죽고..죽어가는...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다 생각합니다. ‘아~ 내가 잠깐만 새가 될 수 있다면, 새가 알아들을 수 있는 새 소리로 새들을 살릴 텐데...’ 그러다 그 농부는 ‘아하~~~ 그렇구나!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잠깐 사람이 되신 거구나..’ 생명의 깨달음을 얻고 그는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셔야만 하셨기에,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나사렛 예수,..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육신의 삶대로, 말씀대로 말씀을 실천하는 십자가의 성화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시나, 겸손히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과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원망치 않고 순종하시되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진리요 생명의 길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 예수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라! 예수 사랑, 진실한 사랑으로 참된 인생을 살아가라!’(빌2:5-11) 양들을 인도하는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양들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사랑입니다.
성육신한 사랑의 화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자, 우리의 교과서이십니다. 십자가 죽음 앞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신 예수님의 사랑!, 십자가에 죽기까지 감사와 순종의 표상을 보이신 참된 사랑의 삶을 뒤따릅니다.
성육신의 신비, ‘말씀이 사람이 되신’ 이유를 상고합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야 됩니다. 따라서 전하는 자가 사람이어야 합니다. ‘언행일치, 언행일삶’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씀이 삶이 되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이신 참사람 그리스도 예수! 참된 말씀이 참된 삶으로, 성육신의 십자가 인생, 생명살림의 삶을 살아갑니다. 말씀이 인격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겸손과 사랑의 십자가 삶을 뒤따라 살아가는 소망인이여!,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 없는데, 주와 함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가장 보람된 인생을 살아갑시다. 영원을 향한 천성 길에서 동감하고 동참하며, 신기한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동행(同行)’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행복한 동행(同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심이라.(시23:1-3)’
성경의 거울을 통해, 출애굽의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인도하며 도우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실족하여 넘어지고 쓰러져 멸망했던 이유를 깨닫고 가슴에 새겨봅니다. 확실한 증거가 충만했었습니다. 출애굽의 열가지 재앙,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는 기적,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 날마다 하늘의 만나와 신기한 음료......그럼에도 그 백성들이 실족했던 이유는 탐욕(貪慾)과 교만(驕慢)때문이었습니다.
고기를 달라! 제사장 직분을 달라!
하늘로부터 일용할 양식인 만나를 매일 먹으면서도 만족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지나치게 또 다른 것에 욕심을 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신기한 만나를 입안 가득히 씹으면서도...‘고기를 달라...부추와 마늘을 달라...’ 원망하며 투덜댔습니다. 지나친 욕심 이 생겨서, ‘이게 뭐냐.. 오히려 애굽의 노예생활이 더 낫다..우리를 광야에서 이렇게 정욕도 말려버리고 요 모양으로 요 꼴로 죽게 할 참이냐...’ 이같은 탐욕 때문에 원망하게 된 것이며, 감사치 못하고 불평하다 멸망된 것입니다.
제사장 직분을 달라! ‘모세여, 말더듬이 너에게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냐..네가 우리의 왕이냐...우리가 누군데....네까짓게...이렇게 죽을 고생으로 이끄는 너 따위가 ...우리를 인도하는 지도자라구.....’
교만...‘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 상대를 깔보는 교만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게 했습니다. 멸망의 선봉인 교만은 인간의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아담의 교만으로 인한 탐욕으로 인하여,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나 불행한 인생살이를 살게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먹을 것이 지천인데...왜 주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지 못해 먹지 말라 할 때, 선악과를 따먹고 죄악의 구렁텅이의 불행을 자초했는지....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첫 번째 아담처럼, ‘탐욕과 교만’, 불행의 올무입니다. 두 번째 아담 그리스도 예수처럼, ‘겸손과 사랑’으로 끝까지 행복한 동행을 할 수 있습니다. 기이하고 신기한, 행복한 동행(同行)!
겸손히 원망치 않고 죽기까지 순종했던 우리의 교과서 그리스도 예수! 예수 사랑으로 신기한 기쁨을 마음껏 나누고 누립시다.
예수 사랑!
이세상의 모든 죄를 다 합한 것보다 예수의 사랑이 더 크십니다. 예수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용서하고 관용하며 사랑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질문한 것처럼‘ 주님, 몇 번을 용서해야 합니까...일곱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성어의 가르침처럼, 주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십니다. 마음으로부터의 복종은 칠종칠금의 용서와 관용과 사랑입니다. ‘power is not force but 예수 love.’ 우리가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의 love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행복한 동행! 예수 사랑으로 신기한 기쁨을 누립시다.